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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Feb 04. 2018

#2 <박열>

광인으로 보이는가


 #2 <박열>

  광인으로 보이는가



"생각이란, 마음을 일구어낸 밭이야. '생각할 사' 자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의 생각은 마음을 일구어낸 밭과 같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후미코랑 박열이 옥중 투쟁을 하면서 서로를 만날 수 없어도, 최종 공판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거야. 

서로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최희서 배우 브런치_<박열> 다섯 번째 이야기 중, 감독님과의 대화)  








(※ 이 글은 영화 <박열>이 상영하고 있을 무렵, 작년 7월에 작성했던 리뷰입니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개봉 주였지만,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지나야 했다. 화를 다 보고 극장에서 나온 지 한참이 되었을 때에도 영화 내용이 자꾸만 생각나고 짙어졌던 것은, 아마 이 영화가 나에게 큰 의미로 와 닿았기 때문일 테다. 같이 영화를 봤던 친구와 귀걸이를 구경할 때도, 초코 빙수를 먹을 때도, 헤어짐에 아쉬워할 때도 자꾸만 생각 한 켠에 <박열>이 있었다. 무엇을 하든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친구와 초코 빙수를 흡입하면서 갑자기 시작되었던 건설적인 이야기도 이 영화에서 파생되었던 건 아닐까, 하고 집에 와서 예측했을 정도다. 그날 밤, 집에 들어와서도 난 새벽까지 박열과 후미코를 떠올렸다. 그 잔상 때문에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특히 후미코 역의 최희서 배우가 쓴 브런치 글을 정성스레 읽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오늘 이제야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과연, 영화 <박열> 속 무엇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걸까?




<박열> 속 '불령선인'이라고 불리던 그들은 보란 듯이 소리치고 자신을 내던지며 살았다. 하루만 사는 사람들인 것 마냥 유쾌하게, 얼핏 보면 물불 안 가리는 또라이처럼 보인다. 내가 일제강점기 시대를 다룬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나 많이 웃었던 건 <경성 스캔들> 이후로 아마도 처음이 아니었나? 웃음 포인트들이 많았는데,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미친 듯이 웃어대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 묘했다. '아니, 어떻게 저 순간에도 저렇게 활짝 웃고 장난치는 거야?' '지금 잡혀 들어가서 고문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는데 저런 얼굴이 가능해?' 하면서도 관객들은 그들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깔깔 거리고 당당한 그들의, 특히 그중에서도 박열과 후미코의 태도에 관객들은 웃으면서도 당황스러움을 동시에 느꼈을 테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그들을 일본은 '불령선인'이라고 칭했고, 그들은 보란 듯이 '불령사'라고 이름을 지어 활동했다. 뭉쳐 다니나, 개인 개인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참고 지나갈 수 없는 불의에 대항하고 활동하던 '불령사'는 불나방을 닮아 있던 아나키스트들의 모임이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 「개새끼」



신념이 확고하고 이상이 가득했던 그들은 자주 문학과 함께였는데, 박열과 후미코의 첫 만남 또한 시와 함께였다. 박열이 쓴 시 '개새끼'에 매료된 후미코는 다짜고짜 박열에게 배우자가 있냐며 묻고는 동거를 하자며 대뜸 제안한다. 박열과 후미코는 솔직하고 자유롭게 본인의 생각과 의지를 거침없이 내뿜었던 인물들이었다. 그래, 어떻게 보면 그들은 낭만을 영원히 간직하는 예술가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낭만은 '낭만'이라는 단어보다는 '투지'와 조금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생각한다. 후미코는 박열의 시를 읽고 그의 생각에 반해 그에게로 돌진한다. 후미코의 생각과 박열의 생각은 서로 만나 더 강해졌고 용감해졌다. 서로의 생각을 알고, 그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들 각자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박열과 후미코는 언제든 어디서든 두려움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각이란, 마음을 일구어낸 밭이야. '생각할 사' 자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의 생각은 마음을 일구어낸 밭과 같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후미코랑 박열이 옥중 투쟁을 하면서 서로를 만날 수 없어도, 최종 공판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거야. 서로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최희서 배우 브런치_<박열> 다섯 번째 이야기 중, 감독님과의 대화)



