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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그리고 시험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by 지천

경쟁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

수업 준비를 하면서 오늘은 아이들에게 퀴즈를 내고 그것을 맞히는 사람에게 상품을 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마침 한국에서 가져온 삼색 볼펜이 있어 그것을 상품으로 주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고 또 그만큼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수업할 범위에 종합 연습 문제가 있어 살펴보니 아이들과 함께 퀴즈 형식으로 하면 좋을 듯했다. 방송을 듣고 들은 단어의 글자를 찾아 거기에 ○표를 하는 것이었다. 맨 위에 예시가 나오고 그 아래 신문 기사 한 토막, 요리 안내서 일부, 그리고 동화 한쪽이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방송에서 단어를 말하면 그것을 듣고 글 속에서 해당하는 글자를 찾는 활동이었다. 가령 방송에서 ‘포도’라는 단어를 말하면 아이들은 ‘포’와 ‘도’를 찾으면 된다. 물론 제시된 글 속에 ‘포도’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제시된 세 종류의 글에서 각각 ‘포’자와 ‘도’자를 찾는 것이다. 이제 한국어를 배운지 얼마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음절을 익히게 하려는 의도가 담긴 활동이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옆자리에 앉은 박선생님께 물어보았다.


“박선생님 보시기에 캄보디아 아이들, 경쟁심이 있나요? 있다면 어느 정도인가요?”


퀴즈를 내고 맞히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게 되면 능력에 따라 받는 아이들도 있고 못 받는 아이들이 생겨날 터인데 괜히 아이들에게 경쟁심만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서 이 아이들을 나보다 오래 보아온 박선생님께 물어본 것이다. 박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사실 그 문제는 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예요. 이곳 아이들은 경쟁심이 별로 없어요. 물론 시험을 보고 성적을 산출하지만 아이들이 점수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점수를 이야기하고 또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 졸업시험을 보고 그 결과 B학점 이상이면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나요?”

“맞아요. 그럼에도 아이들은 크게 경쟁 의식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아요.”


내가 고민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퀴즈를 내고 그것을 맞추는 아이에게 상품을 주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편이다. 상품은 대개 사탕을 비롯하여 간단한 것이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아이들이나 선생님이나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선생님들은 그러한 방법을 통해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가끔 그랬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다르단다. 퀴즈를 내고 가장 먼저 맞추는 사람에게 상품을 주겠다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다. 공연히 아이들의 경쟁심을 부추길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상품 주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방송 듣고 해당 글자를 찾게 할까 생각했다. 수업이 좀 밋밋해지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한 번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정말 그러한지, 상품을 앞에 두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볼펜 꾸러미를 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출석을 부르고 난 뒤 오늘 수업할 쪽 숫자를 칠판에 적었다. 아이들더러 읽어보라 했더니 두 자릿수 정도는 아주 자연스럽게 읽는다. 다음 백 단위, 천 단위, 만 단위, 오늘은 십만 단위까지 적어서 읽어보도록 했다. 매일 이렇게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복적으로 제시하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숫자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교재에 나오는 경음과 격음을 먼저 공부했다. 읽고 쓰는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발음을 교정해 주고 또 획순이 잘못된 아이들을 보면 그 자리에서 수정을 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뼈’라는 단어를 제대로 소리내지 못했다. 내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다. 몇 번을 시도해도, 몇 명의 아이에게 소리를 내서 읽어보라 해도 여전히 ‘뼈’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비슷하게 발음을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정확한 소리는 아니었다. 나 역시 크메르어를 한국어로 적을 때 크메르어 발음을 제대로 듣지 못해 애를 먹은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 아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어서 종합 연습 부분.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서 오늘 할 활동을 소개했다. 오늘은 종합 연습에 나오는 활동을 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방송을 듣고 해당하는 글자를 책에서 찾는 활동이다. 찾은 사람은 조용히 손을 들기 바란다. 맨 먼저 손을 든 사람, 정확하게 찾았는지 확인해 보고 이 볼펜을 주겠다. 먼저 연습을 해 보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방송을 켜니 ‘여자’라는 단어가 나왔다. 아이들에게 제시된 글 속에서 ‘여’자와 ‘자’자를 찾도록 했다.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래도 아이들은 진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글자를 찾은 아이가 있어 칭찬을 해 주고 본격적으로 글자 찾기를 시작했다.

