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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학과 1학년 수업

by 지천

한국어학과 1학년 첫 수업

숙소에서 바탐방대학교까지는 자전거로 약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나 식빵과 계란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한 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지난 주말, 자전거를 타고 미리 학교에 한 번 가 본 터라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페달을 밟았지만, 중간에 낯선 풍경들이 나타나 조금은 당황했다. 그래도 바탐방 수호신이라는 동상을 만날 수 있어 어렵지 않게 학교까지 갈 수 있었다.

8시 5분 전에 학교에 도착하여 3층 학과 사무실로 가니 안에 불은 켜져 있는데 사람은 없고 출입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아마 일찍 출근한 사람이 사무실에 불을 켜 놓고 수업을 하러 간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각자가 사무실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데 나는 아직 열쇠를 받지 못해 사무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잠시 서성거리고 있으니 학부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주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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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마칠 시간에 뽄러 선생님이 들어와서 나더러 2교시 1학년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아직 수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한 상태라 조금 당황했다. 물론 내가 1학년 수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지난 금요일에 듣기는 했지만, 교재는 어떻게 할 것인지, 1학년 수업에 들어가는 다른 선생님과는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해야 할지, 이런 것이 결정되지 않아 잠시 당황했던 것이다. 어쨌든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뽄러 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지난 금요일 신입생 환영회 때 잠시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교실에서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17명의 아이들이 앞에 선 나를 바라보았다. 1학년들, 얼굴이 맑고 순하다. 하긴, 1학년이 아니어도 이곳 아이들은 대체로 순한 얼굴, 선한 미소를 가졌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은 나를 처음 보는 것 같은데도 수줍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자기 길을 간다. 몇몇의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보내기도 한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 역시 그러했다. 뽄러 선생님 도움으로 내 소개를 간단하게 한 뒤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한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자음, 모음에 대한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뽄러 선생님이 자기 수업을 하러 가고 난 뒤,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에 대해 설명을 했다. 하지만 크메르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난감한 기분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휴대폰을 열고 번역기를 돌려서 크메르어 문장을 찾은 뒤 아이들 몇 명에게 그 문장을 읽게 하면서 자음을 만든 원리를 설명했다. 모음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읽고 쓰는 연습을 하게 했다. 크메르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영어 역시 서툴기 짝이 없어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잘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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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작하고 나서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정전이 되면서 교실 안이 약간 어두워지고 또 잘 돌아가던 선풍기마저 꺼져버렸다. 그래도 수업을 계속하고 있으니 뽄러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잘 됐다 싶어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했던, 자음과 모음 만드는 원리를 다시 설명하면서 뽄러 선생님에게 통역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되풀이해서 자음 모음 읽기를 하고 첫 수업 소감을 이야기했다. 첫 시간인데,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해 대단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 시간에는 선생님들과 의논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했다. 교실 안이 더 더워져서 수업을 계속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마치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들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는 수업을 일찍 마치면 대개 환호성을 지르거나 박수를 치거나 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와 처음으로 만났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원래 이 아이들 성품이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이들이 신입생이기에 더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기 전, 시작할 때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보았다. 레악싸, 마니읃, 디나, 비타, 리야, 홍메이, 찐피싸이, 푸엉, 티 엠 이, 짠나, 니싸이, 린나, 짠타, 까니까, 킴롱, 스레이낙, 스레이닉, 모세, 쯘렝 모두 열 아홉 명이다. 그 중 두 명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홍메이와 스레이낙이다.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와 잠시 쉬고 있는데 장선생님이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안 그래도 궁금한 것 물어볼 사람이 없어 답답했는데, 장선생님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그래서 교재와 수업에 대해 물어보았다. 장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교재, ‘이화 한국어’를 보더니 이 책으로 수업을 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수업할 부분을 서로 나눠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나는 다른 책으로 하면 된다고 하여 그 문제는 쉽게 해결했다. 책장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교재들이 있었는데 그 중 나는 서강대학교에서 만든 것과 서울대학교에서 만든 것 두 종류를 펴 놓고 서로 비교를 하면서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초보자들에게는 서울대에서 만든 교재가 낫겠다 싶어 그것으로 하겠다니까 그러면 뽄러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여 복사와 제본을 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2, 3, 4학년 수업은 한국에 가 있는 현지인 교사 한 분이 돌아오면 같이 의논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들어간 첫 수업이었지만 오랜만에 교실에서 아이들 만나니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좋았다. 교재를 선정해서 뽄러 선생님에게 복사와 제본을 부탁하고 나는 첫수업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글을 처음으로 배우는 학생들에게 자음과 모음 이야기부터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단순히 자음과 모음을 알고 음절을 만들고 단어를 익히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발음을 비롯하여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보다는 더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의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니까. 그래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준비는 교재를 연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캄보디아에 오기 전부터 생각해온 것이지만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방법, 즉 한글을 효율적으로 익혀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가르치는 사람도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나는 새삼 그것을 느꼈다.


