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자라인
2017년 8월 15일 화요일 | 헬싱키 4일째
똑띠 챙기자~
스웨덴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동하는 날이 제일 분주하다. 짐이 없어서 미리 챙겨야 하는 수고는 덜지만, 당일 챙겨야 하는 짐들이 있다. 잠옷과 각종 충전선들이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체크를 잘해야 한다. 특히 , 카메라 충전기는 1순위다. 왜냐하면 충전기를 구매하기가 까다롭고 금전적으로도 비쌀 테니 잘 챙겨야 한다. 짐 정리를 마치고, 남은 식재료를 라면에 넣고, 출발 전 식사를 마쳤다.
오랜만에 배낭을 메니 어깨로 무게가 전달되었다. 어제까지 만났던 여행객들과 인사를 마치고 숙소를 나왔다. 마켓을 지나 길을 걷던 중 불안함과 허전함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보다 빠르게 가방을 열어 충전기를 확인했다. 역시 불안함은 적중했다. 카메라충전기가 보이지 않았다. 짐 정리를 마치고 밥 먹을 동안 꽂아둔 카메라 충전기와 배터리를 두고 나왔다. 항상 조심하지만 가끔 정신줄을 놓는 경우가 있다.
숙소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잠겨있어 다른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문 앞에서 서있는 동안 초조함이 밀려왔다. 운이 좋았는지 외국인 여행객이 나오며 문이 열리기에 얼른 들어갔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침대 앞에 도착하니 코드가 꽂여있던 충전기가 녹색불을 밝히며 나를 반겼다.
소소한 행복
숙소에서부터 가방 위로 대형 샤워 타월을 걸고 나왔다. 아침 샤워를 마치고, 젖은 타월을 햇볕에 말리겠다는 아주 사소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은 햇볕이 좋아서 의미 있는 선택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원래는 헬싱키역 중심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꿔서 선박 터미널로 향했다. 걷는 동안은 늘 그렇듯 지도가 아니라 발걸음과 눈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목적지의 대략적인 위치만 생각하고 움직이는 상황은 언제나 소소한 재미를 동반한다.
거리의 카페 창가에 앉은 사람들, 자전거 바퀴에 튀는 물방울, 가게 진열장의 갓 구운 빵 냄새가 번갈아가며 지나갔다.
이 소소한 풍경들이 긴장 대신 안정감을 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성당의 숨결
걷던 길목에 헬싱키 대성당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 하얀 건물이 안으로 들어가니 경건하고 웅장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성당 안은 조용했다. 이번엔 친구가 성당에서 받았다고 하는 치유의 기도문을 열고, 천천히 읽었다. 건네준 치유의 기도를 천천히 읽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을 통한 치유의 기도
자애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감사하나이다.
당신께서는 저희의 마음과 몸, 영혼과 정신의 쾌유를 원하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당신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보배로운 성혈로 저를 감싸 주소서.
제 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모든 것을 없애 주시고,
해롭고 비정상적인 세포는 뿌리째 뽑아내 주시어 건강한 세포가 많아지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의 불길이 온몸을 관통하여 치유하게 하시고,
아픈 부위가 창조된 기능대로 작동하도록 새롭게 만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고귀한 성혈의 힘으로 모든 염증을 없애고 감염된 부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
제 의식, 감정,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만져 주시고, 당신의 현존, 사랑, 기쁨, 평화로 가득 채워 주소서.
제 삶의 매 순간 당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시고, 성령으로 저를 채우시어 당신의 일을 하게 해 주소서.
제 삶이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영광과 기쁨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기도를 마치고 성당 의자에 앉아 침묵을 유지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파이프 오르간의 저음이 2층에서 내려왔다. 파이프 오르간에서 흘러나오는 성스러운 리듬이 기도문에 힘을 보태는 느낌이 들었다.
