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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Feb 04. 2018

#1 <고양이를 부탁해>

 혼자 가는 것보다는 너랑 함께 다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1 <고양이를 부탁해>   

  혼자 가는 것보다는 너랑 함께 다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혼자 가는 것보다는 너랑 함께 다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_희,<고양이를 부탁해>









미래의 배우자 얼굴을 보기 위해 거울과 칼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기 직전의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


업로드한 스틸컷들에는 주로 다섯 명이 함께 등장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관심이 가는 부분은 그들 사이의 관계성보다는 그들 각자의 성격과 이야기, 고민들이다. (물론 다섯 명의 이야기를 묶어주고 영화를 매력적으로 끌고 가는 건 그들의 우정과 관계다. 또한 다섯 명 모두의 이야기를 영화에서 다루지는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 영화의 오프닝 속 사랑스럽고 풋풋한 여고생들은 여느 10대들처럼 쉽게 행복해하고 쉽게 웃음 짓는다. 그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목청이 떨어져라 웃고 떠드는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반짝반짝 존재하고 있다.


영화 속 시간이 흐르고, 졸업한 지 거의 1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은 그때와 사뭇 달라졌다. 인천의 한 상고를 졸업한 스물 남짓의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는 각자 다르게 전개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모이면 졸업하기 전의 왁자지껄하고 발랄했던 순간으로 돌아간 모습이다.(술이 함께 한다는 것,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다섯 명이 모이면 그때처럼, 다른 모든 일은 잠시 잊어두고 그 시절로 돌아가 황당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예를 들어, 미래의 배우자 얼굴을 본다며 보름달이 뜬 날 밤, 거울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칼을 문다든지 하는 등의 행동:D) 그러나 '성인'이라고 불리는 단계로 한 걸음 올라간 그들은 녹록지 않은 사회 앞에서 각자 다른 태도를 갖고 나아간다. 직업에서부터 앞으로의 계획, 대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성격 등 천차만별이다.


역시나 영화 초반부를 보면서는 개인적으로 매우 아끼는 <the sisterhood of the traveling pants(청바지 돌려입기)> 생각이 많이 났다. 아무래도 우정/성장 영화에는 겹쳐야만 하는 요소들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가령 친구들 모두가 모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야 한다든지, 성격과 환경이 다 달라야 한다든지, 각자의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특히나 두 영화가 비슷한 지점은 친구들을 연결해주는 구체적인 매개를 보여준다는 점인데, 전자의 경우엔 청바지, 이 영화의 경우엔 고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을 빼고 보면, 두 영화는 굉장히 다르다. 첫 느낌부터 전체적인 이야기, 인물 설정, 분위기까지 거의 모든 게 말이다. <청바지 돌려입기>가 채도 높고 알록달록한 느낌이라면, 이 영화는 다소 채도가 낮고 (심지어는 회색빛이 돌 정도로 현실적이고 리얼한 색감을 갖는다.) 날 것의 화면을 보여준다. 또 전자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서로 아주 다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각각이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도 될 정도로 통통 튀고 개성 넘친다. 반면, <고양이를 부탁해> 속 인물들, 그중에서도 영화 속에서 주된 서사를 갖고 있는 태희와 혜주, 지영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영화에서 주로 보여주는 건 그들의 고유한 성격보다는 그들 각자가 맞닥뜨린 사회의 현실이 어떻게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다. 특별히 만들어낸 설정이라기보다는 실제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우리와 우리 주변의 친구들을 그대로 반영해 놓은 것 같단 생각이 들게 된다. '흘러가는 이야기'라고들 하더랬다. 내 친구의 언니의 친구들이 20대 청춘을 보내고 있는 걸 어쩌다 보니 지켜보게 되었고, 결국은 시간이 지나 그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 두 영화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고, 난 두 영화 모두가 너무나 좋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청바지 돌려입기만큼 좋아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단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파수꾼>보다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반올림>만큼의 애정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마음이 덜컥 움직였다.  



너무 예쁜 오프닝 장면. 사진 하나 찍는다고 모든 발랄함은 다 삼킨듯한 모습을 보여 주는 다섯 명.
성인이 되어서도 다섯이 모이면 여전히 10대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이 좋았던 건, <청바지 돌려입기>만큼 예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도, 잘생긴 배우가 나와서도 아니었다. 영화 속 특별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아니라, 어쩌면 나와 비슷하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 너무나 현실적인 부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는 고민과 걱정을 하지 않았던 20대는 거의 없겠지. 그만큼 공감이 쉽게 될 수 있는 영화였다.