다시 1학년 교실에서

1학년 수업, 지난 월요일에 이어 두 번째 시간이다. 첫 시간에는 자음과 모음을 만드는 원리를 중심으로 수업을 했다. 10시 30분, 새로 제본한 교재, 『서울대 한국어』를 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책을 나누어주고 교재의 전체 구성과 수업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에서 돌아온 코워커 보파 선생님이 같이 교실에 들어갔다.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보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통역을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미리 이야기한 것은 “모국어가 아닌 낯선 언어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내가 한글로 칠판에 적고 보파 선생님에게 크메르어로 적어달라고 했다.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할 때 가급적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강제적인 것은 아니고, 발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는 전제를 달았다. 몇몇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었지만 그래도 마스크를 벗지 않은 학생 두어 명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 대해 더 말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어서 말하기와 듣기를 우선적으로 하고 읽기와 쓰기를 순차적으로 할 것이라 했다. 물론 동시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수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하기와 듣기를 강조하기 위해 ‘말하기, 듣기→읽기, 쓰기’라고 칠판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책에 자주 나오는 말, 수업 시간에 자주 쓰는 단어들, 가령 ‘자음, 모음, 음절, 쪽……’과 같은 단어들은 말하고 듣고 읽고 쓸 수 있도록 미리 익혀 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숫자에 관한 공부를 먼저 하겠다고 했다. 덧붙여 수업 장면을 녹화할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데 허락해 주겠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흔쾌히 동의한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고마워 내가 찍은 사진이나 영상은 수업을 하는데 필요해서 찍는 것이고 SNS 상에 떠도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고 또 아이들은 시원하게 웃었다.

이런 이야기하면서 보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시원했다. 혼자였으면 이러한 내 생각들을 어떻게 전할 수 있었을까. 번역기를 동원한다고 해도 시원하게 전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새삼 영어 공부와 크메르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나도 현지인의 도움 없이 이렇게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 읽은 조명희의 소설 ‘몌별’이 다시 떠오른다. 몌별이라는 말은 ‘소매를 붙잡고 차마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설 몌별은 대만에서 유학을 온 ‘그’와 그를 사랑하는 ‘그녀’ 사이에 가로막힌 언어 장벽, 이로 인해 소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시적인 문장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다시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지난 신입생 환영회 때 했던 자기소개를 한 번 더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당시 한국에 가 있어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보파 선생님에게 신입생을 소개해 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발음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신입생 환영회 때 나는 많이 놀랐다. 당시에 재학생들은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1학년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 크메르어로 자기소개를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뜻밖에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입학한 지 두 주일, 아무리 선생님들이 지도를 했다지만 분명한 발음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모습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그 목소리을 다시 들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먼저 내가 한국어로 소개하면 이어서 학생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마지막으로 보파 선생님이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도록 했다. 나는 한국어로 나 자신을 먼저 소개했다. 통역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내 모습일 테니까. 그리고 내가 소개하는 내용 대부분은 첫 시간에 했던 것이기도 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학생 여러분! 제 이름은 장재화입니다. 저는 코이카 봉사단원의 한 사람으로 캄보디아에 왔습니다. 지난 2023년 12월 28일 프놈펜에 도착하여 5주일 간 교육을 받고 2월 1일 이곳 바탐방으로 왔습니다. 저는 여기서 일 년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크메르어를 익숙하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수업할 때 많이 도와주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으로 아이들이 번호순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했는데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잘한다는 소리를 연이어 했다. 마지막으로 보파 선생님이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는데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발표가 다 끝나고 난 뒤 아이들을 칭찬해 주고, 나와 보파 선생님 소개하는 것이 별 차이가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보파 선생님이 잘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렇게 물었는데 아이들로부터 차이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손가락을 조금 내 보이며 요만큼? 하고 물으니 아이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분들도 여기에서 공부를 하면 보파 선생님만큼, 아니 보파 선생님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며 자기소개 시간을 마무리했다.

