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환영회
신입생환영회
잠을 설쳤다. 어제는 프놈펜에서 차를 타고 다섯 시간 동안 이동해서 바탐방까지 오고, 숙소에 도착해서는 짐 정리한다고 제법 피곤했는데, 자리에 누우니 잠은 오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만 많아졌다. 숙소가 낯설어서였을까? 프놈펜에서 교육을 받는 5주 동안 호텔에서 혼자 자고 일어나는 일을 반복했기에, 그래서 이런 잠자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기에 숙소 때문에 잠을 설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이유는 실감의 문제일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생활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감이라 하는 것은 마음이 온전하게 이곳 캄보디아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것이다. 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국에 있는 집을 떠나 있어야 하지만 마음은 온전하게 그곳을 떠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 한국어학과에서 신입생환영회를 했다. 총장까지 참석해서 격려사를 할 만큼 이 학교에서는 제법 소중한 행사다. 캄보디아의 모든 대학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바탐방대학교에서는 신입생을 모아놓고 별도의 입학식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신입생들에게는 이렇게 학과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무척이나 소중할 수 있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느낌, 그리고 한 조직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첫 행사이기 때문이다.
아침 여덟 시에 학교에 가서 행사 준비하는 것을 도왔다. 어제 이곳에 왔기에 선배 단원들이 행사를 위한 준비를 다 해 놓았기 때문에 별로 거들 일도 없었다. 그저 행사 진행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교수진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 사무실에서 온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직 완전히 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관찰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주인이 되어 행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낯선 느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나도 조금은 낯설었다.
두 분 봉사자 선생님, 그리고 왓타나 학부장님을 비롯하여 외국어학부 식구들, 그리고 한국어학과 재학생들의 노력으로 행사는 참 알차게 준비되었고, 진행 역시 아주 매끄러웠다. 그만큼 내용도 좋고 참석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특히 축사를 한 총장님은 무척이나 열정적이었다.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에 잠시 총장님을 만나 면담을 할 때 느꼈던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크메르어로 축사를 해서 그 내용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이들 표정을 보니 무척이나 진지했다. 신입생들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다소곳이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고 주변에 앉은 재학생들 역시 신입생들 만큼 긴장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총장의 축사에 집중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총장이 한 이야기는 신입생에 대한 의례적인 축하 인사도 있을 것이고 또 대학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겠지만 축사를 하는 열정적인 모습에 새삼 감탄사가 나왔다.
총장의 긴 덕담에 이어진 기념 촬영. 참가자 모두가 단상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후 총장은 행사장 밖으로 나가고 왓타나 학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길게 이야기했다. 화면에는 출결 및 졸업 규정 소개라고 나와 있는데, 신입생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안내하는 모양이다. 이어서 교수자 소개, 두 분 봉사자에 이어 내가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내 이름과 내가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한 달 전에 캄보디아에 왔다는 것, 그리고 바탐방 대학에서 같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4학년부터 시작된 재학생 소개. 당연한 것이겠지만, 학년이 높을수록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능숙하다. 발음을 들어보면 한국인과 크게 구분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아이도 있다. 하지만 2학년이 자기소개를 할 때는 모두가 하나같다. 존경하는 선생님, 그리고 학우님들!로 시작하는 인사가 한결같다. 자신의 이름 이야기하는 정도 다를까? 신입생이 자기소개를 할 때는 더 놀랐다. 아직 한국어를 모르는 아이들이니까 당연히 크메르어로 자신을 소개하지 않을까 했는데 첫 아이부터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더니 마지막 아이까지 그렇게 했다. 아하, 이 아이들 등교한 지 이 주일 정도 되었다 하더니 그동안 연습을 한 것이구나. 비록 틀에 박힌 인사말이지만, 짧은 시간에 그 정도로 자신을 소개하도록 한 선생님들의 수고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아니면 워낙 한국 영화나 드라마, 노래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니 자기소개 정도는 느끈하게 한국어로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긴 소개 시간이 끝나고 이어진 것은 선배들의 학습 경험담. 작년 왕립프놈펜대학교에서 실시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과 2등을 한 아이들의 동영상을 보고 그 아이의 경험담을 듣는 시간이었다. 3학년인 남자아이는 인물도 잘생겼지만, 말도 참 잘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으나 진지하게 듣는 신입생들의 모습에서 그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어진 4학년 여학생의 이야기 역시 그러했으리라. 특히 그 여학생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니 신입생들에게는 무척이나 닮고 싶어지는 선배였으리라.
이제 마지막, 신입생을 위한 축하공연이 선배들에 의해 펼쳐졌다. 모두 네 팀, 한 팀은 네 명이 나와 기타와 피아노 연주에 맞춰 한국노래를 불렀고 나머지 세 팀은 K-pop에 맞춰 춤을 췄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정말 춤을 잘 췄다. 한국에서 학교에 근무할 때 우리 아이들 춤추는 것을 가끔 봤다. 야영 행사를 할 때나 혹은 학교 축제 때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춤을 췄다. 그런데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에서 다시 한국 춤을 보게 되었다. 비록 춤을 추는 학생이 다르고 분위기가 조금 다르긴 해도 내가 보기에는 여기 아이들이 추는 춤 역시 한국의 아이들이 추는 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바탐방대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시간, 행사장에서 만난 신입생처럼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그 설렘으로 아이들 만나면 이곳에서 보낼 일 년의 시간이 더 의미있고 보람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지금 이 시간을 오래 마음에 간직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