박열은 "제국주의 일본의 수많은 만행들이 실제 일어났다면 나를 그냥 '광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라고 법정에서 외친다. 그의 대사 덕분에 나는 영화 속에서 그들이 계속 보이고 있는 유쾌함에 왜 편하게 웃지 못했는지를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이 그냥 '광인'이었다면 난 편하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었겠지. 그러나 그들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의지가 하다못해 광기로 느껴지고 있는데 어떻게 편하게 웃을 수 있을까. 그들의 '광인'적 모먼트들이 내 일상과 거리감이 느껴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것이다. 특히나 박열과 후미코가 광적으로 보이면 보일수록 그들의 믿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둘의 순수한 열의는 심지어 일본인들의 마음까지 돌리기도 했다. 실제로 박열과 후미코의 저항의지에 대해 일본 재판장까지도 감동하여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가 파면당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다. 영화 속에서도 이 부부에게 호의와 존경심을 가지며, 그들의 열정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 많은 인물들은 그들이 허황된 이상주의자라고들 말했다. 심지어는 이준익 감독 또한 박열이 허황된 이상주의가 맞다고 말했다. 이상은 허황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중요한 건 이상은 허황되지만, 이상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님이 말한 대로, 그런 허황된 이상주의, 그 '하찮은 것'이 아름답다. 이상이 없는 사람, 생각이 없는 사람, 꿈이 없는 사람,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불나방처럼 냅다 불에 돌진하고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이 이상을 믿고 뽐내고 뿜어대는 모습에, 겁 없이 돌진하는 모습에, 가벼운 웃음을 넘어 감동과 응원 비슷한 것들도 함께 벅차올랐다.  





"역설적이지만 별 볼일 없는 게 소중하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사실 박열도 별 볼일 없는 인간 아닌가. 영화 속에서 <조선일보> 이석 기자가 말한 것처럼 박열은 허황된 이상주의자가 맞다. 누구나 하찮은 인간이지만, 그 하찮음 안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거지."(씨네21 1111호 이준익 감독)



시대극들을 보면 항상 생각하게 되는 공통적인 의문들이 있다. '만약 내가 저 화면 속 역사 안에 자리했다면 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갔을까?' '주인공들처럼 항일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정신은 갖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들. 같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많이 나눴었다. 그리고 점점 범위는 가까워진다. '난 작년부터 올해까지, 우리 학교에서 진심으로 변화를 외쳤던 걸까? 참여한다면, 투표한다면 그걸로 내가 할 일은 한 거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승리를 했던 건 아닐까?' 이런 식이다. 좀 더 넓혀 보면, 다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안전한 광화문에서 사람들 틈에 존재했던 것으로 자부심을 느끼던 나는 과연 익명의 1인으로서 안전을 보장받지 않을 때에도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이 의문들에 자신 있게, 고민 없이 바로 확답을 할 수 있을 박열과 후미코라는 캐릭터가 마음 깊이 남았다.


박열과 후미코는 청춘이었다. 단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그 탄탄한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들의 양상이 청춘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똘끼처럼 보이는, 각자의 신념과 이상에 대한 그들의 거침없는 믿음과 행동력 같은 것들이 말이다. 20대의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이상이 옳을 수는 없었을 테다. 그러나 박열과 후미코는 그 이상과 신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지켜갈 패기를 갖고 있다. 생각해 보면, 많은 운동가와 혁명가, 예술가, 투쟁가들의 업적은 어린 나이에 이뤄지지 않았는가. 내 생각과 결정이 맞는지 의심하고 방치해두며 고민만 하는 나같이 우물쭈물거리는 사람에게 박열과 후미코는 보란 듯이 강한 눈빛을 하고는 솔직하고 자유롭고 행복하다.  






