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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Feb 27. 2017

어떤 기다림은..

매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스포츠센터에 가면 일주일에 세 번 만나게 되는 꼬마친구가 있다.


삼 개월 전 처음 봤을 땐 줄넘기를 손에 들고 혼자서 빈 복도를 왔다가 갔다가 하고만 있었다.


저녁시간이고 곁에 보호자가 보이지 않아서 모른 척 그냥 운동을 하러 들어갈 수가 없어서 왜 혼자 있냐고 물어봤었다.


엄마가 저녁반 수영을 하러 들어가셔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혼자서 심심하지 않아? 위험하고 추우니까 밖엔 나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나가지말고 여기서 엄마 기다리자." 했었다.


그땐 줄넘기를 딱 두 번 넘었었다.

몇 번을 다시 해도 두 번 이상을 못  넘어 섰었다.


그런데 오늘은 드디어 여덟 번을 넘었다. 원래는 아홉 번을 넘었었는데 미처 동영상을 못 찍어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시켰더니 지쳐서 여덟 번밖에 못 뛰었다.


어쨌든 아이는 삼 개월 동안 엄마를 기다리며 한 시간씩 열심히 줄넘기를 한덕에 어느새 실력이 늘었고, 로비에서 자기 엄마라며 수영장이 보이는 유리창을 통해 야무지게 가리키는 아이의 손끝을 따라 바라본 아줌마는 키판을 잡고도 여전히 기우뚱대며 옆라인까지 물보라를 일으키며 열심히 발 차기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하셔야겠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적지않은 기다림이 있었다.

무던히 기다리고,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때론 가슴 졸이며 조바심 내며 기다리고 차라리 포기한듯 기다리고, 기다릴 수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무턱대고 기다리고 막연하게 기다리고, 무조건 믿고 기다려도 봤었다. 하지만 늘 그 수많은 기다림은 결국 끝이 있었고 기다린 보람이 있기도 했었고 허탈하게 끝나기도 했었다. 차리리 기다리지나 말걸..했던 서글픈 기다림도 있었고 조금만 더 기다려줄걸 했던 후회도 있었다.

기다림은... 기다리는 일은...나에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숱한 기다림들은 괜한 기다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아침부터 사소한 기다림으로 또 그런 하루가 시작되었다.

알람보다 먼저 일어나 알람이 울리길 기다리고 커피 메이커에서 향기로운 커피가 내려지길 기다리고 식구들이 일어나 아침밥이 차려진 식탁 앞으로 모이길 기다리고 중간에 멈추지 않고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주차장 차단봉이 빨리 올라가길 기다리고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의 싱싱한 공기가 실컷 들어오길 기다리고 카톡 문자의 1이 없어지길 기다린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미리 주문한 커피가 식기 전에 그가 다정하게 웃으며 내 앞자리에 앉아주길 기다리고 날씨가 한껏 풀린 것 같아서 오랫만에 산뜻하게 원피스를 골라 차려입은 모습을 보며 조금은 과장되게 예쁘다고 말해주길 내심 기다리고 전자레인지 앞에서 손잡이를 잡은 채로 어서  경쾌하게 '땡`소리가 나길 기다리고 종이컵을 손으로 잡은 채 자판기 커피 마지막 몇 방울이 쪼록쪼록 소리를 내며 그치길 기다리고 오후에 살짝 두통이 생겨서 급하게 한 알을 먹을지 두 알을 먹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꿀꺽 삼켜버린 아스피린의 효과가 빨리 나타나주길 기다렸다.


 엄마한테 화사하게 봄빛깔을 안겨드리고 싶어서 산 장미 한 다발이 투명한 포장지에 예쁘게 싸이길 기다리고 오늘 저녁은 낮에 점심을 든든히 먹어서 안 먹어도 되니까 차리지 않아도 된다고 해줬으면 하는 내 룸메이트의 문자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이번 주까지 새로운 프로그램 기안을 메일로 보내줘야 하는데 기다리고 있을테니 당장 보내드려야 겠다.


누구든 점점 나이 들어가는 티 내느라 자꾸만 조급해지고 이젠 기다림이 지치는 날 위해 너무 오래는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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