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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교실에서

by 지천

3학년 통역, 혹은 번역 수업

3학년 수업. 예정된 30시간이 끝났다. 한 학기가 끝이 난 것이다. 이제 기말고사를 치면 아이들은 방학을 한다. 시험은 다음 주 월요일에 치기로 하고 마지막 수업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교재를 내려놓고 크메르어로 된 대화를 듣고 그것을 한국어로 옮겨 적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일종의 통역 공부를 하는 셈이다.

일전에도 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하다가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가끔 크메르어를 듣고 그것을 한국어로 적어보도록 했다. 그렇게 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크메르어를 듣고 한국어로 옮겨 쓰는 수업은 한국어를 불러주고 그것을 적게 하는 것, 즉 받아쓰기와 많이 다르다. 받아쓰기를 할 경우, 아이들이 글자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한 것만 확인할 수 있다. 불러주는대로 쓰면 되니까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크메르어를 번역, 혹은 통역하는 경우는 많이 다르다. 대화 형식으로 된 방송을 듣고 그것을 한국어로 옮겨 적거나 말을 하게 하는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아이들이 많이 틀리는 것이 높임법이다. 아이들은 이 부분을 어려워하면서도 잘못한다. 가령 크메르어를 한국어로 옮겨 적을 때 이렇게 적은 것을 보게 된다. “제가 그것을 먹을게”, 혹은 “나는 오늘 그곳에 가지 못합니다.”와 같은 문장들 말이다. 물론 ‘나는 오늘 그곳에 가지 못합니다’와 같은 문장은 한국에서도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을 ‘저는’으로 고쳐 말해야 한다.

조사의 문제는 좀더 심각하다. 가령 ‘네 전화번호를 몇 번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조사 ‘은, 는, 이, 가, 을, 를’은 한글을 배울 때 어떻게 구별해서 쓰는지 반복해서 설명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앞말에 받침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조사를 달리 쓴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3학년이 된 아이들, 그러니까 2년 이상 한국어를 공부한 아이들도 이렇게 잘못 쓰는 일이 더러 있다. 그래서 내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네 전화번호는 몇 번이야?’, ‘네 전화번호를 좀 알려줄래?’ 이렇게 고치고 조사의 사용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한다. 그래도 다음에 하면 비슷한 실수가 반복이 될 것이다. 받아쓰기를 할 때는 이런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받아쓰기를 할 때는 이미 조사가 제대로 사용된 문장을 불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메르어를 듣고 한국어로 바꿔 쓸 때 이런 문제를 확인하고 고쳐주기 쉽다.

수사의 문제 역시 비슷하다. 가령 ‘옷 두 벌에 십 달러입니다’라는 문장을 크메르어로 듣고 그것을 한국어로 쓰게 하면 몇몇 아이는 ‘두 옷’, 혹은 ‘2옷에 10달러’ 이런 식으로 적는 경우가 있다. 역시 받아쓰기를 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옷 두 벌로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메르어를 듣고 한국어로 적을 때는 이런 문제가 비교적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을 고쳐 주었을 때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못 쓴 것이고 그것을 고쳐보았기 때문이다.

2학년 역시 30시간의 수업이 다 끝났을 때 이런 수업을 해 보았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진지했으며 또 흥미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했다. 2학년임에도 3학년 아이들만큼 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이런 수업은 내게도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이렇게 수업을 함으로써 나는 지금까지 배운 크메르어를 다시 떠올려 볼 수도 있고 또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해 봄으로써 내가 배운 크메르어를 더 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3학년 말하기 평가

3학년 학생들 말하기 평가를 했다. 나는 내가 담당하는 3학년 수업 두 과목 중 한 과목은 글쓰기를 과제로 제시했다. 주제는 ‘한국 친구에게 캄보디아를 소개하는 글쓰기’였다. 두 과목 모두 글쓰기 과제를 내는 것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다른 한 과목은 말하기를 통해 평가를 하고자 했다. 말하기 주제는 ‘졸업 후에 하고 싶은 일’이다. 일주일 전에 미리 발표 준비를 하도록 아이들에게 예고를 해 두었다.

8시 50분, 교실에 들어가니 아직 네 명의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두 명의 아이가 들어왔다. ‘는’과 ‘쏘다윈’이다. 두 명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숙소에서 같이 살고 있다. 그래서 늘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온다. 그래서 늦게 올 때는 두 명이 같이 늦게 온다. 두 명을 앞으로 나오게 해서 왜 늦었는지 물어보았다. 두 명 모두 어제 행사가 있었고 그래서 늦게 잠을 잤단다. 아니, 쏘다윈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고 는은 아침에 학교 올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늦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질문이 이어졌다. 그 사이 소캇이 교실로 들어와 세 명이 앞에 서게 되었다. 다시 쏘다윈에게 물었다. 어제 행사를 할 때 무엇을 했느냐고. 한국어로 된 파워포인트 자료를 캄보디아로 통역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통역과 번역이 번갈아 나오길래 칠판에 번역과 통역을 적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해 주었다. 많은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통역사다. 그런데 번역가가 되겠다는 아이는 보지 못했다. 통역사는 관광지에 가면, 또 회사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번역가는 주위에서 쉽게 보지 못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 주었다. 한국어를 더 잘 할 수 있다면, 한국의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면 한국의 문학이나 생활 관련 책을 크메르어로 번역하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 했다. 아이들이 솔깃해 한다. 그러고도 쏘다윈에게 몇 가지 더 물어보았다. 대답을 준비하고 또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어 실력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소캇에게 늦은 이유를 물었더니 어제 목이 아프고 머리에 열도 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감기에 걸린 것 같냐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농담으로 그럼 코로나 아니에요 하니까 모두들 웃고 소캇을 손사래를 친다.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아이들을 자리로 돌려보냈다. 아직까지 안 온 한 명의 학생, 븐탄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주 결석을 하기도 한 븐탄, 하지만 요 며칠은 학교에 잘 나오고 또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했던 븐탄, 부디 안 좋은 일이 없기를…….

븐탄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아이들 장래 희망에 대한 발표를 듣기로 했다. 발표를 하기 전, 촬영을 해도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대부분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특별히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발표 순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니 그냥 번호순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한두 명이 한다. 번호가 빠른 사람은 늘 일찍 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냐, 아니면 번호 빠른 사람과 늦은 사람을 번갈아 하면 어떻겠냐 물으니 다들 수긍하는 눈치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준비를 많이 해 와서 그런지 아이들은 자신의 꿈에 대해 조리있게 말을 잘 했다. 중간고사 마지막 문제인 글쓰기 평가를 할 때는 다소 실망을 했는데 역시 말하기는 글쓰기와 다른 모양이다. 더구나 준비할 시간이 일주일 정도 있었으니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더 잘 말할 수 있었을 테고. 학생이 발표를 끝낼 때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앉아서 듣고 있던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나도 발표를 마친 학생에게 간단하게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학생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학생에 따라 유창성의 정도가 달랐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에 어울리는 적절한 단어를 찾고자 애를 썼다. 그게 대견하다. 이 아이들 그래서 좋다. 과제 평가의 일환이고, 점수가 중요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애들이 아니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다른 아이들 앞이기도 하고 또 선생님이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열심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아이들 발표하는 모습 바라보는 것도 좋고 또 아이들 한국어 말하기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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