"20년 동안 홀로 마음속에 간직했던 이야기가 마침내 배우들의 말과 호흡으로 구현되는 순간들을 보시며, 2017년을 사는 우리들의 얼굴에서 1923년 도쿄의 불덩이 같았던 청춘들을 떠올리셨으리라."(최희서 배우 브런치_<박열> 네 번째 이야기 중, 첫 리딩의 순간)


"<박열> 세트장 안에는 공판 촬영을 위해 약 200여면 가까이 되는 출연자들과 스텝들이 모여 숨을 죽인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간토 조선인 대학살을 은폐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음모를 모조리 폭로하는, 그을린 박열의 얼굴이 작은 모니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금세라도 넘칠듯한 눈물이 그의 두 눈 흰자 위에 일렁인다. 현장에서 나와 슬이를 볼 때마다 점검을 받던 장문의 일본어 대사들이 그의 입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쏟아져 나오며 쩌렁쩌렁 세트장 안에 울려 퍼진다. 모두가 침묵하며, 어떤 이는 손톱을 물어뜯고, 어떤 이는 패딩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바라보던 박열의 독백은 그를 지켜보던 우리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찬 감정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오롯이 슬픔 혹은 울화로 귀결될 수 없는 감정의 요동이었으며, 이를 숨죽여 지켜보는 우리로 하여금 마치 92년 전, 동경 대법원에서의 박열의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기시감마저 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컷!! 오케이!!" 긴 독백이 끝나자, 감독님의 외침과 함께 이제훈 배우는 무너져 내렸다. 모든 기운을 다 쏟은 후, 창백하게 젖은 그의 얼굴 위로 스텝들의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최희서 배우 브런치_<박열> 다섯 번째 이야기 중, 공판 촬영)



두려움이라고는 1도 없는 듯이 질주하는 그들의 똘끼처럼 내가 좋아하고 선망하는, 영화 제작의 열기가 이 작품 속에서도 느껴지더랬다. 역시나 이 영화의 현장 또한 뜨거웠었나 보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배우들의 몰입을 화면에서 발견할 때, 정교하고 세심한 연기를 포착할 때, 그러면서도 그들이 하는 게 연기라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지났을 때의 희열감을 사랑한다. 박열과 후미코, 그리고 불령사의 열정과 용기를 그동안 배우에게서, 감독에게서, 촬영 현장에서 자주 찾곤 했었다. 그리고 함께 꿈꾸곤 했었다. 최희서 배우의 브런치를 읽으면 아마도 <박열>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배우에 대한 애정과 함께, 이 영화 하나를 제작한 사람들의 시간과 열정이 너무 멋지다. (지금은 여섯 번째 이야기를 끝으로 연재가 끝났다)


너무 감정에 치우치고 배역들에 닥빙해 있는 상태라, 영화를 보면서 찬양했던 부분들을 다 못 짚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대상화되지 않는 여성 캐릭터가 너무 오랜만이라 정말 좋았었는데 이 부분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ㅎㅎ 이에 대해 감독님 인터뷰와 연결해 아주 살짝 말하고 가려한다. 난 이 영화 속 박열과 후미코를 모두 아끼게 되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후미코에게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아나키스트, 그리고 이에 따라 자연스레 페미니스트였다는 것. 이건 단순히 그녀가 박열을 만나자마자 동거하자고 제안하는 파격적인 대사 때문만은 아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자기 삶의 서사 안에서 구축된 페미니즘, 스스로 설립한 가치관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박열 또한 후미코를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존중하는 근대적 가치를 보여준다.'(씨네21 1111호 이준익 감독) 페미니스트, 아나키스트였던 이 부부가 정말 매력적이고 부럽지 않은가. 이 영화는 한국 vs 일본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철저히 권력에 대항하는 개인의 이상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제국주의, 성차별 등과 같은 인정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항하는 지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후미코와 박열, 그리고 브런치를 통해서 느낀 현장을 그리며

지금 갖고 있는 여운을 이렇게 글로 남겨 놓는다. 또 보러 갈 예정.

다시 보고 오면 또 어떤 걸 더 느끼고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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