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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미 Sep 17. 2020

[청춘시대]연대하는 여성과 방해하는 남성에 대하여①

청춘 드라마의 변곡점, 연대하는 여성과 방해하는 남성에 대하여(스포주의)


청춘시대는 쉐어하우스 '벨 에포크' 입주자들의 성장을 그린 드라마다. '여대생 밀착 동거담'이라는 부제에 맞게 5명의 여성 캐릭터가 쉐어하우스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끈다. 시즌1에서는 유은재(박혜수), 정예은(한승연), 강이나(류화영), 송지원(박은빈), 윤진명(한예리)이 한 집에 살며 시즌2에서는 강이나(류화영)가 수원으로 떠나며 비운 자리를 조은(최아라)이 채운다. 박혜수의 영화촬영 스케줄로 인해 '지우'가 시즌2의 은재 역할을 맡게 되어 혼란이 있었으나, 유은재 역할을 두고 최종 물망에 올랐던 배우인 만큼 지우는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했다.


청춘시대는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게 시즌제로 나온 드라마이다. 시즌1에서는 2를 염두한 엔딩을, 시즌2에서는 3를 염두한 엔딩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즌3의 실마리를 쥔 송지원(박은빈)캐릭터의 상대역인 배우 손승원이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사고로 구속되면서 시즌3는 사실상 무산되었다. 2016년과 2017년의 여름을 뜨겁게 만들었던 청춘시대를 그리워하는 청시팬으로서, 2020년 여름에는 혹시 시즌3가 기적처럼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담아 내가 청춘시대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보고자 한다.


젊은 여자의 삶은 아름답지 않다


청춘시대는 여자 대학생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윤진명은 학자금 대출과 동생 병원비를 위해 알바를 하느라 휴학과 복학을 반복한다. 늦어진 졸업은 취업 전선에 뛰어든 진명의 장애물이 된다. 정예은은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가 그에게 납치를 당한다. 복학 후에도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피해자' 타이틀에 괴로워한다. 송지원은 섹스 이야기를 즐기는 모태솔로 섹드립퍼 캐릭터이지만 이는 어린 시절 목격한 아동 성폭행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증상이다. 강이나는 스폰 남성에게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본인을 '여대생'으로 포장한다고 고백한다. 스폰 남성의 판타지를 만족시키기 쉽기 때문이다. 조은은 키가 크고 머리가 짧은 여성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가난, 폭력, 성폭력, 편견, 혐오.

청춘은 이것들과 맞서고 있다. 젊은 여자의 삶은 아름답지 않다. 여자 대학생이자 젊은 여성으로서 나는 아름다움을 원하지 않는다. 저 단어들과 싸워 이길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아름답지 않은 우리의 삶을 지긋지긋하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돕는다

데이트폭력범 집에 쳐들어가는 하우스메이트들


시즌1에서 예은이 전 남친에게 납치되자 하우스메이트들은 그의 집을 찾아 쳐들어간다. 칼을 휘두르는 남자에게 덤벼들어 예은을 구한다. 시즌2에서 송지원이 목격한 아동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자살했음이 드러나면서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벨 에포크를 찾아와 인질극을 벌이는 장면에서도 그 연대는 계속된다. 범인을 기절시킨 후 엉엉 우느라 탈출 기회를 놓치는 장면에 시청자들의 '답답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하우스메이트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몸을 떠는 예은을 보호하고, 지원을 죽이려는 범인을 막아서고,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편견과 혐오 앞에서는 어떨까?



태초이래 가장 강력히 여성을 구분지은 기준은 '성녀'와 '창녀' 프레임일 것이다. 그만큼 성노동자에 대한 세상의 혐오는 강력하다. 벨 에포크 하우스메이트들 또한 강이나가 스폰을 받는 다는 것에 의견이 분분했으니 말이다. 미스테리했던 이나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나는 스폰 남성이 제공한 집에 살게 되지만 하메들도 이나도 서로를 그리워한다. 결과적으로 이나가 벨 에포크에 돌아오면서 하메들은 이나를 창녀도, 성녀도 아닌 강이나 그 자체로 본다. 이는 윤진명이 알바 매니저에게 권력형 성추행을 당하면서 강조된다. 진명에게 편한 보직과 미래 취업자리까지 언급하는 매니저의 모습이 이나에게 금전을 제공하는 스폰 남성들과 겹쳐질 때 쯤 진명의 나레이션이 등장한다.




그동안 난 널(이나) 경멸했다.


