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드라마의 변곡점, 연대하는 여성과 방해하는 남성에 대하여(스포주의)
청춘시대2는 실망스러웠다. 두터운 팬층이 있었기에 시청률은 잡았지만 쏟아지는 혹평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시즌1에서 '신발장 귀신', '팔찌' 등의 스릴러 요소가 적재적소에 활용된 것과 다르게 '분홍 편지'와 '예쁜 구두'는 스토리를 제대로 끌고가지 못했다. 궁금하지만 동시에 질질 끄는 전개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서 나를 가장 열받게 한 것은 수 많은 남성들이다. 남캐를 넘어 남배까지 하메들의 앞길에 방해를 거듭하는 '남성들'에 대한 분노를 글로 승화하고자 한다.
욕하고 싶은 캐릭터가 너무 많다. 남성 캐릭터들은 '기획된 방해꾼'과 그렇지 않은 '어쭙잖은 방해꾼'으로 나눌 수 있겠다. 전자로는 데이트폭력범, 레스토랑 성추행범 매니저, 아동성폭행범 미술선생, 일름보스토커가 등이 있다. 이들의 극중 이름이 공개되어 있기는 하나, 이들에게 이름을 주고 싶지 않기에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겠다.
데이트폭력범은 납치, 폭행, 가스라이팅을 비롯한 각종 데이트폭력과 성폭력으로 예은의 일상생활을 무너뜨렸다. 레스토랑 성추행 매니저는 진명의 존엄성을 짓밟고 그녀가 끝까지 버티고 싶어했던 레스토랑 알바를 그만두게 했다. 아동성폭행범 미술선생은 10살의 효진을 성폭행 하고 태연하게 교직생활을 이어간다. 피해자였던 효진은 자살하고, 목격자였던 지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일름보스토커는 하메들 앞에서 이나가 하는 행동이 매춘이라며 이나의 비밀을 마음대로 밝혀버린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이나를 본인이 '선도'하겠다며 이나를 스토킹한다.
이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며 확실히 욕을 먹도록 범죄에 준하는 나쁜 짓을 저지르도록 설계되어있다. 데이트폭력, 직장내 권력형 성폭행, 아동 성폭행, 스토킹, 성노동 의제에 관해 다루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단호하게 '저런 행동은 폭력이고 범죄야!'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여주는 작가에게서 여성주의 드라마의 희망을 아주 조금 보았다. 물론 이 희망은 회를 거듭 할 수록 눈물 젖은 절망이 된다.
6명이나 되는 하우스메이트(여성 주연 캐릭터)를 두고도 극은 많은 남성 캐릭터들을 품고 간다. 그 결과 시즌1에서 가난한 청춘의 성장을 보여주던 윤진명은 망한 아이돌 헤임달의 스피커 역할로, 조은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서장훈과의 헤테로 연애로 손쉽게 날려버리는 납작한 여성 캐릭터로 소비되고 만다. 헤임달은 윤진명이 입사한 엔터테인먼트 회사 소속 아이돌이지만, 성과가 좋지 않아 계약 해지를 통보받는다. 이를 부당하다고 여기고 1인 시위를 하던 중, 진명이 독설을 하자 진명을 밀어 넘어뜨린다. 이게 미안했는지 수습하려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놈이 자기 화났다고 사람을 밀어? 성공했었어도 언젠가 인성 공론화 됐을 각.
조은과 장훈의 연애는 예지가 진짜 조은을 좋아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가짜연애로 시작했다가 진짜연애로 마무리 된다. 둘이 썸을 타고 마음을 여는 장면들이 적지 않아서 납득이 안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두 캐릭터 다 시즌2에서 지나친 우연으로 등장해서 기능적으로만 소비되는 면이 컸다. 조은의 경우 '분홍 편지'라는 강력한 소재를 가지고 등장하기라도 했으나, 장훈은 단지 조은이랑 연애해서 조은이가 헤테로라는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캐릭터다. 차라리 조은과 예지가 진지하게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더 의미있었을 것 같아서 아쉽다. 그랬다면 적어도 헤테로 연애를 시작했다고 (또는 시작하기 위해서) 치마를 입고 부끄러워하는 조은을 볼 일은 없었을 텐데.
