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탐방, 국립바탐방대학교

by 지천

캄보디아에는 1개의 자치시와 24개의 주가 있다. 프놈펜이 자치시며 바탐방주는 24개 주중의 하나다. 그리고 바탐방시는 바탐방주의 주도(州都)다. 캄보디아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어 태국과 가까운 바탐방은 수도 프놈펜에서 약 296Km, 버스를 타면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바탐방은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알려졌으나 요즈음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이 더 큰 도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240122_175936.jpg

바탐방은 넓은 평야지대로 쌀과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그래서 바탐방을 ‘캄보디아의 밥그릇’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바탐방의 분위기는 전원적이다. 고층 건물이 많지 않고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늘 푸른 빛의 들판을 쉽게 마주할 수 있으며 들판 끝, 그러니까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상커 강 주변에는 공원이 만들어져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그리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20240123_113251.jpg

오랜 기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캄보디아, 바탐방 역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시내에 즐비하며 그 건물들에는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또한 농업에 기반한 도시여서 시내 교통이 그리 혼잡하지 않고 사람들 역시 매우 순박하다. 프놈펜에서 교육을 받을 때 많이 들은 말이, 길거리에 가면서 휴대폰을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2인조로 된 오토바이 날치기범이 휴대폰을 채 갈 수 있기 때문이라 했는데 실제로 CCTV에 찍힌 영상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바탐방에서는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고 그런 일을 본 적도 없다. 오히려 툭툭에 두고 내린 휴대폰을 찾아주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바탐방은 수도 프놈펜과 분위기가 달랐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프놈섬퍼에 있는 학살동굴(Killing Cave)과 박쥐동굴(Bat Cave)이다. 그리고 바난 사원과 삼농크농 사원 역시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중 삼농크농 사원은 폴폿 시대 학살의 장소로 사용된 곳이며 위령탑을 비롯한 여러 시설물이 당시의 시간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바탐방에는 ‘노리’라 불리는 대나무열차가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 ‘노리’는 기존의 철로 위에 대나무로 만든 탈것을 얹어서 동력으로 운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리는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것은 아니다. 철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노리를 이용해서 물건을 운반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기도 한다. 철로가 단선이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대나무열차가 오면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운전자와 맞은편 노리의 운전자가 대나무열차를 번쩍 들어서 철로 밖으로 꺼낸 뒤 맞은편 열차를 지나가게 한다. 그리고 다시 궤도에 올려 달린다. 지붕도 없이 달리는 열차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제법 빠른 속도로 바탐방의 넓은 들판을 달리는 열차는 바탐방을 찾은 관광객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20240301_121536.jpg

바탐방으로 들어가는 초입 네거리에 큰 동상이 하나 있다. ‘따 덤벙 크르늉’이라는 동상인데 바탐방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매일 많은 사람들이 예물을 들고 와서 기도를 한다. 캄보디아에는 각 도시마다 이러한 상징물들이 있어 그 지역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혹은 믿음을 형상화한 동상은 그래서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네거리 수호신을 뒤로 하고 프놈펜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큰길 가에 국립바탐방대학교가 있다. 바탐방시에는 대학이 여럿 있는데 그 중 유일한 국립대학이다. 그리고 내가 1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탐방대학교는 그리 크지는 않다. 교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공자학당이 있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두 동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뒷 건물 오른쪽으로 도서관 건물이 있으며 왼편으로는 2024년에 공사를 마치고 개관한 스팀관(STEAM)이 있다.

바탐방대학교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옆으로 잔디가 깔린 큰 운동장이 있다. 연못 주변에는 벤치가 놓여 있고 아담한 카페도 하나 있다. 벤치에는 학생들이 앉아서 음료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기도 하고 또 공부를 하기도 하는데 나 역시 시간이 날 때 그곳에서 차를 마시면서 바탐방의 하늘과 하늘에 멋지게 드리워진 구름을 구경하며 여유를 갖곤 했다.

학교 건물 앞과 뒤에는 깔끔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얼마나 정성들여 관리를 하는지 한 달에 두어 번 잔디를 깎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실내 강의실이나 복도 역시 청소를 전담하는 여성분들이 매일 청소를 해서 윤이 반짝반짝 난다. 청소를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으니 건물 안팎이 얼마나 깨끗하겠는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래서 정감이 많이 가는 캠퍼스다. 내가 이런 곳에서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많이 느꼈다.

2023년 12월 28일 캄보디아에 도착한 나는 수도 프놈펜에서 현지적응교육을 받고 2월 1일 바탐방대학교로 출근을 했다. 이후 한 달 정도 1학년 수업만 하다가 3월, 2학기가 시작되면서 1, 2, 3학년 수업을 하게 되었다.

20240207_110201.jpg

국립바탐방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된 것은 2008년, 벌써 1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봉사자가 대학에서 활동을 했고 졸업생 역시 상당히 많이 배출되었다. 학과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학과 운영이나 수업의 체계가 잡혀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OJT 기간에 학과를 방문했을 때 학과 사무실에는 교재를 비롯하여 다양한 교구들, 심지어 한복과 사물(괭과리, 징, 북, 장구)까지 갖춰져 있었고 다양한 출판사에서 발행한 교재 역시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인정한 교육과정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출결이나 평가에 대한 규정도 이미 마련이 되어 있었다. 많은 봉사자들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면서 학과의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한국어를 더 잘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봉사활동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당연한 이야기이고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도 이렇게 말한 것은 봉사활동의 여건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는 대신 아이들과의 만남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그 순간이 가장 소중하며 그 아이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통해 내 봉사활동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어를 넘어 한국 문화, 한국인으로 아이들의 지평을 열어가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20240122_161625.jpg


keyword
이전 04화두 아들을 시엠립에서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