내가 너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아니었어.


나에겐 그저 너만큼의 유혹이 없었던 것뿐이야


이 나레이션은 강이나의 '쉽게 사는' 삶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공감으로 혐오를 이기는 윤진명의 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은이 클럽에서 성폭행을 당할 위협에 처하자 이나가 예은을 구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예은이 본인의 남자친구와 이나 사이를 의심하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여적여 구도가 등장할 까 조마조마 했는데 결국 여돕여로 마무리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막나가고' 싶어하는 예은의 모습에 화를 내는 이나는 예은에게 본인의 과거를 투영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청춘시대는 강이나 캐릭터를 통해 성노동자와 비성노동자, 김치녀와 개념녀로 재해석되는 창녀-성녀 이분법이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입체적인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


벨 에포크 식구들이 데이트폭력범의 집에서 예은을 구해 나온 후, 병원에 모여 떠드는 장면이나 인질극 이후 일상이 반복되는 장면 또한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을 벗어난 장면이어서 좋았다. 데이트폭력범에게 칼을 맞은 은재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모인 하우스메이트들은 농담을 하며 웃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 진짜 이상하겠지?'하고 민망해한다. 인질극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는 진명을 본 은재는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늘이 다른 날이랑 똑같다는 게. 출근하고 학교가고. 이래도 되나 싶어요.'라고 말한다. 폭력을 당해도, 죽었다 살아나도, 매일을 살아가야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피해자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예지(신세휘) 캐릭터는 오직 퀴어베이팅이 존재 목적이었다.


시즌2에서는 조은 캐릭터와 함께 성소수자 혐오의 시선이 등장했다. 예은이 조은에 대해 '난 크리스천이라 레즈비언은 좀 그렇다'거나 외모를 이유로 '남자같다'고 말하는 장면부터 조은과 단 둘이 집에 남은 은재가 조은에게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는 부분이 그러하다. 처음에는 이런 혐오가 강이나 에피소드 처럼 단계적으로 극복되어 여성연대의 결말로 마무리될 줄 알았으나, 이성애에 미친 한국 드라마답게 조은에게 하늘하늘 원피스를 입히고 곧 군대에 갈 남자 캐릭터와 꾸역꾸역 엮는 것으로 끝났다. 물론 혐오 발언에 뒤이어 '그거 혐오야.'라고 바로잡는 말이 나오고, 발언자가 말끝을 흐리며 발언권을 잃는 연출이 있었으나 굳이 방송에서 혐오 발언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오히려 '민낯 그대로'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 편견을 드러내고 환기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행복회로를 돌려보려했으나, 조은 캐릭터에게 '여성성'을 강조하는 하우스메이트들을 보면 행복회로는 멈추는 것이 좋겠다. 이를 비롯한 아쉬운 점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언급할 예정이다.


청춘시대의 여성들은 가난하고, 남자에게 맞고, 성노동을 하고, 외모로 차별받는다. 현실을 살아가는 20대 여성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면면들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의 마음을 간질였다. 복선이 존재하긴 했지만 급작스럽게 예은의 전 남자친구가 예은을 납치하는 연출은 시청자들 뿐 아니라 예은을 연기한 한승연에게도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한승연은 인터뷰에서 촬영 당시에는 왜 갑자기 예은에게 불행이 닥쳐야 했을까 이해가 어려웠지만, 방송분을 보면서 '저런 상황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저 장면의 이유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데이트폭력을 비롯한 인생의 여러 불운들은 억울하게도 갑자기 닥친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청춘시대를 더 현실적으로 만든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여태 여자 대학생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완벽한 재벌 과탑 선배와 사귀거나('치즈인더트랩') 차은우같은 회색 아기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내 ID는 강남미인')데에 비하면 청춘시대의 남성 캐릭터들은 한참 평범하고 현실적인 한국 평균(보다도 못한 쓰레기들..)이다. 여성 캐릭터만이 현실적인 삶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남성 캐릭터 또한 '착즙 불가' 수준의 민낯을 보여준다. 다음 편에서는 청춘시대에 등장하는 '방해하는 남성'과 아쉬웠던 지점들을 짚어보려고 한다.


힘겨운 삶 앞에 서있을 지 모를 당신과 연대하기 위해, 강이나의 대사로 이 글을 닫는다.


이것도 인생. 저것도 인생. 그저 그럴 뿐이다.


당신의 삶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그저 그럴 뿐이다.


그것 또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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