태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친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참지 못하는 인물이다. 혜주는 성공한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야망 있는 캐릭터다. 근데 그 욕심과 포부가 눈에 다 보이는, 어쩌면 의외로 그리 영악하지 못한 것 같은 인물이다. 지영은 디자인 공부를 꿈꾸지만 열악하고 불우한 환경에 부딪힌다. 말수 없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가끔 돌발 행동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쌍둥이 자매 비류와 온조는 (영화 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여주진 않았지만) 항상 둘이서 모든 걸 함께 한다. 둘이 함께 살고, 둘이 함께 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팔고, 요리도 같이 하는, 항상 웃고 있는 밝은 쌍둥이 자매다. 이 다섯 명, 영화 속에서는 주로 세 명이 각자의 고민거리를 갖고 각자의 방식대로 행동을 꾸려나간다.


각각 다르게 펼쳐지는 전개를 정성스럽게 공감하며 봤다. 모든 인물들에게서 조금씩 나의 작은 부분들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을 지금 이 시기에 봐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1년 정도가 지난 스물 혹은 스물 하나, 그 남짓의 20대 초반을 지나고 있었다. 대학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로 들어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기가 아마 지금의 우리와 같지 않을까 싶었다. 몇 년이 있으면 대학 졸업을 해야 하는, 혹은 이미 졸업을 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는 것 같다. 같은 고민의 순간, 같은 걱정의 순간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결정 앞에는 현실의 거대한 영향이 드리운다. 디자인을 꿈꾸는 지영 앞에 있는 건 천진하게 기대감으로 부풀 수 있는 빛나기만 하는 계획이 아니라, 무김치도 제대로 씹어 먹지 못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금방이라도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판잣집이다. 이후에 그녀에게 닥치는 일들은 더 비참하다. 항상 담담한 표정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상황 앞에 서는 지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좁아 보이는 자신의 세계 안에 선뜻 고양이를 들인다. 언젠가 담담한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지영을 지켜봤다. 앞으로 지영의 미래가 태희와 함께 빛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지영이 태희에게 묻는다. "넌 앞으로 뭐 할 거야? 졸업하고 1년이나 아무것도 안 했잖아."

나도 같은 부분에서 방황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영의 이 질문에 심장이 철렁했다. 영화 속 다섯 인물들은 이 질문에 각자 대답을 하듯 움직인다. 그중 가장 공감 갔던 인물은 태희였다.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 움직이지 않는 자신에 대해 답답하고 불편해하는 태희의 고민. 그에게 공감해서인지 엔딩 장면이 너무나 가슴 벅찼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특히나 태희가 자꾸 생각난다.

나도 태희처럼 돌연 결심을 실천할 수 있을까.




색감 자체가 필름카메라 같았던 영화 장면들. 요즘처럼 선명하지 않은 화질에 화장기 없는 배우들, 노란 머리가 흔하지 않았던 그때.


배우들의 앳된 얼굴, 폴더폰으로 꾹꾹 눌러 보내는 문자, 검은색 머리카락, 옛날 옷들, 배우들의 그 시대 특유의 대사처리 등, 영화는 내가 과거 어렸을 적 언젠가 얼핏 경험했던 그 시절의 향수를 가져왔고, 난 그 감성에 푹 빠져 영화 속 매력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특히나 폴더폰으로 문자를 꾹꾹 눌러 보내는 게 어찌나 부럽던지. 하나같이 머리가 검은색이었던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필름 카메라, 이문세와 김광석의 노래, 서태지와 아이들, 반올림, 라디오, 카세트테이프, 교복, 떡볶이처럼 그리운 것들이 단번에 생각나는 영화였다. 누군가는 20대가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마는 폭죽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슷하게, 나에게 10대는 아직도 그립고 애틋한, 가끔은 돌아가고 싶어 지는 순간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기로 기억되기도 한다. 이제는 20대를 허망하게 놓치지 않으려는 책임감을 갖고 태희처럼 한 발 내딛는 용기를 서둘러야 할 것 같다. 궁금한 태희와 지영의 행보. 이제 성장통을 지나 어떤 어른이 되었을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가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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