익숙하면서도 낯선, 언어와의 교감

책<영혼없는 작가>를 추천하며

by 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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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다와다 요코는 일본어와 독일어라는 이중 언어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 작가이다.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를 넘나들며 언어의 세계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다와다 요코는 독창적인 시선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영혼없는 작가>는 그런 작가의 특징과 매력이 잘 나타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팬들이 다시금 발간을 요청한 사실이 그 매력을 입증한다.


무수한 기대감과 함께 책을 펼쳐나갔다. 여러 가지의 단편들의 모음집으로 이루어진 <영혼 없는 작가>는 첫 번째 ‘유럽이 시작하는 곳’부터 마지막 ‘판 이야기’까지 언어의 세계를 유영하게 만들었다. 마치 언어를 언어로 인식하기보다 하나의 예술로 바라보게 했다. 마치 하나의 시각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듯 말이다.



전철에서 책 읽기

p.105 전철에서 읽는 책이 아주 작으면 책 읽는 사람의 양 손가락들은 책의 뒷면에서 서로 만난다. 그러면 책 읽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는 사람의 동작을 취하게 된다.

책이 코 높이에 계속 있으면 이 기도는 하늘의 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반면 책이 배 높이에 있으면 그 기도는 지하의 신들에게 바치는 것이다.


저자의 관찰과 관찰을 표현하는 능력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쉽게 지나칠법한 지하철에서 책 읽는 모습에 대해 이리도 섬세하고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책을 잡고 있는 손가락의 모습이 기도하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이 기도가 지상과 지하의 신을 향한 것이라니, 너무나 즐겁고 재밌는 표현이다.


무언가를 골똘하고 면밀하게 관찰해 갖가지 방식으로 풀어내는 표현들. 이 표현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이 이야기는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유쾌한 움직임이 된다. 친숙한 모습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낯선 것이 익숙한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펼쳐놓은 언어와 사유의 세계에 흠뻑 빠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글자들의 음악

p.217 내가 무엇을 상상하든 두 글자 “d”와 “u”는 그대로 남아 있다. 글자들은 어쩌면 자신이 어떤 나라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독일에서는 이것을 의미하고 프랑스에서는 저것을 의미한다는 것 말이다.

그들은 여행자고 여행하는 도중에 어느 언어에서 숙박하는지에 따라 매번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단어를 단어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객체로 인식하게 되는 느낌이 신기했다. 그들은 그저 우리가 부여한 의미일 뿐, 혹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의 범주일 뿐 단어들은 각각 그 객체로 존재한다. ‘d’와 ‘u’처럼 말이다. 이들이 합쳐져 무슨 의미를 내는 것과 그들의 존재는 무관하다.


이번 단편에서는 말한다. 배우지 않은 언어는 투명한 벽이라고. 그래서 멀리볼 수 있고 어떤 의미도 방해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모든 단어는 무한히 열려있고, 이 단어들은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알고 있는 것이 알고 있지 않은 듯한 느낌. 오히려 새로운 언어들을 접할 때 마다 느끼는 거부감과 부담감을 없애주는 느낌이다. 그저 그들은 그대로 존재할 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느낌. 참으로 새로운 접근이었다.



빈병

p.236 나는 유럽에 와서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이히(Ich)라는 말을 발견했다. ”이히“는 성별을 따지지 않고, 나이도 계급도 역사도 태도도 성격도 따질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그냥 ”이히“라고 부르면 된다.


도쿄에 머물 당시, ‘나’를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였다. 소녀들은 대부분 본인들을 ”아타시“라고 불렀고,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은 ”와타시“, 상류층 출신은 ”아타쿠시“, 남자아이들은 자신들을 ”보쿠“, 건방진 아이들은 ”와타쿠시“ 라며 본인들을 칭했다. 여기서 ‘나’를 어떻게 칭해야할지 매번 신경쓰였는데, 독일에 오자 나는 그저 ”이히“로 통일되었다. 그저 부르면서 나는 나가 된 것이다.


내가 어떤 성별에 속하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등을 고려할 필요 없이 그저 나는 내 목소리로 나라고 칭하는 것이 나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언어가 경계를 짓고 나를 가둘 수 있으며, 나를 어느 것에도 구분 짓지 않게도 할 수 있다는 깨우침이 있었다. 언어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


<영혼없는 작가>는 언어가 무엇인지를 다방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언어의 생김새 그대로를 느끼기도 하고, 언어가 우리를 울고 웃게 할 수 있음을 알게 했으며, 언어가 경계와 해방을 넘나들게도 함을 체감했다. 그동안 특별한 생각 없이 썼던 ‘언어’를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언어와의 깊은 교감을 통해 낯설면서도 친숙한, 이 기묘한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영혼 없는 작가>를 추천하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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