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준용 Jul 09. 2021

애매한 재능이 빛을 보는 법

세운상가의 빛나는 꾸준함 사이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세운상가로 걷는다. 을지로를 지나 청계천을 건너면 사람 대신 철로 만든 기계와 공구들이 줄지은 거리를 만난다.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3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영업하는 작은 공장들. 대부분 기술 장인의 작업실이다. 최초의 국산 자동차와 컴퓨터를 만든 곳이 세운상가에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자동차나 컴퓨터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을 직접 만들던 메이커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대림, 청계, 세운상가로 이어지는 다리에 서니 을지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상인들과 완성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 온갖 재료와 도구를 내어놓는 가게의 모습이 톱니가 잘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한 가지 일을 몇십 년간 꾸준히 해낸 사람들이었다.


재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천재들을 떠올린다. 남들보다 덜 노력해도 높은 성취를 이루는 능력. 재능은 으레 그렇게 묘사된다. 처음부터 잘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배움이 느리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내 앞에 등장할 거라 기대하곤 한다.



항상 애매한 재능이 고민이었다. ‘나랑 비슷하게 시작한 저 사람은 이만큼이나 앞서가는데 나는 왜 안 될까?’ 타고난 사람은 이길 수 없으니까 타고 나지 않은 나는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졸업 후 몇년간의 회사생활을 겪으며 배운 것은 달랐다. 그런 재능 같은 건 사실 없고, 처음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반짝이는 건 꾸준함이었다. 시작은 누구나 초라하지만 꾸준히 한 사람은 마지막에 빛을 발했다.


처음 몇 번에 소질이 있는 사람도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그저 소질 있는 사람으로 끝날 뿐이었다. 꾸준함이야 말로 최고의 재능이다.


산책로 끝자락은 다시 세운 광장. 앞으로 종묘가 보이고 멀리 북악산까지 눈에 들어왔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가게 사이를 걷다 탁 트인 공간을 마주하니 산뜻한 기분이었다.


잘 풀리지 않던 일 때문에 조급하던 마음도 한결 여유로웠다. 당장의 초라함 때문에 체념하기보단 멀리 보고 꾸준히 하는 능력을 키워보기로 했다. 진짜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이전 07화 내 방 산책하는 법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산책의 기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