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책에서 집 생활과 관련된 물건들을 파는 ‘홈바디라보’라는 온라인 편집숍을 보았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소위 I들을 위해 집 생활을 편안하게 만드는 물건들을 큐레이팅하는 브랜드이다. 순간 라이프스타일 커머스인 ‘오늘의 집’이 떠올랐는데, 좀 더 읽어보니 오늘의 집과는 다른 그만의 유니크니스가 있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면, 제품 카테고리를 가구, 패브릭, 주방용품, 조명, 수납/정리 등의 제품류로 나누기 보다는 아래와 같이 4가지 ‘가치’에 따라 나누고 있다.
집 생활의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해 불편함을 줄여주는 ‘문제해결사’,
집 공간에 분위기를 더 해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무드메이커’,
집에서의 시간을 채울 취향을 제안해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취향편집자’,
집 생활의 안녕과 지구의 안녕을 동시에 생각해 마음의 불편함을 완화하는 ‘에코프랜드’
문제 정의부터 집이라는 하드웨어 공간을 중심이 아니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카테고리였다. 사실 ‘문제해결사’, ‘무드메이커’ 같은 카테고리명이 기존의 제품류 기준에 익숙한 사용자들에게는 낯선 탐색이 될 수도 있다. 더 알아보려고 구글링 해보았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지 더 정보를 찾기 어려웠던 관계로 실제 사용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지를 더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존의 전통적인 제품 카테고리를 따르지 않는 이 카테고리는 최소한 집 생활을 좋아하는 고객(homebody, 홈바디) 관점에 기반하여 만들어졌으며, 웹사이트도 이런 가치를 일관되게 전달하기 위한 콘텐츠로 구성되었다. 이런 편집숍이 니치하기는 해도 집 생활에 높은 가치를 주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임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종합적인 상품 큐레이팅을 하는- 종합몰에 가까운 서비스의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데, 반면 종합몰은 이런 tailoring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예를 들면, 미디어 커머스라는 시장 트렌드를 반영하여 이미지 중심으로 상품 탐색을 하는 신규 기능을 기획했다. 이때 이 기능에서 어떤 제품군을 보여줘야 하지? 라는 고민이 따라왔다. 처음에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는 무드가 중요한 가전이나 패션 쪽을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또 식품이나 생활용품, 도서 카테고리를 제외한 일부 카테고리에만 넣자니, 서비스 전체의 조화(?)를 생각했을 때 이 기능이 잘 녹아들어 갈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상품군마다 성격이 다른데 종합몰은 전체를 아우르다 보니 각 카테고리 특성에 맞는 섬세한 경험을 제공하는 게 어렵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제품 상세 페이지에서 주요하게 노출해야 할 정보가 다르고, 쿠폰과 프로모션의 성격도 다르다.
종합몰이 더 까다롭다는 얘기는 비단 내 경험만이 아니다. 도그냥님의 아티클에서는 이런 고충을 ‘종합몰의 저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버티컬*이어서 할 수 있는, 버티컬이어서 더 돋보이는 사용자 경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가볍게 살펴봤다.
* 버티컬 커머스는 패션이나 식품 등 한 카테고리에 집중한 커머스를 말하는데, 예컨대 무신사나 에이블리, 오늘의 집이 대표적이다. 반면 종합몰은 모든 카테고리를 다 팔고 있는 다이소나 쿠팡 같은 서비스를 말한다.
배달의 민족은 메인페이지에서 배달 음식 메뉴를 굉장히 세분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다음 한 가게를 선택해 들어가면, 배달 메뉴 탐색 기능이 나온다. 특히나 이 퍼널에서 메뉴 탐색 과정을 섬세하게 설계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우선 리스트형으로 나열된 음식 종류를 스크롤다운하면서 하나씩 살펴볼 수 있다. 전체 메뉴판은 메인메뉴/사이드메뉴/세트메뉴/음료 등 카테고리로 정리되어 있으며, 전체 메뉴리스트가 길 경우 ‘메뉴 검색’을 사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메뉴의 인기 정도를 보여주는 ‘메뉴별 리뷰’도 바로 밑에 달려 있어 해당 메뉴를 선택할 때의 또 다른 판단 기준이 된다.
다음으로 여성 패션 1위 쇼핑앱 에이블리를 살펴보았다. 메인페이지인 ‘홈’에서 보여주는 주요 메뉴에 ‘쇼핑몰’, ‘브랜드’가 눈에 띈다. 패션 버티컬이기에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분류라고 느껴진다. 저가 의류와 패스트패션을 선호하는 고객 세그먼트와 더 비싸고 질 좋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하는 고객 세그먼트를 첫 화면부터 집중적으로 나누어 타겟팅하고 있다.
또한 이미지와 비주얼이 중요한 패션 쇼핑앱답게 이미지 크기를 키워, 모바일 화면 기준 한 화면에 오직 4개 상품만을 레이아웃하고 있다. (아래 사진 참고)
이 비주얼 중심의 원칙과 관련하여, ‘요즘코디’ 탭에서는 인플루언서 및 일반인들의 코디를 소셜 미디어 피드형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패션 커뮤니티는 인플루언서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기반으로 유저의 리텐션을 높이는 데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요즘코디 안에서도 사진을 올리고 댓글 및 팔로잉이 일어나는 단순 게시판 기능을 넘어서, 유저에게 라벨링을 유도한다. 어떤 스타일의 코디인지 심플베이직, 러블리, 페미닌, 하이틴 등의 여러 무드 중에 선택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상황과 계절에 어울리는지까지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게시물 업로더가 선택한 옵션들에 따라 이미지 성격이 라벨링되고, 사용자는 피드에서 궁금한 스타일만을 필터링해서 볼 수 있다. (정확한 알고리즘은 알 수 없지만, 더 정확한 조정을 위해 유저가 라벨링하는 것 말고도 태깅한 상품의 라벨도 로직에 반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스토어인 무신사는 패션에 특화된 사용자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색깔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플랫폼이다. 새로운 시즌(s/s, f/w)을 알리는 캠페인 ‘프레젠테이션 캠페인’, 신상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쇼케이스'가 특히 그렇다.
이는 입점 브랜드들의 화보 제작을 도와줌으로써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에게 감도 높은 상품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무신사라는 패션 생태계를 확장하는 효과도 있다. 사용자는 ‘무신사는 브랜드 상품을 파는 곳일 뿐만 아니라 엄선된 콘텐츠를 갖고 있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플랫폼을 더 신뢰하게 된다. 이런 사용자 경험 역시 커머스에 특화된 서비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리해 보면 버티컬 커머스는 타겟 사용자와 그들이 원하는 것(needs)을 더 뾰족하게 정의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카테고리를 세분화하여 관리할 수 있고, 서비스에서 중요한 어텐션이 발생하는 메인페이지에서 어떤 카테고리 및 상품들을 어떤 방식으로 태깅하고 노출할지도 더 세분화하여 기획할 수 있다. 섬세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 트렌드인 요즘, 사용자의 니즈를 더 잘게 쪼갬으로써 자신만의 색깔을 강화한 버티컬 커머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잘 알 것 같다. 종합몰에 가까운 큐레이션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버티컬의 장점을 어떻게 더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