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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설 명절 쫄츠남, 그리고 계기교육

by 지천

캄보디아 설 명절인 ‘쫄츠남’ 연휴가 끝났다. 쫄츠남 휴일이 4일인데 토요일, 일요일이 끼어 있어서 수업을 하지 않는 날은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뿐이었다. 여기는 한국과 달리 대체공휴일이 없다.

연휴가 끝나고 3학년 수업을 했다.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장선생님 말로는 어제, 즉 수요일에는 세 명만 수업에 참여했다고 했다. 오늘은 두 명, 어제보다 더 적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명씩 교실로 들어왔다. 그래서 수업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10명. 그래도 7명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향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학생들이리라. 아침에 쏘캇에게서 문자를 받았는데 아직 고향에 있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다른 아이들 사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수업 과목이 한국의 문화와 관련된 것이어서 한국의 설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먼저 유투브에 나오는 17분짜리 동영상을 보았다. 요즈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 7,80년대의 설 이야기지만 우리의 설날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같이 본 것이다. 설날이 신정과 구정으로 나뉘어져 진행되다가 다시 민속의 날로, 그리고 설날이라는 이름을 회복하는 과정이 동영상 속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유과를 비롯한 설날 음식, 윷놀이, 제기차기, 팽이돌리기, 연날리기 등 내가 어렸을 때 즐겨했던 놀이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우리의 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한 뒤에 다시 동영상을 보면서 그 내용을 확인하도록 했다. 아이들이 영상을 보는 동안 나는 영상 속에 나오는 단어를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 영상 시청이 끝난 뒤에 칠판에 적힌 단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3학년이라 하더라도 영상 속에 담긴 이야기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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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간에는 학생들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오게 해서 자신이 보낸 설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3학년이기에 가능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들이 말하는 동안 나는 옆에 서 있으면서 문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들을 그 자리에서 고쳐주고 다시 말하게 했다. 아이들은 고향에 가서 가족들과 파티를 한 일, 가족들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음식을 드리고 기도를 한 일, 그리고 상크란 축제 때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끼얹은 일에 대해 말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다 하고 난 뒤에 나는 내가 보낸 설 명절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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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쫄츠남 연휴 때 프놈펜에 가서 버스를 타고 캄폿에 갔어요. 캄폿에서는 깹 해안에 가고 또 염전도 구경했어요. 후추농장에 가서 후추 나무를 둘러보고 기념으로 후추를 사기도 했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컴폿 후추가 유명해요. 다음날 코롱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시아누크빌로 가야 해서 기차를 타려고 역에 갔는데 기차는 무려 한 시간 이십 분이나 늦게 도착을 했어요. 그래도 천천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캄보디아 남부의 풍경을 보는 것은 참 좋았어요. 시아누크에서 배를 타고 코롱섬에 가니 연휴라 그런지 가족들이 많이 놀러왔어요. 거기서 이틀을 쉬다가 다시 시아누크빌로 나와서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프놈펜으로 돌아왔어요. 시아누크빌에서 프놈펜까지는 캄보디아에 하나밖에 없는 고속도로를 달려서 그런지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들이 연휴 때 친구들이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며 즐거워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선생님도 그 모습을 많이 봤어요. 정말 흥겨운 장면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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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 눈동자가 더 초롱초롱해졌다. 여행을 많이 하지 않는 아이들이기에 자기 나라를 소개하는 말에 솔깃했으리라. 이어서 나는 연휴 마지막 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프놈펜 공항에 갔다가 거기서 만난 캄보디아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만났다기보다는 그냥 쳐다본 것이지만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해서 말한 것이다. 내가 본 것은 단체복을 입고 항공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캄보디아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가슴에 캄보디아 국기와 태극기가 달린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국에 일하러 가는 청년들인 듯했다. 그들이 줄을 서 있는 공항 대합실 한 켠에는 “We are the FUTURE of CAMBODIA”라는 글귀와 함께 굴뚝에 연기가 피어나는 공장 그림이 새겨진 입간판이 서 있었다. 한국에 가서 생활 잘 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그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러한 수업을 하면서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한국과 캄보디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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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한창훈 작가가 쓴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는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면 아이들은 지난 상크란 축제 때 다른 사람에게 물을 뿌린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일본의 시라하마 아마(海女) 축제를 봤다.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관장하는 여신(女神)이 있는데 축제는 위패를 여신의 거처인 무인도의 사당으로 옮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몇 시간 일찍 무인도로 간 해녀들이 물질을 한다.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제물로 하여 제관이 제를 지낸다. 마치고 나서 음복하는 것까진 일반적인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그곳 사람들은 그날 바닷물을 뒤집어쓰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행운이 온다고 믿기 때문에 서로 바닷물을 뿌린다. 항구로 돌아오는 배에서부터 흔히 ‘동끼’라 부르는 펌프로 옆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착한 항구에서도 그 행위는 하루종일 이어진다. 남녀노소 모두에게서 웃음소리와 즐거운 비명소리가 쉬지 않고 나온다. 양동이로 물을 끼얹고 도망가면 쫓아가서 복수해주는데 바닷물을 많이 뒤집어쓸수록 좋은 게 되기 때문에 유쾌하기만 하다. 물이라는 게 죽음과 재탄생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 따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시원하다. 종일 그러고 난 주민들의 얼굴을 보자. 해묵은 감정의 찌꺼기까지 모두 해소된, 완벽한 빈 것이 된 듯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어느 나라든 물에 대해서는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바로 ‘정화’의 의미다. 나는 캄보디아의 설날인 쫄츠남 때 캄폿을 비롯하여 캄보디아 남부 지역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에게 물을 끼얹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트럭 뒤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물총이나 호스를 이용해서 물을 끼얹었다. 다행히(?) 툭툭을 타고 다닌 우리 쪽으로는 물살이 향하지 않았다. 물벼락을 맞지 않은 내가 조금 섭섭할 정도로 물을 맞는 사람 모두 즐거워했다. 그들이 서로를 정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더운 나라에서는 그러한 행위 자체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프놈펜에서는 더 심했다. 밤늦게까지 오토바이나 차량을 이용해서 서로에게 물을 끼얹고 있었으며 도시는 음악과 이들의 즐거운 비명이 뒤섞여 늦은 밤까지 흥청거렸다. 내가 자리를 비운 바탐방 역시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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