시장이 반찬
터미널에서 발권을 마치고, 코인 보관함에 가방을 넣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가방에 걸었던 타월을 등에 걸친 후 재호를 만나러 선착장 근처에 있는 마켓으로 향했다. 마켓이 가까워지자 특유의 냄새가 콧가를 스쳤다. 바닷가 옆에 있는 마켓이라서 해산물로 조리된 음식들이 많았다. 시장을 한번 둘러보고, 공원에 있는 벤치에 타월을 잘 펴서 걸었다. 햇볕이 좋으니 금방 마르겠지. 수건 자리를 피해 벤치에 걸터앉았다. 이제 재호를 만나 먹을 아점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타월이 바삭바삭 마를 때 즈음 재호가 도착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점을 먹기 위해 마켓으로 향했다. 나는 훈제 연어와 해산물, 채소 믹스 그리고 바삭한 빵을 고르고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두 캔 구매했다. 재호는 고기류를 구매하고, 맥주를 구매했다. 우리는 노천 가판대 앞에 앉아 연어와 해산물 믹스를 나누며 맥주를 기울였다.
시장에서 먹는 음식이 맛있고, 날씨가 좋으니 함께 마시는 맥주가 꿀맛이었다. 아점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니 기분이 좋았다.
배 위의 작은 호사
아점을 먹고 승선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했다. 락커에 있던 가방을 메고, 재호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승선을 하며, 배정받은 캐빈으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가 구석으로 향했다. 도착한 캐빈은 4인실이었다. 배가 출발하는 시간까지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다. 4인실을 혼자 쓰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침대 하나에 짐을 정리하고 침대의 담요를 손으로 쓸어보니, 고급 호텔에 온 기분이 들었다. 이제 배를 구경하기 위해 7층 데크로 향했다. 7층 테크는 고급 빌딩 숲 느낌이 들었다. 처음 타보는 크루즈였고, 자세히 조사를 하지도 않았기에 생경했다. 7층 테크에는 뷔페와 쇼핑몰 그리고 식당과 바가 있었다. 그리고 반대 방향에는 선상 클럽이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로 올 때 탔던 선상에 있던 선상 나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와 화려함을 자랑했다.
7층 테크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와 취향에 맞춰 이동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마지막날 만났던 공무원 자매를 실자라인 크루즈에서 만났다. 그녀들은 뷔페에서 밥을 먹고 나오고 있었고, 나는 선상을 구경하다 만났다. 서로 놀라 가볍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지은 죄도 없었는데, 너무 당황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서 조금 아쉽긴 하다. 이것도 인연인데 잠깐 맥주라도 하며 짧은 대화정도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색하게 헤어지고, 나는 근처 바에서 '풀러스 빈티지 에일 2016 (Fuller's Vintage Ale 2016)'이라는 명칭의 맥주를 구매해 한잔 마시며 선상 밖을 보며 바에서 진행되는 포크송을 들었다. 맥주는 맛있었고, 흘러가는 바다 풍경을 보며 듣는 노래는 운치를 더해줬다.
파도 소리와 밤의 루틴
낮잠을 자고 일어서니 해는 떨어지고 있었다. 저녁엔 갑판 가까운 펍에 들어가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갑판으로 흐르는 잔잔한 음악이 낯선 공간이 주는 피로를 씻어내 듯 나를 편안하게 감싸 안았다. 바다가 칠흑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캐빈으로 돌아오는 길, 매점에서 맥주 한 캔과 초콜릿 과자를 구매했다. 캐빈에서 샤워를 하고 잠옷을 입은 후 예능《비긴 어게인》을 틀었다.
창밖으로 듬성듬성 보이는 선박의 불빛과 희미하게 들리는 파도 소리가 채워진 캐빈 속 분위기를 이소라의 목소리로 한층 더 채웠다. 취침 준비를 하고 이불속으로 들어오니 몸이 나른해졌다.
한밤의 소소한 문장
9시 즈음 갑판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니하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살짝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웃으며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한국인은 꾸미고 다니는데 꾸밈없는 내 차림(쪼리, 잠옷 바지, 흰 셔츠)을 보고 중국인으로 오해했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나도 피식 웃었고, 여행지에서 누군가는 빈번하게 있을 별스럽지 않은 상황을 웃어넘길 수 있는 아량을 가질 수 있는 나에게 '소소한 여행에 비범한 인성'을 가지자는 말을 하고 싶다.
여행 중,
잃어버리거나 두고 올 뻔한 물건이 있나요?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어떻게 극복을 했나요?
여행 팁 & 경비
• 점심(연어 믹스) : €16
• 맥주 : €8
• 딸기 : €4
• 저녁 : €42(맥주 포함)
• 추가 맥주 : €10
총합: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