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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Nov 20. 2018

#16 <영주>

"넌 좋은 애야. 아줌마는 알 수 있어."


  #16 <영주>

    "넌 좋은 애야. 아줌마는 알 수 있어."





일상의 버거움이 가슴 끝까지 차올라 돌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오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시간이 지나면 그 버거움이 어떻게든 끝나거나, 적어도 무뎌지긴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가 오기 전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아지려 애쓰다 결국 인정하게 되는 건, 우리가 필요한 건 역시 위로라는 사실이다. 힘든 지금의 나를 알아주고 걱정해주고 안아주는 것. 그게 누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열아홉 영주는 그 벅찬 하루를 너무 일찍부터 경험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고, 어린 어른이 되어 자신보다 더 어린 동생을 보살펴야 했고, 성인의 나이가 가까워지자 친척의 이면으로부터 상처를 받아야 했다. 더군다나, 최근엔 사춘기 동생이 사고를 쳐 합의금을 마련해야 하는 지경이다. 최악에 최악이 겹친 영주에게선 그 나이 대의 특권으로 묘사되곤 하는 무모한 해맑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빛나는 눈빛보단 눈물 맺힌 눈빛, 펼쳐질 미래에 대한 설렘보단 걱정과 한숨만이 보일 뿐이다.


막다른 길에서 영주는 자신과 동생을 이렇게 몰고간 사람들, 부모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교통사고 가해자의 주소를 알아내 찾아간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도, 수화기 너머로 만난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리저리 치이고 내던져진 영주가 복수의 마음을 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주는 가해자들이었던 상문과 향숙을 만나 되려 위로받고, 그들의 삶 속으로 따스하게 녹아 들어간다. 향숙에게서 엄마를, 상문에게서 고통을 엿보게 된 영주가 그들에게 마음을 몽땅 안겨주는 것을 지켜보는 건,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었다. 아마도 영주에겐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따뜻한 사람들, 너무나 오랜만에 느끼는 진실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넌 좋은 애야. 아줌마는 알 수 있어."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주는 향숙을 보고 영주가 감동받을 때의 그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순수하고 정많은 이 열아홉 영주는 다른 누구도 아닌, 어쩌면 현재 불행의 원인을 제공했을 가해자들과 있을 때 가장 활짝 웃는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영주의 얼굴에 순진무구한 행복이 퍼질 때, 우린 안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끝자락에 우린 그동안 영주가 느낀 행복이 똑같이 지속되진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앞으로 더 고될 그녀의 성장을 예상하게 된다.

 





이 작품은 관객들 대부분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게 만든 영화였지만, 극장을 나서는 우리에게 힐링을 주기도 했다. 사람들의 따뜻함과 영주의 순수함을 발견하는 부분 뿐만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소품에서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 영화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음식이 등장하는데, 이 음식은 우리가 감동을 느끼는 인물들의 마음과 연결된다. 닭다리를 먹는 동생 영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영주, 포슬포슬 뜨끈뜨끈한 두부를 만드는 정많은 향숙과 상문, 영주를 아껴주며 만두와 밥을 챙겨 먹이는 향숙, 그리고 엄마와 딸처럼 같이 만두를 빚는 향숙과 영주의 모습이 그 예다. 그렇다. 음식이 주는 힐링 효과를 믿는 나에게 이 영화 속 음식들은 그걸 증명해주더랬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들의 이야기와 아픔에 빠져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특히나 주연으로 분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의 집중을 유지시키는데 성공하는 김향기 배우는 정말정말 최고였다. 영화의 주인공 영주가 위로를 받는 걸 관객으로서 지켜보는 건, 동시에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벅찬 하루하루 속 우연히 만난 영화 <영주>는 여운이 긴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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