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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Oct 26. 2020

#8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고요하게 요동치는 마음


 #8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고요하게 요동치는 마음



극중에서 주인공 채송아 역을 맡은 박은빈 배우는 이 드라마가 짝사랑을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짝사랑'은 비단 어떤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사랑에 한정된 게 아니라, 꿈과 사랑 두 가지에 있어서의 짝사랑을 의미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닿을 수 없을 것으로 느껴지는 각자의 꿈과 사랑을 오랜 시간 품어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해보고 애타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드라마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점점 드라마에 더 깊게 빠지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제목에서부터 애틋한 짝사랑의 사연으로 유명한 브람스를 언급하며 마음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어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과 차분하고 섬세한 감성,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인물들의 성격을 초반부에 선보이며 감성 청춘 드라마를 차근차근 이어나갔다. 며칠 전 종영했음에도 여전히 이 드라마에 과몰입해있는 상태라서 몇 자 적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미어진다. 이 마음을 담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특별한 점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1) 느리지만 애틋하고 예쁜 분위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 2회                                


진지충, 노잼, 아싸와 인싸, 병맛 등의 단어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트렌디하고 웃긴 콘텐츠들이 주류가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견고한 팬층을 생성하면서 이 드라마는 차분하고 느린 감성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 건재함을 증명했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늦깎이 음대생이 된 송아와 타지를 홀로 오가며 시간을 보내온 유명 피아니스트 준영.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송아와 준영이지만, 둘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침착하고 고요하고 사려깊은 성격을 가진 이 두 사람이 그리는, 느리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애틋하고 예쁜 분위기가 드라마 전반을 감싸고 있고, 바로 이것이 초반에 고정 팬들을 확립한 비결이 아닐까 한다. 준영 역을 맡은 김민재 배우가 표현했듯 이 드라마는 '잔잔한 느낌 속에 요동치는 감정이 많'은 신기한 드라마였다. 분명 조용하고 천천히 흘러가는 이야기인데 보다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무언가가 많아 감정소모가 크다.



준영은 연주를 할 기회를 잃은 처음 보는 송아를 도와주려 했고, 송아는 인턴 근무 중 자신에게 무례했던 연주자의 연주를 자신의 기분보다 먼저 생각했다. 작은 배려와 섬세한 시선을 가진 두 사람은 첫인상이 자칫 답답해보일 수 있어도 결국엔 그 선함과 따뜻함이 드러나는 사람들이었다. 진심을 담아 말하고 행동하는 송아와 준영을, 대사만이 아니라 공백으로 분위기를 채우는 이 드라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2) 한없이 방황하고 흔들리는 인물들의 성장기


우리가 드라마를 보며 고요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덩달아 느끼게 되는 건 극중 인물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느끼게 돼서일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고 무력해지던 과거의 혹은 현재의 나를 그들과 겹쳐보게 되는 드라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5회


‘나는 그만큼의 재능은 감히 바란적도, 꿈꾼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그 재능으로 꿈을 이룬 당신은 행복해보이지 않는걸까?

당신은 당신의 재능을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일까.’

모든 인물들이 소중하지만 특히나 애틋한 건 아무래도 주인공 송아다. 송아의 꿈,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이 야속하게도 좌절되고 상처받을 때마다 송아라는 인물과 함께 그 슬픔과 답답함을 감내하게 되더랬다.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바이올린을 향했던 송아의 사랑, 열정, 상처, 좌절, 행복이 너무 진심이었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믿고 달려가던 송아는 씁쓸함과 용기를 동시에 전달해주는 인물이었다. 늦은 나이에 바이올린을 전공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흔들림과 불안감이 있었을지, 학교 끝자리에서 얼마나 위태로웠을지를 생각하면 송아가 얼마나 강하고 단단한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다.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그동안 송아는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을 것이다. 더 아프지 않기 위해 한 그녀의 마지막 결심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으리란 것을 우린 알 수 있다.

준영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타 피아니스트지만 그가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어린시절부터 타지에서 보내야했던 외롭고 고독한 밤, 피아니스트 입지에 있어서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시선, 대책없는 아버지로 인해 만들어진 지치고 힘든 환경, 용기를 내지 못하고 끙끙 앓아온 짝사랑 등 그는 행복과 가깝지 못했다. 준영은 한국에 돌아오면서 송아를 만나고 그녀와 시간을 보내며 변화를 맞는다. 묵묵히 견디고 참는 것에 익숙했던 준영은 송아와 함께 짝사랑이 아닌 사랑을 하게 되고 외로움이 아닌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드라마는 가혹하게도 인물들에게 자꾸 시련을 안겨 준다. 그럴 때마다 시청자들은 그들과 함께 흔들리며 아파했다. 유독 안타까웠던 준영이 송아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고민거리에 휘말려 있었다는 점이다. 주인공에 이입해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주인공 위주로 드라마를 보게 되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는 송아와 준영 말고 다른 인물들의 마음에도 귀를 기울여볼 수 있도록 만든다. 이들은 모두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고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며 고민하고 있다. 인물들이 힘들어하는 지점은 각기 달랐다. 누군가는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고민했고, 누군가는 간절하게 사랑하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상처받았고, 누군가는 타의적으로 생기는 힘든 상황에 좌절을 거듭해야 했으며, 누군가는 오랜 연인이 떠나갔다. 심지어 고민 위에 다른 고민이 덮쳐오니 이들은 계속해서 방황하고 흔들렸다. 어떤 방향을 선택하는 게 맞는 건지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하나 결정해가는 이 인물들의 상황 속에서 나는 나와 내 언니와 내 친구들을 발견했다. 우리는 인물들의 방황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과정 속에서 함께 위로를 받았다.

