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소복

by 명연재

비즈니스로 인연을 맺어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L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그날 L은 내게 소개하고 싶다며 A와 K, 두 사람을 더 데려왔다.


처음 본 우리 넷은 갑과 을, 대기업과 하청업체라는 계급장을 떼어낸 채 마치 오랜 친구처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자리를 파할 무렵, 그들 셋은 2차를 더 하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이 시간에 2차라니, 아내분이 뭐라 하지 않나요?”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질문을 받은 A는 말이 없었고, 어색함을 깨려는 듯 옆에 있던 L이 대신 답했다.


“복잡해. 괜히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잠시 후, A는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아내와는 사별했고, 외로움을 이기려 다시 결혼했지만 두 번째 아내와도 얼마 전 이혼했다는 이야기였다.


초탈한 듯 무덤덤한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아차 싶었다.


아무리 술기운이라지만 처음 보는 이에게 내가 실례를 범했구나.


미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대리기사가 도착했고, 술기운이 오른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다시 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우연히 유튜브 영상 하나가 흘러나왔다.


유명 정신과 의사가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전하는 이야기였다. 요지는 간단했다.


“강남 아파트 자가에 현금 10억.”


그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이 이 하나의 과녁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다고 했다.


산다는 건 참 수고로운 일이다.


게다가 '복 많게' 잘 살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문득 어릴 적 어르신들께 들었던 오복(五福)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교 경전인 <서경>에서 유래했다는 오복을 현대적 의미로 풀면 대략 이렇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복

부부가 화합하며 함께 늙어가는 복

자손이 귀하고 번성하는 복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복

죽음의 자리가 깨끗하고 평온한 복


유튜브 속 의사가 말한 ‘강남 아파트와 10억’은 아마도 네 번째, 재물의 복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가정해 보았다.


만약 A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거듭된 이별을 겪어야 한다면,


혹은 자식이 감당하기 힘든 사고를 친다면,


과연 그 재산의 복 하나만으로 내 인생이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얼큰한 취기 너머로 한강에 드리운 아파트 불빛들이 휙휙 지나간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욕망이자 안식처일 것이다.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어느 한 꼭짓점이 유독 뾰족하게 튀어나온 오각형보다는, 비록 한쪽이 조금 깎여 나갔을지언정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모양의 오복을 누리며 살고 싶다고.


비록 어떤 분야에서 압도적인 1등은 아닐지라도 균형 잡힌 삶.


그것이 비바람 치는 인생이라는 바다를 더 멀리, 더 부드럽게 항해하는 법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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