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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연재 Oct 14. 2021

아쉽지만 워렌 버핏이 되길 바랄게

혁신에 기반한 성장

“이 전무, 요새 채용하고 있지? 그리고, XXX 교수님 알지?”

"네"

잠시 기억을 더듬거려보았지만 어느 선배인 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 김박사로부터 온 전화이니 성의를 생각해서 우선 긍정의 톤으로 대답했다.

“있잖아, 거기 XX대학교에 있잖아.”

잠시 다시 한번 머뭇거렸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 회사에서 채용하는 학교 스펙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론 스펙이나 외모, 배경만으로 사람을 보지 않으려 한다.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가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자신이 판단한  잣대로 결국 자신도 판단된다고. 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할 때는 가급적 시간을  할애해서 상대의 좋은 점을 부각해서 보려고  뿐만 아니라 가급적 개방적인 태도로 사람에 대한 결론을 최대한 유보하려고 노력한다.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장소를 가리며 있을 수는 없고 외모도 사실 능력과는 별개(?) 아닌가?


이런 태도를 취하게  데는 30 중반이던 무렵 K기업 X부사장을 만나면서 그가 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결정적이다. 그는 회사 내에서 나름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고졸 학력임에도 불구하고 굴지의 대기업의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을 했으며, 아물러 수천 명의 직원들의 존경을  몸에 받고 있었다. 당시 K사는 창사 이래 IT 분야에 투자하는 상당히  규모의 사업을 시작했고, 매주  번씩 (당시 프로젝트 PM) K 부사장님과 티타임을 곁들여서 프로젝트 전반 현황과 이슈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시간이 되어 부사장실에 뵈러 들르니 부사장님이 창가 옆에 소나무 분재를 다듬는  한참이셨다.


“이실장(당시 나의 직급), 아는가? ”

나이뿐만 아니라 직급에서도 한참 차이나 나던 터라  실수하지 않으려 그분을  때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살폈다. 짧을 때는 30,  때는 1시간 이상 독대를 시간이 이어졌다. 미팅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면 한주에 가장 크고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진이 빠진  모습을 발견하고 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말이야. 세상에는 두 가지 나무가 있어. 하나는 관상재야. 관상재는 말 그대로 눈으로 보는 나무지. 지금 내가 보살피고 있는 이 소나무 분재를 봐. 아름답긴 하지. 허나 온갖 뿌리며, 줄기며, 가지를 이런 몹쓸 철사로 둥여 매어두었으니 어찌 본성대로 제대로 자라겠나 말이야.”

“네, 그럼 또 다른 나무는 무엇인지요? 부사장님”

“나머지 하나는 동량재야. 동량이라 함은 예전에 큰 한옥집에 대들보로 쓰는 나무를 일컫지. 이런 나무는 아무 데서나 자라지도 않아. 깊고 깊은 심산유곡에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자신의 힘으로만 올 곳이 자랄 때, 바로 그때, 동량재가 탄생하지.”

지나가듯 스치며 부사장님은 말씀을 마치셨다. 무슨 이유에서인 지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가 잔상이 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학생 추천하는 데 직원 필요하지 않아?”

“인재야 늘 필요하죠.”

“그럼 XXX 교수님 제자이기도 하니 한번 봐봐. 내가 레쥬메 보내라 할게”

“네, 레쥬메 보내주시면 경영관리팀에 이야기해서 인터뷰 일정 잡으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며칠 뒤에 2장의 레쥬메가 도착했다. 그다음 주에 두 명을 한지리에서 인터뷰했다. 원래는 따로따로 봐야 하는데, 둘이 학부 때부터 베프(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해서 한 번에 둘을 같이 인터뷰를 했다. 지인인 김박사님의 추천도 있고, 또 기회를 주고 한번 지켜보자는 의미로 두 명 중 한 명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채용을 결정한 S는 학부와 석사로 관련 전공을 했고, 인터뷰 내내 차분함과 선한 심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근 10년을 같이 함께 한 친구로 보여 나머지 한 명도 뽑으려 했지만 지나치게 긴장한 듯 보여 채용을 보류했다. 가끔 식은땀을 흘리고, 목소리가 잠기고, 대화를 매락을 놓쳐서 동공이 어디를 머물지 모르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 저런 모습에 어쩌면 실력이 가릴 수도 있겠구나’


