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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미 May 31. 2020

박민영의 직장 로코, 절망편과 희망편

김비서가 왜 그럴까? | 그녀의 사생활 (스포있음)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김미소'
그녀의 사생활의 '성덕미'(일하는 모습과 덕질하는 모습..)


데뷔작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거침없이 얼굴을 알린 박민영은 2018년, 12년만에 도전한 코미디로 큰 사랑을 받았다. 바로 그녀를 '로코퀸' 반열에 올려 준 작품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하 '김비서')이다. '김비서'의 성공은 '그녀의 사생활'의 선전으로 이어졌다.


두 작품은 웹콘텐츠를 원작으로 한다는 점과 '30대의 커리어우먼이 상사와 로맨스를 펼친다'는 줄거리 등 유사점이 많았다. 이에 대중들은 과연 박민영이 '김비서'를 벗고 '성덕미'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지 우려를 표했다. 그렇지만 박민영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연이은 로코퀸의 대박행진은 박민영의 능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남성 상사와 여성 부하의 로맨스를 그린 이 두 드라마는 직장 로코물의 절망편과 희망편을 보여준다. 남성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비밀스러운 과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까지 비교할 지점이 많은 이 두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드라마가 왜 이럴까?

'김비서'의 남자 주인공 이영준(박서준)


'그녀의 사생활'의 남자 주인공 라이언 골드(김재욱)


'김비서'의 남자 주인공은 대기업의 부회장인 '이영준'이다. 미소는 영준의 비서로 9년을 일한 베테랑이지만 일 밖에 없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영준에게 퇴사를 통보한다. 당황한 영준은 '이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는 미소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나 이영준이 결혼해주지."라는 청혼 대사는 영준의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르시즘에 빠진 부자 왕자님은 본인이 결혼을 통해 미소를 신분상승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소와 함께 유괴되었던 기억을 비밀로 간직하고 미소의 곁을 지키는 키다리 아저씨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나, 동시에 미소의 집에 느닷없이 찾아가 동침을 제안하는 상사이기도, 그녀를 벽으로 밀치며 거친 키스를 하는 애인이기도 하다.


실제 비서들은 이 모습을 보고 '대상화'라고 말했다.

'미투'이후 권력형 성범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이 시대에 남성 상사와 여성 부하의 로맨스를 그리는 데에는 분명한 변화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비서'는 거친 상사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기는 여성상을 주입하고 과거 유괴사건을 통해 둘의 관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전개를 보인다.


사회성과 인간성이 부재하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남성 캐릭터와 그의 부족한 점을 치유하며 로맨스를 통해 신데렐라가 되는 여성 캐릭터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이다. 2018년에 나온 드라마 치고는 고루한 방식의 재현을 보여준다. 미소가 능력있는 현대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는 하나, 그녀가 딱 붙는 펜슬 스커드에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회사가 아니라 시청자들의 눈을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애초에 1화가 시작하자마자 결혼을 위해(상대도 없는데) 9년의 커리어를 포기한다고 말하는 미소는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고졸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밤낮없이 일해서 인간 문화재 수준의 비서가 된 미소가 더 나은 근무조건도 거부하고 연애와 결혼을 쫓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사생활'의 남자 주인공은 덕미가 일하는 미술관에 관장으로 부임한 '라이언 골드'이다. 덕미는 미술관의 수셕큐레이터로 일하며 아이돌 '화이트오션'의 홈마로 활동한다. (강철체력;)


라이언 골드는 어릴 적 해외에 입양된 후 미술을 공부한 천재 디렉터이다. 천재 화가였으나 어머니와 관련 된 트라우마로 인해 그림을 그만 둔 그는 덕미와의 인연을 통해 이를 극복해나간다. 둘은 한 걸음씩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다. 손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얼굴을 그리는 장면을 통해 점점 나아지는 라이언 골드의 모습에 주목한다. 이 지점에서 '김비서'와 '그녀의 사생활'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


