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나, 느린 나, 지친 나, 아쉬운 나

나의 속도로 걷기

by 기쁨과 감사

우리나라 사람들은 빠른 것을 참 좋아합니다. 요즘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중학생들은 1학년 때 벌써 미분과 적분을 배운다고 해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복근 4주 완성”, “1년 만에 1억 만들기” 같은 책이나 영상을 흔히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복근은 근육량도 중요하지만 체지방이 15% 미만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요. 보통 몸매라고 하는 남성의 체지방률은 20~25%라고 하니, 4주 만에 복근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혹독한 식사조절을 해야 합니다. 1년에 1억을 만들기 위해서는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고 남은 금액이 월 800만원 이상이어야 합니다. 5000만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월복리로 약 6%의 수익이 나야 가능하고요. 우스갯소리로 2억을 가지고 주식을 하면 금세 1억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니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없지 않으니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빠른 사람이 있으면 느린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상당히 느린 편에 속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둘째는 깨우는데 30분, 씻는데 30분, 먹는데 30분, 옷 입는데 30분’. 같이 외출하기도, 유치원 보내기도 힘드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느린 속도로 지금껏 잘 살아왔어요. 회사에서 식사할 때 가끔 불편하긴 해요. 배가 고파 음식을 많이 담은 날에는 음식을 볼에 가득 넣고 부지런히 씹어야 합니다. 빨리 먹지 않으면 동료들은 다 먹고 기다리거든요. 그럴 때는 턱이 아파서 혼자 먹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동작만 느렸어야 했는데 취업도 결혼도 늦었습니다. 밥 먹는 정도야 느릴 수 있지만 취업이나 결혼이 늦으면 상당히 괴로워요. 박사학위를 받고 6개월을 놀다가 겨우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놀던 기간 동안 연구실에 계속 나갔는데 후배들 보기가 부끄러워서 혼났습니다. 결혼은 27살에 하고 싶었는데 38살에 아내를 만났어요. 영영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아내가 저를 구해주었습니다.


사람마다 잘하고 빠른 분야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분야도 있습니다. 재능과 노력을 두 축으로 해서 구분해 보면 네 가지 유형이 나옵니다.

이 네 가지 유형은 공부, 운동, 음악, 미술, 연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20대의 저를 돌아보면 공부에서는 아쉬운 나 인 것처럼 행동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시작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라고요. 사실은 지친 나였는데 말이죠.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려고만 했던 그때가 참 아쉽습니다. 다행히도, 언제든지 노력을 시작하면 지친 나가 느린 나가 되는 것은 가능해요. 20대 후반부터 지친 나를 다독여서 느린 나로 변화시켰습니다. 느린 나 가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다른 동료들에 비해 조금 늦긴 했지만 박사학위도 받았고 취업도 했습니다. 반면에 운동에서는 처음부터 느린 사람이었어요. 날마다 뛰고 근력운동을 한 덕을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빠른 나’가 거둔 성공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소재이기 때문이에요. 당장 저부터도 빠르게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느린 나’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만큼 앞서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았던 이야기 말이죠. ‘빠른 나’의 이야기는 부러움을 주지만, ‘느린 나’의 이야기는 용기를 주거든요.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용기는 시작하게 합니다. 재능은 대부분 타고나는 것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뿐이에요. 재능이 있다면 조금 더 빨리, 재능이 부족하다면 조금 더 늦게 성공한다는 차이는 있을 테지요. 노력하지 않으면 재능과 관계없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도 ‘느린 나’의 활동 분야를 넓히려고 합니다. 그게 제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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