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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Jun 29. 2019

#17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얼떨결의 불행, 얼떨결의 행운


  #17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얼떨결의 불행, 얼떨결의 행운



이 영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상기된 얼굴로 상영관에서 나왔다. 심지어 포스터도 잘 만들었다. 팜플렛 두 장이나 가져와서 하나는 스캔해서 내 방 벽 다른 팜플렛들 옆에 붙여놓고 하나는 책상 위에 올려놨다. 포스터의 노랑/파랑 포인트가 정말 예쁜데, 영화에서도 이렇게 예쁜 색감, 영상미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의 8할은 주인공 아자의 통통 튀는 성격과 마음가짐에 있다고 본다. 특별하고 유쾌하게, 영화같이 살아가는 아자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그가 해주는 스펙타클하고 기적 같은 이야기에 두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이던 아이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날 서있고 공격적이던 아이들의 태도가 마지막에 180도 전환된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영화 제목부터 등장하는 '이케아'는 특별한 단어다. 아자에게 ‘이케아’는 그냥 이케아가 아니었다. 일단 영화는 아자의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한다. 인간은 평등하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태어나 같은 출발선상에서 생을 시작할 수 있다? 이건 다 틀린 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기회와 가능성은 모두에게 다르게 부여되니까 말이다. 아자는 학교에 가고 나서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본인이 가난하다는 것을(!) 아자는 자기도 모르게 가난하게 태어나버렸다. 얼떨결에 말이다. 점차 새로운 것들에 눈을 뜨던 그는 엄마와 병원에 갔다가 생전 처음으로 보게 된 잡지 속 이케아 가구에 푹 빠져 버리게 된다. 그 후 아자는 잡지를 달달 외워 매일매일 컬렉션 이름을 중얼거렸고 본인이 보는 세상, 주변 환경 속 이미지에 그것들을 대입시켰다. 상상을 피워내던 어린 아자를 보는데, 내가 다 두근거렸다. 어린 아자에게 ‘이케아’는 새로운 세상, 언젠가 맞닿고 싶은 로망이었다. 누구에게나 이런 게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영화를 보면서 나의 ‘이케아’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멋스러운 가구를 선망했던 아자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은 당연히 이케아 매장이었다. 내가 정말정말 반한 장면이 여기에 나온다. 아자가 이케아 매장에서 마리에게 반해 대시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내가 이 영화에서 아끼는 명장면 중 하나다. 아자의 능청스럽고 창의적이고 사랑스러운 대시법, 이를 능수능란하게 받아치던 마리의 센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스파크는 정말. 정말. 최고였다.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내가 왜 아자 캐릭터에게 반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로마에서 만난 영화배우와의 에피소드도 엄청났다. 아자의 기획으로 둘이서 만들어낸 춤 퍼포먼스가 바이럴되어 그녀가 놓쳐버린 과거의 사랑을 되찾아주는데, 내가 다 희열을 느꼈다. 계속되는 아자의 에피소드를 마주하다 보면,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 생각보다 행운은 자주 찾아온다는 것, 마음만 조금 바꾸면 생각보다 삶이 유쾌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아자처럼, 내 앞의 세상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특별하고 사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단 사실을 최근 들어 까먹고 살았단 걸 깨달았다. 아마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태도로 인생을 살기도 마음먹었던 걸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꼭 언젠가 이런 작품을 만드리라.)





아자의 매력에 힘 입어, 이 영화는 종일 유쾌한 코드가 스며들어있는 작품이었다. 속도감 있게 진행됐고 웃음 포인트가 많았으며 전개 자체도 유쾌했다. 객석에서 웃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기분 좋은 영화였다. 노래와 춤도 많이 나오고 배경도 다채롭고, 배우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말할수록 이 영화가 좋아진다.ㅠㅠㅠㅠ





얼떨결의 가난과 불안불안한 환경을 타고난 아자였지만, 이를 굴레라고 순응하며 가만히 앉아있을 그가 아니었다. 영화는 거짓말처럼 술술 풀리는 아자의 여행과 모험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아자의 앞에 나타난 건 숱한 행운들만이 아니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아자의 모험엔 행운보단 장애와 위험이 더 많았다. 아자의 모험에 박차를 가해준 건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편지였고, 아자의 사랑이 이루어지려는 찰나에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생겼으며, 심지어는 공항에 갇히기도 했고, 희망과도 같았던 큰 돈을 몽땅 뺏기기도 했다. 그러나 아자가 모험 중에 맞닥뜨린 모든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사하는 쾌감이 이 영화가 가진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아자는 방해물이 다가올 때마다 어머니께 들었던 카르마를 생각한다. 수십 번 열리지 않았던 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던 시도 끝에 결국 아자를 밖으로 내보내준다. 불행이 얼떨결에 찾아왔듯이, 이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해지는 순간도 얼떨결에 찾아오더라는 것이다. 밝고 신나는 여정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할 틈들을 끊임없이 내준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나는 다누쉬에게 반했음을 알리며(국민 배우라면서요? 역시는 역시였다...!), 아자의 아역을 맡은 배우의 당찬 연기력과 귀염뽀짝한 매력을 보지 않는다면 올해 건후 다음으로 귀여운 아기를 놓쳤다고 말해주고 싶다. 극중에서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며 턱을 괼 때 눌리던 볼살ㅠㅠㅠㅠ 흑흑... 너무 귀여워서 울뻔했다. 이에 더해, 아자의 여행과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다양한 국가의 배우들이 등장해서 너무 좋았다. 모든 에피소드에 아자가 등장하지만, 마치 옴니버스 영화 같기도 했다. 옴니버스 영화를 사랑하는 1인으로서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마치 <뉴욕 아이 러브 유>나 <로마 위드 러브>처럼 장소와 캐릭터의 다채로움을 선사하는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과 촬영했기 때문에 각 배우들의 스타일이 달라 촬영 현장도 신기했다는 후문이다.) 뭄바이에서 시작해, 파리, 런던, 바르셀로나, 로마, 트리폴리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함께 하며 목격하게 되는 이국적인 풍경들도 영화를 보며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된다. 특히 파리와 로마가 정말 아름답게 나온다. 


만약 아자가 파리로 갈 티켓을 끊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자는 이 길고 순탄하지 않았던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었다. 이 여정을 겪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의 아자와 이후의 아자는 다른 사람이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무언가를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그동안 너무 당연시해온 나와 내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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