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리아 Apr 24. 2016

선생님 세배 받으세요.

내 어린 영웅들과 함께 쓰는 행복한 교실 이야기 4

3월부터 4월 두 달을 전교생에게 보여줄  "친구야 사랑해" 공연을 준비하면서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쉽지만은 않았던 과정이었다. 이번 주 3일간의 학년별 공연을 마치고 오늘은 1학년 친구들에게 보여줄 마지막 공연까지 모두 끝고 무사히 막이 내렸다.


'드디어 끝났다' 사실 이제 겨우 학교생활의 규칙을 몸에 익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2학년 아이들인데 막을 올리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참여해준 기특함이나 즐거웠던 순간들이 끝난 것에 대한 섭섭함보다는 홀가분함이 더 컸던 게 사실이었다.


한번 연습을 시작하려면 그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았었다.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집에서 6년근 산삼이라도 먹고 오는 건지 도대체 방전이란게 없었고 늘 상상 그 이상이었다.  시작부터 느닷없이 누구 한 명이 "선생님, 저 어제 치킨 먹었다요." 해버리면 갑자기 나머지 모든 아이들이 앞다투어 치킨과 연관된 온갖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치킨을 먹었던 얘기, 생일 파티 때는 용가리 치킨을 먹었고, 그러다가 치킨을 먹고 토했던 얘기까지 나오면 당장에 눈앞에다 누군가 질퍽하게 토해놓은 치킨이라도 있는 것처럼 꺅!꺅! 소리를 지르며 모두 일어나서 잡는 사람은 없는 도망을 가고 그 와중에 치킨 이야기는 어느새 업데이트가 된다.


그렇게 처음에 치킨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치킨을 먹었다가 체해서 토했던 이야기로 진화를 하고, 메뉴를 바꾸어 언젠가 한번쯤 우유, 김밥, 시금치, 오이, 당근을 먹고 토해봤던 경험들로 넘쳐나고 그걸로는 부족한지 누가 교실에서 우유를 먹다가 흘렸다고 일러바치고, 우유를 쏟아서 엄마한테 혼났었다는 얘기로 엉뚱하게 방향이 튄다. 그쯤 되면 자기는 못 혼나봐서 동참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는 듯 콜라라도 쏟아봤던 기억을 보태주면 이어서 줄줄이 사탕처럼 쥬스와 야쿠르트, 뿌요뿌요, 포카리스웨트 등 온갖 쏟을 수 있는 음료 종류가 차례로 등장한다. 알고 있는 음료 이름이 바닥이 나야만 끝이 나는 이야기다.


 누가 신발주머니를 던져서 발뒤꿈치에 맞았기라도 했었다면 그야말로 큰 사건이어서 이번에는 각자 팔다리를 걷어붙이기 바쁘다. 어쩌다가 넘어져서 깨진 무르팍  팔꿈치의 상처들을 누가 더 크고 심각하게 다쳤었는지 훈장처럼 보여주느라 열과 성을 다한다. 아무리 찾아봤자 넘어져서 다친 희미한 흔적마저도 없으면 아쉬운대로 지난 여름에 모기한테 물렸다가 덧나서 거뭇하게 반점처럼 남아있는 자국이라도 꼼꼼하게 찾아서  보여주느라 난리다. 


그쯤 되면  빠지기 서운한 나도 무르팍 성한 날이 없어서 아까쟁끼를 달고 살았던 상처들을 한껏 과장하여 자랑하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릴 때 고양이한테 물리고 말벌한테 쏘이고 닭한테 궁둥이를 쪼여봤던 무섭고 아팠던 기억과 대충 어디선가 긁힌 상처를 그때의 상처로 연관지어 실감나게 소개한다. 그만큼이면 거의 내가 이긴 걸로 인정이 되고 아이들은 조용히 걷어붙였던 팔다리 옷을 슬금슬금 내리고 어느새 조용히가 된다.


"이런.. 그래, 그렇구나, 그랬어? 진짜? 우와~" 정도의 건성건성 반응만 보여주면 더 바라지도 않는 아이들. 선생님이 들어주기만 했으면 그걸로 충분했고 신이 나서 또 다른 얘깃거리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는데 열중했다. 웬만큼 쫑알쫑알 참새떼들의 지저귐이 간신히  진정이 됐다 싶어서 겨우 연습을 시작하는데 하필 누군가 뽕! 하고 방귀를 한방 뀌어주면 아예 무대를 대굴대굴 구르며 배꼽을 잡고 웃느라 그날 연습은 그냥 웃다가 끝나 버려야 할 때도 있었다.


환절기라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 많아서  인사를 하며 "안녕하세요? 요즘 감기에 걸린 친구가 많아서 걱정이네..혹시 아픈 친구 있어요?" 했다가 한두 명 아이들이 "목이 아파요. 어제 병원에 갔었어요." 하면 순식간에 모두가 목을 쥐어짜며 억지로 나오지도 않는 기침을 해대고 언제, 언젠가 감기에 걸렸었다는 이야기로 또 한참..." 자, 이제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아이들은 마치 방언이라도 터진 것처럼 끝없이 끝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중에는 정말로 배가 뒤틀리고 목이 아프고 열이 나서 등허리나 이마가 뜨끈뜨끈 한채로 벌겋게 돼서도 연습을 하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기어이 못 이기고 보냈다고 걱정하시는 엄마의 문자와 나란히 들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결국엔 아무래도 맥을 못 추고 연습 내내 옆에 와서 힘없이 안겨있거나 기대여 있기만 하다가 연습을 못하고 가기도 했었다.


번번이 다른 아이들 참견만 하다가 하필 자기가 등장할 때만 꼭 딴짓을 하는 바람에 친구들의 뾰족한 원성을 받고는 서럽고 분해서 울기도 했고, 주말이면 꽃놀이 가기엔 더없이 좋았던 때라 가족들 모두 떠나는 봄 소풍을 아이만 혼자서 공연 연습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아직 못 떠나고 있다는 난처한 부모님의 "선생님, 빠지면 절대로 안되는 건가요? 어쩌면 좋아요?" 하는 전화를 받기도 했었다. 결국 잠깐이라도 연습에 참여했다가 떠나느라 감사하고 죄송하게도 출발시간을 조금 뒤로 미뤄주시기도 했었다.


그랬었다. 퐁당퐁당 나와 아이들의  3월과 4월이..


그랬던 녀석들인데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깎아놓은 밤톨처럼 또릿하고 야무지게 뒷꼭지가 땅에 닿도록 배꼽인사까지 하고 총총이 계단을 나려가놓고 금방 다시 올라와서는 무당벌레처럼 동그랗게 엎드려서 "선생님 , 세배 받으세요." 하며 큰절을 해주고 간다. 도대체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 조그만 가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어떻게 그렇게 하자는 의견일치를 보게 되었던 걸까?

그나저나 이걸로 우리의 만남이 끝인 줄 아는 건 아니지? 일단 공연은 끝났으니 나름 여기까지의 인사는 정산하고 확실하게 선을 그어 일단락 짓는건가 보다.


"선생님, 그동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우리 다음 주부터 다시 잘해보자.

고맙다.. 내 어린 영웅들..


집으로 돌아오면서 룸미러에 붙인 포스트잇을 보며 자꾸만 웃음이 난다.

작가의 이전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었던 그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