내게는 대학생이 된 두 아들놈이 있어서인지 사회 초년생들의 저런 모습을 보면 늘 남 이야기 아닌데 하는 걱정이 든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두 놈 다 나중에는 잘하겠지’


예상대로 S 무난하게 회사 생활에 적응했다.   제대로  경력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S 금융권의 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하는 분석 프로젝트에 주니어 멤버로 투입했다. 4~5개월 프로젝트  마치고 나오면 나름  성장하겠지 내심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다  개월이 지났을까, S로부터 면담 요청 전화를 받았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AI사업부는 대략 50 인원이 된다. 작다면 작은 조직이지만,  한주도 아무  없이 조용히 지나가지는 않는다.^^ 사람이 많아지고 관계하는 회사가 늘어나면 사실 별의 별일이  발생한다. 아무튼 면담이니 심상치 않은 기운을 한편으로 느끼면서 S 만나러 갔다.


“전무님, 죄송합니다.”

“아니, 왜?”

“제가 이번 프로젝트를 마치고 회사를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아니, 왜? 지금 잘하고 있고, 현재 프로젝트 잘 마치고 나면 실전 경험도 쌓고 앞으로 좋은 경력으로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네, 맞습니다. 전무님 말씀처럼 부족한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시고 경력까지 챙겨주고 계신데, 제가 예전부터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그래, 그게 뭔데?”

“전업 투자자자가 되려고 합니다.”

“뭐, 뭐라고!" 잠을 숨을 고르고 다시 물었다.

"투자는 얼마 동안 해 봤고 최근 1년간 수익률이 어느 정돈데?”

“최근 대략 수천만 원 벌었습니다.”


S의 성품을 알고 있었기에 즉흥적으로 나온 얘기가 아님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조직의 구성원으로 잘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 보였는데, 이런 결정을 통보(?)하니 한편으로는 아쉽고 다른 한편으로는 S의 장래가 걱정스러웠다.


“알겠어. 너가 얼마나 고민하고 얘기했겠니? 그런데 말이야. 1달 정도 시간을 더 줄 때니 다시 한번 생각해 봐, 투자자가 되는 건 언제라도 너가 결정하면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대학원 전공 공부를 해서 네가 만들어가고 있는 데이터분석가로서의 경력은 한번 길을 잃어버리면 다시는 백(back)하기 힘들어.”

안타까웠다. 젊을 때 특히 20~30대에는 자신이 평생 먹고 살 스킬과 능력을 쌓아야 한다. 물론 대기만성형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인생은 30대에 어떤 삶을 살고 경험했는지가 인생 후반부인 40~50대의 모습을 결정한다. 투자 관점에서 보더라도, 다수의 스킬을 함양해서 장래의 수입원을 다양화해두는 것이 당연히 상식적인 일이다. 한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담지 말라는 말처럼 말이다. 이런저런 스치는 생각을 곱씹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떤 투자를 하니? 장기 투자 아닌가?”

“아닙니다. 초단타 투자를 합니다.”

“음, 그렇구나.”

어쩌겠는가? 초단타 투자를 해야 하니 근무 시간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시세 차트를 보고 거래를 해야 하는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하루하루가 S에게는 힘든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장세로 볼 때, 어쩌면 하루하루의 시세 변동으로 본인의 한 달 월급이 오갈 것이다.


‘이미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어 힘들겠구나’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고 S에게 말했다.

“그래, S야, 네 뜻이 그러하다니 어떡하겠니. 아쉽지만 이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혹시 너 삶에 또 다른 기회의 연장선이 될 수 있으니 잘 마치기 바라고, 나중에 한국의 워렌 버핏이 되어 다시 만나면 좋겠구나.”


씁쓸히 면담을 마치고 일어나 한강변을 달려 사무실로 돌아왔다.

굳이 S뿐만이 아니다. 젊은 직원들 사이에 많은 회사이다 보니 쉽지 않게 비트코인이니 주식이니 투자 관련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본다. 때론 내게 알트코인 종목을 추천해 주는 직원도 있다.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이런 투자에 뛰어들어 기뻐하고 탄식하며, 또 어떤 친구는 직장까지 그만두는 작금의 세태를 어찌 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호호(昊昊), 반드시 기억해라. 혁신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이 동반되지 않고 성장한 경제는 반드시 제자리를 돌아온단다,인생도, 인생의 이루는 많은 일들이 보이는 과정과 결과도 마찬가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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