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나

암호

by 명연재

무언가 스며든다.


정수리, 어깨, 그리고 등을 타고 조금씩 몸의 감각들이 깨어난다.


등에 맞닿은 침대보의 질감과 이불의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아, 포근하고 따뜻하구나. 그런데, 여기가 어디였더라?’


어딘지 모를 곳에서 잃어버렸던 의식.


조금씩 차오르며 비로소 현실이 느껴진다.


밤새, 아니 어쩌면 까마득한 시간 동안 나를 가두었던 그곳에서 드디어 벗어나는 중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절대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가 있다.


군대에 재입대하거나 수능을 다시 치르는 것 등이 내게는 그렇다.


그런데 하필이면 설연휴의 평화로운 밤, 나는 10년 전 어느 날의 나를 만났다.


'이제 이 시간도 트라우마가 되어가고 있나?'


얼마나 간절히 헤매고 다녔는지.


두 손은 잔뜩 오그라들어 있었고,


엉치뼈는 뻐근하며,


이마와 가슴팍엔 땀방울이 맺혔다.


사고가 가능한 범위까지 의식이 명료해졌다.


의식이 내게 속삭였다.


'지금은 2026년 2월이야. 10년이 훨씬 지났어. 넌 이제 그때에 머물고 있지 않아.'


그제야 내가 누워 있는 공간과 나의 인연들이 자리를 잡으며 하나둘씩 채워졌다.


그날의 내가 아님에, 여태껏 무사히 살아내어 이 자리에 있음에,


오로지 그것만으로 그저 감사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으로부터 다시 10년이 흐른 2036년의 먼 훗날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때를 대비하여 암호를 남겨두려 한다.


1T5U3!


10년 전에도 또렷이 암호를 새겼다.


지금 보니 효력이라곤 전혀 없는 놈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p.s. 인간의 무의식이란 참 놀랍다. 전날 보았던 영화 <먼 훗날 우리, 2018>의 잔상이 이런 식으로 꿈의 무대를 빌려 나타날 줄이야. 과거의 나를 잃고 나니 비로소 오늘을 사는 내가 드러난다.


p.p.s. 글 표지 이미지: 영화 <만약에 우리, 2025> 스틸컷


영화 <먼 훗날 우리, 2018> 스틸컷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