보파 선생님을 계속 잡아둘 수 없어 사무실로 돌아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안 그래도 한국 갔다 와서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하면서 교실에서 나갔다. 이후 다시 답답한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지난 시간에 배운 자음과 모음에 대한 것을 복습하고 이어서 숫자 공부를 했다. 교재 중간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숫자와 관련된 것들은 일상에서 늘 사용되는 것이기에 미리 당겨서 한 것이다. 먼저 영을 포함하여 1부터 10까지 칠판에 적고 그것을 같이 읽어보았다. 이어서 20이 되는 원리와 21부터 29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을 하면서 칠판에 적고 같이 읽었다. 30, 40……100, 1000, 10,000, 100,000, 1,000,000, 10,000,000까지 아이들이 원리에 따라 만들어내도록 해 보았다. 아이들은 참 똑똑했다. 금방 원리를 발견해 내고 내가 제시한 숫자를 읽어냈다. 그래서 내가 10,000,001을 읽어보게 했더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아이들 몇 명이 읽어냈다. 참 기특한 아이들이다. 내가 먼저 숫자를 읽으면 아이들이 따라 읽도록 하면서 나는 계속 아이들의 입모양을 바라보았다. 숫자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소리를 정확하게 내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는 더 중요한 일이니까. 특히 3으로 시작되는 숫자를 읽을 때 아이들의 소리는 대개 경음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삼십이 아니라 쌈씹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아마 크메르어의 발음 탓이리라. 남은 시간 아이들더러 숫자를 한글로 적어보게 했는데 몇몇 아이들은 아직 자음을 쓰는 순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ㅂ’이나 ‘ㅁ’을 쓸 때 더 그러했다. 그들의 공책에 그 글자들을 적어가면서 교정을 해 주었다. 처음 배울 때 정확하게 배우는 것이 좋으니까. 내가 크메르어를 배울 때 자음과 모음을 제대로 적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수업을 마치고 한국어학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모두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내가 바탐방대학에 온 것과, 보파 선생님이 무사히 한국에 다녀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그리고 지난 주 있었던 신입행 환영회 평가 반성회 자리이기도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와우 카페’라고, 선교사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한국 음식도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 나와 보파선생님은 라면과 밥, 그리고 김치를 주문하고 다른 두 사람은 김치찌개를 시켰다. 라면은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는데 밥은 많이 달랐다. 국물에 말아도 딱딱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설 익혀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가끔 이용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난 뒤 다 같이 학교로 돌아왔다. 교육과정에 따라 각자 맡을 2학기 수업을 정하고 시간표를 짜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1학년 수업과 함께 2학년 1과목, 3학년 두 과목을 맡게 되었다. 전체 네 과목 12학점이니 1주일에 12시간 수업을 하게 된다. 그래도 교실에 들어가는 것은 1주일에 여덟 번, 한 번 들어가면 90분 수업을 해야 하니 전체적으로 12시간이 되었다.

시간표를 짰다. 각자 원하는 시간을 적어내게 하고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 학교는 대학교지만 아이들이 따로 수강신청을 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처럼 학교에서 시간표를 짜면 아이들은 그 시간에 수업을 들어야 한다. 1학년 컴퓨터 시간을 제외하고는 교양 과목이라든지 전공 선택이라든지 이런 개념이 없다. 전공은 모두 전공필수 과목이기에 모든 학생들이 다 같이 들어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들어가는 과목을 요일별로 나눠서 적어냈는데 그렇게 하니 수요일에는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3학년 과목인 ‘Intermediate KoreanⅡ’ 세 시간, 화요일에는 2학년 과목인 ‘Korean Reading Ⅰ’ 세 시간, 목요일에는 3학년 과목인 ‘Korean Past & Present’ 세 시간, 금요일에는 1학년 과목인 ‘Korean Practices’ 세 시간, 이렇게 시간표가 구성되었다. 이 시간표는 2, 3, 4학년이 2학기를 시작하는 3월 11일부터 시행된다.

커리큘럼 상의 과목명을 모두 영어로 표기한 것은 이것이 학교에 보고되는 정규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크메르어와 같이 표기를 해서 보고를 하는데 영어로 과목명을 적은 것은 한국어학과에서 일하는 우리를 배려한 측면도 있다. 동시에 학교를 배려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학교 관계자가 모르고 또 한국인 교수요원도 크메르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영어와 크메르어로 커리큘럼을 짜는 것이다.


처음으로 현지인 교수 도움 없이 1학년 수업을 하다

처음으로 현지인 선생님의 도움 없이 90분 수업을 했다. 1학년 아이들과 하는 한국어 세 번째 시간이다. 첫 시간은 뽄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시작했고, 두 번째 시간에는 보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수업과 관련된 이야기, 자기소개 등을 했다.

