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저것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금요일이었던 어제저녁 7시쯤 합정역에서 우진이를 만났다. 우진이와 해물잔치에 들어가 해물찜 소짜와 참이슬을 시켜 먹었었다. 우진이와는 축구, 게임,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 전 구속된 연예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종합소득세 얘기를 잠깐하고 소주가 두 병쯤 비워졌을 때, 늘 그랬듯이 우진이의 입에서 페루로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마추픽추에 가 봤다고 했지?”
“가 봤다니까.”
“리마에서 오래 걸리냐?”
우진이는 늘 그렇듯 소주를 홀짝이며 페루에 여행을 가면 어디를 구경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도 늘 그렇듯 마지막으로 페루에 갔던 게 7년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여동생 인선이는 페루에 살고 있다. 12년 전 인선이와 나는 아버지 친구분이 계시는 페루로 유학하러 갔었다. 나는 그곳에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 듣는 언어. 처음 보는 사람. 처음 먹는 음식. 이런 것들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친구였다. 같이 축구를 하고, 게임을 하고, 어제 보았던 코미디 프로 얘기를 하며 낄낄거릴 사람이 없었다. 나는 7개월 정도 페루에 머물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인선이는 달랐다. 처음 페루에 도착했을 때는 둘 다 매일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었지만, 인선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 음식에 적응해 갔다. 3개월이 지났을 때 인선이는 페루의 기니피그 요리인 꾸이까지 먹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음식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올라”와 “그라시아”밖에 못하던 인선이의 스페인어 실력도 몇 개월이 지나자,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수준까지 올라갔고, 동네 친구들까지 사귀었다. 그리고 한인 식당에 취직까지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인선이는 페루의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 갈 건데?”
우진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인상을 찌푸리며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진이와 페루에 가자는 이야기는 벌써 3년째 진행 중이었다. 처음에는 우진이가 항공권 가격이 부담된다며 거절했었다. 그러다 우진이가 단편소설을 써서 공모전에 당선되어 상금이 생겼고, 그 돈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었다. 나는 인선이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우진이와 페루에 가겠다고 했다.
“우진 오빠랑? 좋지. 언제 올 건데?”
“여름에는 비행기 표가 비싸니까 가을쯤 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것도 벌써 재작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술을 마시면 늘 그렇듯 페루 여행 이야기를 안주로 삼았다. 해물찜이 바닥을 보이자, 우리는 아일랜드 리틀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버팔로윙에 기네스 두 잔을 시킨 다음 다시 전셋값과 주식투자, 전기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늘 그렇듯 여자 이야기로 넘어갔다.
“희정이랑 사귀지 그러냐?”
우진이는 물티슈로 손가락에 묻은 버팔로윙 양념을 닦으며 말했다.
“아직 때가 아니야.”
나는 대충 대답하고 우진이의 눈총이 관자놀이에 박히는 것을 무시한 채 기네스 잔을 비웠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희정이가 너 좋아하잖아. 걔가 뭐 딱히 이쁘진 않지만, 그 정도 되는 여자애 요새 없어. 애가 얼마나 착해. 너한테 딱이라니까. 때는 무슨 때야. 지금 어영부영하다가 딴 놈이 채가면 어쩌려고 그래? 지금 네 형편 이해해 주는 여자 희정이 말고 없어. 네가 사귀자고만 하면 바로 사귈 수 있잖아. 그리고 너도 사실 희정이 좋아하잖아.”
우진이가 희정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은 술을 그만 마셔야 한다는 신호다. 아일랜드 리틀 펍에서 나온 우진이는 늘 그렇듯 클럽에 가자고 했다. 서른 되기 전에 클럽에 한 번이라도 더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나는 우진이를 편의점 앞에 앉히고 메로나와 메가톤 바를 사서 메로나를 우진이에게 주었다. 우진이는 메로나를 먹으며 술기운에 눈이 감기는 걸 참아냈다. 우진이의 손에서 반쯤 먹은 메로가나 떨어졌을 때 우진이를 일으켜 택시에 태웠다. 우진이가 가는 걸 지켜본 후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되기 10분 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반이 지났다. 나는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벗어놓은 양말과 티셔츠를 세탁기에 넣었다. 텔레비전을 켜고 예능프로 재방송을 보다가 졸음이 와서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