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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Nov 12. 2018

#15 <청설>

가장 크게 들리는 손짓  (스포有)


  #15 <청설>

    가장 크게 들리는 손짓






"넌 샤오펑밖에 몰라. 네 생각은 하나도 안 해.                       

네가 널 안 챙기니까, 내가 네 생각만 하게 되잖아.                     

집에 가면 네 생각만 해.

너하고 얘기하는 게 좋으니까 수화도 하나도 안 힘들어. "


_티엔커,<청설>







(※ 스포일러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읽으면 영화의 감동이 크게 감소하니, 영화 감상 전에는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해요.)
   
 

생소한 핀란드가 궁금할 때 <카모메 식당>을 보고, 푸릇한 그리스가 보고싶을 때 <청바지 돌려입기>를 꺼내는 것처럼, 영화 속에 나온 장소가 그리워 찾게 되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청설>도 그렇다. 아, 생각해보니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청설>은 내가 처음으로 대만에 매력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라 애착이 가는 영다. 이 영화 속, 착하고 다정한 사람들과 분주하지만 평화로운 분위기가 바로 대만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첫 여행을 앞두고 대만을 엿보려던 목적으로 본 영화였는데,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아끼는 대만 영화이자, 내 인생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연출도, 내용도, 캐릭터도, 분위기도, 모두 마음에 든다. 이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은 나에게 너무나도 설레는 소식이었고, 난 벅찬 일상 속에 나의 영화♡나의 <청설>을 볼 시간을 끼워넣었다. 그리고 역시는 역시. 너무 좋아서 울뻔했다.






영화 <청설>의 눈에 띄는 매력은 청각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섬세하고 따뜻한 고려와 배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는 귀가 들리지 않는 동주의 입장에서 세상을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 수영장 씬, 그리고 동주의 불안해하는 표정 정도였다. 그게 드라마를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물론 이밖에도 여러 장치가 있었고 좋은 작품이긴 했지만, 그래도 동주의 시점을 충분히 다루어줬더라면 수영장 씬에서 느꼈던 충격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을 거라며 안타까워 했더랬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반전을 알기 전까지 거의 모든 장면에서, 관객들이 들리지 않는 세상을 같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유쾌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는 청년 티엔커는 수영장에 배달을 하러 갔다가 물새처럼 뛰어가는 양양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배달을 하러 간 수영장에서는 청각 장애인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고, 그속의 대화는 코치의 말소리와 수화를 하면서 손이 부딪히는 소리로 이뤄졌다. 티엔커 또한 수화로 도시락 값을 받고, 양양도 도시락 값을 수화로 묻는다. 이후의 영화가 대부분 티엔커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린 티엔커는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며, 양양에게 푹 빠져있단 걸 알게 된다. 티엔커가 양양의 세상 속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보는 대사의 절반 이상은 수화로 진행된다. 영화 속 주된 소리는 손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배경음 그리고 배경음에 속해버리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다. 이 소리들을 듣고 있자면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 감정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쓰게 된다.





 

티엔커가 표현하는 양양에 대한 사랑이 너무 맑고 순수해서,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설>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참 착하고 따뜻하다. 그중에서도 티엔커와 양양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마음에 더 집중하게 되더랬다.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드문드문 들리는 그 손짓소리와 깊은 눈짓 덕분이 아닐까 싶다. 몇몇 주요 장면들은 배경 음악 없이, 손이 부딪히는 소리로만 이루어진다. 그속에서, 말소리 없이 흘러가는 그들의 대화는 신기하게도,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이 반전이 영화의 귀엽고 나름 충격적인 요소였는데,) 서로가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줄 알고서 손짓과 표정으로만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나누던 티엔커와 양양의 시간들은 그래서 더 특별하고 착했다. 사실, 그 덕분에 두 사람이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더 진실되고 순수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수화로 대화했던, 착한 이 두 사람의 예쁜 마음과 깊은 배려가 이렇게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가 아닐까?


작품 속에서 사랑하게 되는 캐릭터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순수함을 발견하게 되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맑은 캐릭터들은 참 오랜만이다. 티엔커가 한 솔직한 사랑이라든지, 양양의 착한 마음이라든지, 샤오펑의 진심담긴 배려라든지, 티엔커 부모님의 넓은 마음이라든지, 다 놀랍다. 양양은 사랑스럽게 언니를 바라보고, 신나게 수화를 하며, 물새처럼 방방 뛰며 이곳저곳 일을 하러 간다. 그리고 티엔커는 그런 양양에게 반해 마음 가는 대로 적극적으로 양양에게 다가간다. 물새 이야기를 하고, 나무 분장을 하는 그는 정말 최고다. 거기에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귀가 들리지 않는 다는 아들의 말에 스케치북을 준비해서 청혼하는 부모님이란....!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꽤나 크다.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따뜻했다. 참 소박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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