'김비서'의 이영준은 유괴 후 유괴범의 자살을 목격한 트라우마가 키스 앞에서 발현된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인 미소와 키스를 하려는 찰나, 트라우마가 떠올라 미소를 밀쳐낸다. 그러나 미소가 먼저 키스를 시도하자 이것은 극복된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위해 키스라는 무기를 이용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첫 키스 이후, 부회장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미소를 무릎 위로 끌어 앉힌 영준은 "잠들어 있던 욕망을 일깨웠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각오해 이제 달리는 속도 조절 안 할 테니까"라며 미소를 안는다. 깜짝 놀란 미소는 누가 보면 어쩌냐고 당황하지만, 영준은 네가 나를 흥분하게 했으니 책임지라는 태도를 고수한다. 아, 정말 위험한 발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연출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성폭행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해왔다.노출이 있는 의상부터 표정, 머리 길이 등 모든 것이 성폭행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자리매김한 이 사회에서 아무리 연인이라 할 지라도 저런 이유를 통해 '직장'에서 스킨십을 시도하는 장면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사사건건 인간 김미소와 부하직원 김비서를 구분하지 못하는 영준의 태도는 드라마 내내 계속되었다.


미소는 해외 출장을 가는 영준의 속옷을 챙기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주고, 딱 붙는 스커트를 입기 위해 몸매관리를 한다. 비서로서 능력있는 캐릭터로 나오는 미소가 보여주는 전문성은 엄마처럼 영준을 챙기고 그의 격한 감정기복에 응대하는 일이다. 이는 극 자체가 미소를 그리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김비서라는 이름의 엄마같은 애인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가련한 이영준을 치료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남성 시각의 판타지를 완벽히 이룰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덕미와 선주..너무 귀엽다...


반면, 그녀의 사생활의 라이언 골드는 덕미를 존중한다. 덕미도 라이언 골드를 존중한다. 덕미와 덕미의 친구인 선주가 성지순례를 위해 호텔에 가거나 덕후임을 강제로 공개 당할까 봐 걱정하는 이야기를 듣고 퀴어 커플로 오해한 라이언 골드는 덕미를 편견없이 바라보고 상사로서 덕미가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물론 너무 오바스럽게 그려지긴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해서 당연히 이성을 떠올리는 것도 편견이고 차별이야


게다가 저 여자는 용기를 내서 진실을 얘기했는데하...


거짓이라고 생각하다니정말 실망스럽다.


/ 이성애에 찌들어있던 본인을 반성하는 라이언



아시다시피 성큐레이터는 사회적 약잡니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그래서 성큐레이터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저는 지지하고 지켜줄 생각입니다.


/ 은기가 덕미를 아웃팅 하려는 줄 알고 찾아가서 협박하는 라이언





오해가 풀린 후에도 아이돌 덕질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덕미의 일코를 도와주고, "내가 이상하거나 싫지는 않았냐"며 아이돌 덕후에 대한 편견에 두려워하는 덕미에게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덕미씨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다"며 용기를 준다. 둘은 서로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조심스럽게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폭력적이거나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아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스킨십을 나눈다.



물론 그녀의 사생활에도 한국 로코 특유의 성고정관념이 반영되어 있고, '덕밍아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한계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주인공이 게이 사진 작가를 만나는 장면, 덕미-선주를 오해한 라이언 골드의 배려 장면, 선주가 아이때문에 쉽게 이혼을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장면 등 퀴어와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 발짝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스카우틀 받은 덕미가 "우리 이제 장거리 연애하는거냐"고 묻는 라이언 골드에게 자기 믿고 미국에 같이 가자고 말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다. 누나 믿고 따라와, 같은 느낌?(물론 라이언 골드는 고향이 미국이라서 뭐..)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정말 비서계의 레전드가 완벽한 신부로 전락하는 모습을, 그녀의 사생활은 수석 큐레이터가 부관장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영준과 라이언 골드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박민영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그들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사생활의 덕미는 부관장으로 커리어를 잘 이끌어나갈 것 같은 믿음이 있다면 미소는 글쎄다.


어떤 사랑은 일보다 값지고, 어떤 일은 사랑보다 값지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렇지만 그 개인의 선택을 보여주는 미디어는 늘 한가지 입장에 치중되어 왔다. 조금은 다른 길, 조금은 다른 인물을 조명한 그녀의 사생활에게 박수치고 싶다. 더불어, 연속으로 웹콘텐츠 원작의 로코에 출연한 박민영이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멋진 연기를 보여준 것에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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