다음으로 나온 단어가 ‘우유’였는데 역시 찾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세 번째로 들은 단어에 해당하는 글자를 찾게 하고 아이들을 둘러보는데 앞자리 세 명이 손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는지 물어보니 아이들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세 명에게 가위바위보를 하게 했다. 아니, 하게 했다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것 같기도 했다. 리야가 이겨서 볼펜 한 자루를 주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세 명에게 그냥 다 주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즈가 진행될수록 아이들 글자 찾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게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글자를 찾는 과정이 몇 번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제시된 글에 익숙해졌을 테고 그래서 빨리 찾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당연히 상품에 대한 욕심이 찾는 속도를 빠르게 했을 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볼펜을 받은 아이가 다시 맨 먼저 손을 드는 일이 생겼다. 아직 받지 못한 아이에게 우선권을 주겠다고 하고 계속 찾게 했다. 아이는 순순히 수긍을 했다.

방송에 나오는, 여덟 개의 단어를 다 찾은 뒤 물어보았다. 아쉬움이 남지 않는가? 보너스로 하나 더 하면 좋지 않겠나? 아이들 반응이 적극적이지 않았다. 한국의 아이들이라면 내가 제안을 하기 전에 더 하자는 요구를 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볼펜을 받아가는데 자신은 받지 못하는 것이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뜻밖의 반응에 나도 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여기서 끝낼까 하다가 기왕 말을 꺼낸 거, 단어 하나를 불러주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내가 부르는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를 열심히 찾았다. 다시 하나 더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아이들 욕구만 부추기는 일이 될 것 같아서였다. 결국 맞힌 아이는 짠타, 니싸이, 리야, 쯘렝, 디나, 린나, 마니읃, 레악싸였고 그들이 볼펜을 한 자루씩 받아갔다. 언제 배웠는지 볼펜을 받으면서 한결같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볼펜을 주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책에 적었는데 그들이 부르는 이름을 듣고 적은 것이 잘못된 모양이다. 내가 ‘마미엣’이라 적은 아이의 이름이 출석부에는 ‘마니읃’이라 적혀 있다. 다른 아이들 이름도 그랬다. 어떤 아이는 직접 수정을 해 주었다. ‘닉사이’라 적으니 ‘니싸이’라 수정을 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띠나’라 적은 것을 ‘디나’로 수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발음을 나 역시 정확하게 듣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이들 역시 그러하리라.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더라도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이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니 더 그러할 것이다. 나 역시 크메르어를 배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러할 테고.

볼펜을 받을 수 있는 문제를 푸는 아이들은 진지했다. 아니 볼펜이 상품으로 걸려 있지 않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진지했을 것이다. 이전 시간부터 늘 그러했으니까.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다시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오늘 상품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받지 못했다고 집에 가서 울지 마라. 크메르어로 번역된 그 글을 읽은 아이들이 울음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덩달아 웃을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박선생님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한국에서 수업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하던 말, 행위들이 이곳 아이들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경쟁이 사회 발전을 추동해 내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파괴되는 인성이 문제라는 것, 그래서 좀더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 등등. 나 역시 수업을 하기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난 뒤에 그러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얼마나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냐는 것 아닐까? 아이들의 순수함을 살려내면서 흥미 있게 수업에 참여하게 하는 것, 그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1학년 첫 시험

