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은 길고도 힘들다. 여름방학은 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각자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은 가족 덕분에 여름방학 지내기는 가뿐하다. 하지만, 겨울방학은 좀 다르다. 긴 기간도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이상하게 겨울방학 때는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저녁 식사 시간이면 꼬박꼬박 네 식구가 늘 소박하지만, 따뜻한 저녁상을 맞이한다.
나는 음식을 잘 못한다. 음식을 잘하는 주부도 방학 동안의 식사 준비는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런 내가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하는 길고 긴 방학은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오는 기간이다. 다만 감사하게도 식구들의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방학 동안 이런저런 식재료를 동원하여 다양한 음식에 도전해 보곤 한다. 분명히 레시피를 보고 만들었지만, 엉뚱한 결과물이 저녁상에 오르기도 한다. 에디슨이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효과 없는 만 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음식은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맛없는 만 가지 요리를 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나에게는 성공한 음식이 없을까? 식탁에 내놓으면 식구들이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다음엔 좀 더 많이 해 달라는 요구를 듣게 되는 그런 음식. 있다. 나에게도 온 가족의 사랑과 환영을 받는 그런 음식이 있다.
음식을 말하기에 앞서 그 음식의 식재료에 대한 소개를 하고 싶다. 이 식재료는 밥상 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마법을 부린다. 이 식재료는 그 어떤 육해공의 식재료들과도 잘 어우러진다. 음식의 메인이 되는 주인공을 위해서라면 맨바닥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주인공을 빛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요리계의 별미로 마니아층을 만들기도 한다. 이 식재료는 다양한 색과 맛을 낸다. 빨갛게 때로는 하얗게 어떤 양념을 만나더라도 잘 받아들여 달고 맵고 뜨겁고 시원하게 맛을 만들어 낸다. 이 식재료는 시즌에 따라 가격이 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저렴한 편이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은 넉넉한 몸집 덕분에 한 개 구매만으로 이렇게도 만들어 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볼 수 있어서 나의 도전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는 가성비까지 완벽한 식재료이다. 그것은 바로 ‘무’이다.
무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 중에서 나의 대표 음식은 무숙채이다. 보통은 무나물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무숙채는 푹 끓여내었지만 뭉개지지 않고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과 참기름의 고소한 향을 머금은 자박한 국물이 일품이기에 무나물이라고 말하기에는 살짝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무숙채라고 부르기로 했다.
마트에서 사 온 무는 글자만큼이나 간결하다. 별로 다듬을 거리가 없기에 무는 여느 식재료보다 만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냥 석둑 석둑 썰어내면 무슨 음식이라도 될듯하니깐 말이다. 그러나 무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이미 나는 도마 위에서 진땀을 빼고 있다. 둥글고 기다란 무는 한 손에 잡히지 않아 몸통에 올라앉은 칼은 바들바들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그러자 문득 옛날 부엌 가스레인지 옆에 몸을 기대고 서 있던 엄마의 나무 도마가 떠올랐다. 엄마의 도마는 겨울방학 삼시 세끼가 별 대수냐 하며 무수한 칼질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도마 가운데 움푹 팬 자리에 무를 툭 올려두었다. 둥글고 커다랗던 무도 엄마의 도마 위에서는 고분고분했다. 서걱, 서걱. 엄마의 칼질은 간결했다. 이미 도마 위에는 오늘 쓸 무 한 덩이만 남았다. 곧이어 들려오는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도마와 칼 그리고 무의 삼중주. 양푼에 무채들이 소복하게 담기면 부엌에는 시원하고 맵싸한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무숙채는 겨울이 제철이다. 어릴 적, 엄마는 양은 냄비에 가득 무숙채를 만드셨다. 갓 만든 뜨거운 음식은 냉장고로 바로 넣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무숙채 냄비는 추운 겨울 베란다로 직행했다. 겨울 냉기 가득한 베란다에서 한 김 식은 무숙채는 유난히 시원했다. 거기에 고소하고 깊은 달큼한 맛까지 있었다. 저녁 상을 차리기 위해 양은 냄비를 부엌으로 가져오면 냄비에 허옇게 서리가 둘러진다. 나는 냄비 뚜껑을 열기 전에 허옇게 둘러진 서리를 보며 무숙채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뚜껑을 열면 잠깐의 냉기가 코끝을 살짝 스치다가 곧이어 훅 따라오는 고소하고 달큼한 향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냄비 안에 무숙채는 과함이 없는 희고도 노르스름한 아주 미세한 연초록빛이 감돌았다.
나는 빨갛게 입맛을 돋우는 ‘무생채’보다 별 색 없는 차갑지만 부드럽고 달큼한 맛의 무숙채를 더 좋아했다. 그 맛은 소박한 엄마의 부엌을 닮았고 인자하시지만, 강단 있는 엄마의 웃음을 닮았다. 그리고 무숙채의 관건인 긴 시간 중불에서 뭉근히 기다려야 하는 인내와 끈기의 맛은 가족을 지켜내는 엄마의 품을 닮았다.
가스레인지 불을 약불로 해 놓고 나는 기다린다. 맵싸하기 만 했던 삶 어딘가에 있을 인생의 달큼한 맛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뭉근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