이제 세 번째 시간, 먼저 수업할 곳의 쪽 번호를 칠판에 적고 읽어보게 했다. 두 자릿수의 숫자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제대로 읽었다. 이어서 세 자릿수, 네 자릿수, 다섯 자릿수 이렇게 확장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읽어보도록 했더니 아이들은 더듬거리면서도 대부분 다 읽어냈다. 그런 다음 맨 먼저 적은 숫자 뒤에 ‘쪽’이라는 말을 쓰고 교재에서 그 부분을 펴도록 했다. 교재 29쪽 한글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먼저 음절 구조에 대해 설명을 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서 이미 배운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국어의 음절을 익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면서 중요한 것이라 다시 설명을 한 것이다. 모음 단독으로 이루어진 음절, 자음과 모음이 결합해서 이루어지는 음절, 모음과 자음이 결합해서 이루어지는 음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음과 모음, 그리고 다시 자음이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음절을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했다. 두 번째는 자음과 모음이 결합을 할 때 각각의 위치에 대한 설명을 했다. 모음의 왼쪽에 자음을 써야 하는 음절, 모음의 위에 자음을 써야 하는 음절 등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음절의 첫소리에 나오는 ‘ㅇ’, 음가가 없는 형식 자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말이 첫소리와 가운뎃소리, 그리고 끝소리가 결합을 해야 제대로 된 음절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으로 받침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했다. 받침에 대한 것은 뒤에 다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어를 익힐 때 좀더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넘어간 것이다. 이어서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는 방식과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들을 공부했다. 교재에는 가로축으로 모음을, 세로축으로 자음을 적어놓고 이들을 결합하면 어떤 음절이 만들어지는지 직접 적어보도록 하고 있는데 나는 아이들이 교재에 적는 것을 둘러보면서 획순이 잘못된 것을 그 자리에서 학생의 교재에 적어가면서 교정을 해 주었다. 아이들이 획순을 잘못 적는 자음은 대개 ‘ㄹ, ㅁ, ㅇ, ㅎ’ 같은 것이었고 모음은 ‘ㅛ, ㅠ’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음절을 만드는 연습을 한 뒤 그렇게 만들어진 음절로 구성된 단어들을 공부했는데 교재에 제시된 단어를 내가 먼저 읽고 난 뒤 아이들더러 따라 읽도록 했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를 썼다. 계속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지목해서 제시된 단어 전체를 읽도록 하면서 잘못된 발음, 어색한 발음을 교정해 주었다. 이렇게 읽기를 연습한 뒤 이번에는 첫 번째 학생이 한국어로 제시된 단어를 읽고 옆에 앉은 학생이 그것을 크메르어로 말하도록 했다. 한국어와 크메르어를 연결하여 읽음으로써 한국어 단어의 뜻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니 90분이 금방 흘러갔다. 아이들이 집중을 해서 그런지 더듬거리는 영어나 단편적인 크메르어 단어로 발문을 던져도 아이들은 곧잘 알아듣고 따라왔다. 덩달아 나도 힘을 낼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면서 나는 번역기를 돌려서 ‘정확하게 읽고 정확하게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과 ‘여러분들이 빨리 한국어를 익혀서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가능하지 않다는 듯 웃었지만 거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나 역시 부드럽게 웃으며 수업을 마쳤다. 현지인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수업, 부족했지만 나름 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기분 좋게 다음 시간을 기대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내가 잘 가는 카페에 갔다. 카페는 제법 큰 연못가에 있는데 연못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있고 아래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정도 음료수 한 잔 사서 벤치에 앉아 연못과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의 휴식을 즐기곤 했다. 카페에 가니 조금 전에 같이 수업을 한 아이들 몇 명이 카페 앞 벤치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층안(맛있어요)?’이라고 말하니 아이들이 ‘층안’이라고 대답했다. 신입생 중 유일한 남자인 모세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기에 ‘모세, 층안?’이라고 다시 물으니 환하게 웃으며 ‘층안’이라고 했다. 내가 한국어로 ‘맛있어요?’ 하고 물으니 아이들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쯘렝이 내게 여기 무엇하러 왔냐고 영어로 묻기에, 커피 마시러 왔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다른 아이들 역시 따라 웃었는데 나는 아직 모세와 쯘렝의 이름만 알 뿐이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잘 외워지지 않는 이름들이고 내 머리 역시 굳어 있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어쨌든 빨리 이름을 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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