수업을 마친 오후 시간에 1학년 학생들 시험지 채점을 했다. 문제를 내면서 너무 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험을 치는 동안 아이들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금요일, 촐츠남 연휴를 앞둔 금요일 3교시에 시험을 봤다. 출제를 하면서 아직 한글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니 한글과 크메르어로 발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예시 문항을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 생각처럼 아이들은 한글로만 된 문제도 어렵지 않게 풀었다. 발문을 이해하지 못해 풀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다만, 아이들이 시험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이 시험공부를 하지 않은 티를 냈다. 가령, 자음의 이름을 쓰는 1번 문제를 푸는데 많은 아이들이 자음의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아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 자음과 모음의 이름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자음, 모음의 이름만 알면 음절을 구성하고 발음을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하는 이유도 자음, 모음을 결합하여 거의 무한에 가까운 음절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아주 섬세한 것까지 다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다른 두 분의 선생님으로부터 자음과 모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터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자음의 이름을 적으리라 기대를 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문제에 대해 답을 하는 모습도 비슷했다. 물건과 장소의 이름을 적는 문제에서 제대로 적지 못하는 아이가 제법 있었다. 모두 교재에 제시된 단어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짧은 문장을 만드는 것도 그러했으며 숫자를 한글로 적는 것도 역시 그러했다. ‘천’을 ‘전’으로 적어서 몇 문항을 틀린 아이가 있었는데 채점을 할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숫자는 수업 시작 전 계속 반복해서 연습을 했던 것이다. 한국어를 배울 때, 혹 한국에 가서 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이 쓰이고 또 중요하게 쓰이는 것이 숫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나도 그렇다. 캄보디아에서 생활하면서 숫자를 제대로 들을 수 없어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러 있었으며 때로는 물건값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해 애를 먹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경우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자기가 가진 돈을 보여주며 그만큼 달라는 몸짓을 해서 해결하기도 하고 또 휴대폰에 숫자를 찍어서 보여주면서 물건값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물건값을 지불할 수 있었지만, 언어를 배우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고 나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수업 시작 전 공부해야 할 쪽수를 먼저 칠판에 적고 아이들이 읽어보도록 했다. 그 다음에는 한 자리 더 늘려 적고 다시 한자리 더 늘려 적는 방식으로 만 단위, 십만 단위 이상의 숫자를 한글로 읽을 수 있도록 매시간 되풀이 해서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되풀이되는 연습을 통해 제법 잘 읽어내기에 이번 시험에서 문제로 출제해 보았는데, 한글로 적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던 것이다. 내가 ‘천’이라 읽은 것을 아이들은 ‘전’으로 들은 모양이다.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보려고 애를 쓴다. 아이들이 제대로 발음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내가 먼저 단어나 문장을 읽고 아이들이 따라하는 식으로 수업을 전개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 가까이에 가서 그들의 소리를 듣고 또 정확하지 않게 소리를 내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수정을 하도록 해 주는 방식으로 발음 교육을 해 왔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단어는 몇 번을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아이들 하나하나의 소리를 교정해 주지는 못한 모양이다. 이번 시험을 보면서 그런 사실을 알았다. 앞으로는 더 섬세하게 다가가야 할 것 같다.


시험은 왜 보는가

오늘 3학년 중급 한국어 Ⅱ(Korean Intermediate Ⅱ) 과목 시험을 쳤다. 시험을 치기 전, 한 시간 동안 시험공부를 하게 했다. 이곳의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험과 그 시험의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는 것이 참 좋아 보였지만, 그래도 공부를 너무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서 시험공부를 하도록 시간을 따로 줘 본 것이다. 사실 시험공부라기보다는 복습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배운 내용을 던져두기만 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학생들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따로 공부를 더 하는 모습, 즉 복습을 하는 모습은 잘 볼 수가 없었다. 시험의 결과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시험공부를 하라고 시간을 주고 한 바퀴 둘러보니 아이들은 건성으로 책을 넘기는 것 같았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그런 듯했다. 어떤 아이는 핸드폰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영어 단어를 늘어놓고 그것을 한국어 문장에 맞게 배열하는 문제, 아니면 영어 문장을 주고 한국어 단어들을 맞게 배열하는 문제가 이어지는 그런 게임이었다. 어쨌든 한국어 공부를 하긴 하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시간이 모자라 분치기 초치기까지 하는 한국 학생들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영 낯설었다. 그 아이, 다른 아이보다 수업에 더 잘 따라오는 아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쳐다보니 그 아이도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그저 미소만 보냈다. 아이도 약간은 멋쩍은 듯 살며시 미소를 보내왔다. 그래, 어쩌면 이 아이의 생각이 옳을지도. 성적에 연연해 할 필요가 뭐 있는가? 그저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시험이라는 것을 통해 점검해 보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는가? 그 아이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평스러운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 아이의 생각을 이렇게 짐작할 뿐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난 뒤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가져간 사탕을 두 알씩 나누어주었다. 별거 아닌데도 아이들은 무척이나 고마운 얼굴로 받았다. 시험을 치는 동안 아이들 시험지를 계속 보면서, 제대로 답하지 못한 아이는 시험 끝나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 했는데 여느 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시험을 못 쳤으리라 생각되는 아이 역시 사탕 두 알을 진지하게 고르고 맛있는 표정을 지으며 먹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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