정예은의 새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권호창은 예은과 비슷한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가진 너드이다. 체크무늬 셔츠만 입고 하루 종일 개발언어로 떠드는 그는 공대생에 대한 편견을 뭉쳐놓은 캐릭터다. 사실 예은이 데이트폭력 이후 남자를 무서워하다가 극복했다는 서사를 위해 필요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아직 일상생활을 힘들어하는 예은이 과연 사회성 없는 호창과 연애하며 행복할 지 모르겠다.데이트폭력범이 양아치같은 캐릭터였기에 반대로 너드 캐릭터를 넣은 것 같은데, 예은이에게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눈치없는 장면이 참 답답했다.내 친구였으면 예은이 말렸을 듯.호창의 집에 3명의 누나들이 남동생 여자친구 구경하러 오는 장면은 도대체 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어쨋든 데이트폭력의 극복이 새로운 연애로 대치되는 것 같아서 권호창 캐릭터 또한 반갑지만은 않았다.
이외에도 시즌1 미스터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강이나 이야기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 오종규, 시즌2에서 송지원 이야기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 문효진의 전 남자친구가 드러낸 폭력성은 부적절했다. 시즌1에서 강이나를 트럭에 태우고 가다가 죽이겠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오종규의 모습은 섬뜩했다. 그 바탕에는 부성애가 있었겠지만 어두운 밤 사람없는 근교에서 어린 여성을 때리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굳이 TV를 통해 보고싶지 않았다. 문효진의 전 남자친구가 벨 에포크에 쳐들어와 20분 간 벌인 강도인질극 또한 불필요한 장면이었다. 사랑했던 여자가 죽고, 그 복수를 하러 왔다는 설정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강력한 한 방'으로 폭력을 선택한 작가가 그 임팩트를 위해 기용한 흉악한 인상의 남성 캐릭터라는 생각만 들어서 어떠한 공감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다. 피해 당사자의 서사가 아닌 그 전 남친의 서사를 그리는 이유는..?
시즌2 첫 화에 운전 미숙으로 길을 잃은 하메들이 펜션을 찾는 장면에서 나오는 강도 장면은 어떤가? 개연성 없는 폭력성에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하메들이 범인을 잡는 데에 제대로 기여하거나 위기에 처하는 주요 서사 없이 우연의 꼬리물기로 일이 해결되는 장면은 존재가 의문스러웠다. 시즌2에 등장한 두 번의 폭력 장면은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충분히 트리거가 될 만 했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5명의 여자 대학생들이 모여 사는 이야기에 왜 남자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것일까? 캐릭터들의 남자친구와 남사친들까지 더하면 정말 많은 남캐들이 등장한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수 많은 남배 중 1명은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로 감옥에 갔고, 1명은 방영을 앞두고 성추행 혐의로 입건되어 재촬영을 하기도 했다. 처음 이 드라마를 마주했을 때 나는 참 설렜다. 청춘시대를 청춘드라마의 변곡점이라고 부른 것도 이 드라마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명의 여성주연을 중심으로 여러 젠더이슈를 다루었고, 미스터리를 활용해 입체적 캐릭터를 만들었으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나 혈연중심주의에서 벗어난 가족 형태를 보여주었다는 것에 놀랐다.
변곡점.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
그렇다.
곡선이다.
곡선 위의 한 점은 방향을 갖고 있지 않다.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한 점 한 점을 연결하고 난 뒤에야 우리는 그 순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 순간은 모른다. 지나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있다.
우리가 변곡점 위를 지났음을.
시즌1의 11화에 나온 은재의 나레이션 중 일부이다. 청춘시대 또한 한국 드라마사의 한 변곡점일 것이다. 방영 당시의 우리는 알 수 없었지만 비록 나의 행복회로는 타다 말았지만 시간이 흘러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나 <신입사관 구해령>처럼 여성주의 드라마가 제작되는 것을 보면 청춘시대는 벨 에포크 하메들이 겪은 '과도기'를 겪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 많은 여성주연 드라마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지나온 여러 변곡점들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난 오늘도 행복회로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