끝나지 않는 도전, 순위 매기기에 지치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해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잘 하고 싶은 마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을지 답을 찾는 과정은 아프고 상처받는 과정이다. 마지막회에 이르러 이들은 선택을 했다. 비록 이후에도 선택의 순간은 계속 다가오겠지만, 각자의 꿈과 행복, 마음에 대해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던 그들은 그들이 고집해오던 단 하나의 소망만을 위해서가 아닌,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현 시대 청춘들에게 향하는 가볍고 습관적인 위로가 무뎌질 찰나에 이 드라마는 섬세하고 사려깊은 위로를 건넸다. 





(3) 꿈과 사랑에 대한 짝사랑


서로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송아에게 준영은 경후문화재단 공연기획팀 인턴 시험으로 어떤 내용을 제출했는지 묻고, 송아는 주제가 브람스-슈만-클라라였다고 말한다. 이를 듣고 준영은 말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회                                


"테마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나봐요"

"아니요. 세 사람의 우정이요.

브람스... 좋아하세요?"

표정이 잠시 굳어지며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준영의 장면 뒤로 두 사람과 얽혀있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드라마에는 여섯 명의 주요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 친구들과 관련된 사건과 관계들은 첨예하게 얽혀있어서 이들 사이의 그 어떤 대화 하나도 방심하고 넘기면 안 된다. 

자신을 발굴해준 슈만-클라라 부부와 거의 평생을 함께 했던 브람스는 슈만만을 향해있던 클라라를 평생 마음에 두었다고들 한다. 드라마 초반부에 송아와 준영은 각자 브람스처럼 완성될 수 없는 사랑을 오랫동안 하고 있던 터였다. 친구의 오랜 연인이자 자신의 오랜 친구인 정경을 사랑했지만 한 마디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 한 번 보인 적 없던 준영은 정경을 생각하며 매일 '트로이메라이'를 쳤고 브람스의 곡은 차마 치지 못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 2, 7, 16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담겨있는 게 아니더랬다. 그 안에는 꿈, 음악, 추억, 부러움, 연민, 동경 등의 다양한 마음이 섞일 수 있다. 때론 그 마음이 좋아하는 마음을 방해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준영을 가로막았던 건 자신의 환경과 친구와의 우정이 있었고, 준영에 대한 송아의 사랑에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동경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준영에 대한 정경의 마음에는 그녀가 밝혔듯 재능에 대한 부러움이 녹아 있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보니 음악과 사랑이 얽혀 있는 게 신선한 부분이다. 정경은 이후에 미국에서 준영에게 대뜸 입을 맞춘 이유가 질투가 나서였다고 밝혔고, 송아가 바이올린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그 어떤 사랑의 장면보다 애틋하고 깊었으며, 준영이 송아에게 들려준 월광해피버스데이 곡과 '헌정'은 강렬하게 와 닿았다. 송아의 졸업 연주회에서 준영의 피아노와 송아의 바이올린이 만나는 지점은 그 어떤 스킨십보다 강렬하고 깊게 느껴졌다.

정경에 대한 마음을 오랫동안 홀로 다잡으려 했던 준영, 멀리 있다 느껴지는 바이올린을 애틋하게도 사랑했던 송아, 잃어버린 재능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못했던 정경, 한결같이 정경을 사랑했지만 떠나보내야 한 현호, 서로를 좋아하기 시작해 사랑하기까지 이르게 되는 송아와 준영. 이들의 절절한 사랑을 지켜보며 얼마나 안쓰럽고 애탔는지 모른다. 







(4) 배우들의 잊지못할 연기와 케미


모든 캐스팅이 완벽했다. 모두가 드라마 속에서 살아 숨쉬었다고 느꼈다. 이를 기반으로, 특히나 시청자들을 이 드라마에 더욱더 빠지게 만든 건 아무래도 드라마와 캐릭터에 온전히 몰입한 배우들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7회


TMI긴 하지만 <강남엄마 따라잡기> 때부터 응원해온 박은빈 배우는 자꾸만 연기 실력이 늘어가서 팬심이 더 두터워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그녀는 선하고 강한 인물을 디테일하게 표현해내 많은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다. 사랑의 떨림을 그대로 전해줬던 고백 씬, 바이올린을 보며 진심을 되내이던 씬,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씬 등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다. 배우가 연기에 진심을 담을수록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정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송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올린과 준영에게 있어서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이미 쌓인 시간을 따라갈 수 없는 걸까’ 하고 아파하던 송아의 사랑의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짝거리고 찬란했다.

감정에 빠져 지내는 것이 눈에 보이는 김민재 배우도 최고였다. 진중하고 차분한 캐릭터의 성격 때문에 대사 없이 표정과 움직임으로 감정을 전달해주는 장면이 다른 인물들에 비해 많았는데, 그게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 분명하다. 드라마가 후반부를 향해 갈수록 배우가 준영이라는 인물에게 100% 이상 몰입해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과몰입은 항상 시청자들의 과몰입으로 이어지니 드라마 덕후들은 울 수밖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3, 5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6, 7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9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4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5, 16회


이 드라마의 분위기와 캐릭터들의 성격, 극의 전개에 맞게 박은빈 배우와 김민재 배우는 긴 호흡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서로를 살피고 자신의 마음을 생각하고 말을 고르는 그 호흡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숨죽이게 보게 만들었다. 섬세한 연기의 향연과 함께 두 사람의 로맨스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며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데, 준영과 송아 둘 다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간질간질하고 설레는 장면들이 많았다. 각자의 삶과 둘의 사랑이 연결되며 애틋해지기도 하고, 갖가지 시련을 맞으며 절절해지는 장면들까지 명장면들이 많다. 둘의 감정선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행복했는데 그림체가 같은 두 사람은 케미까지 좋아서 이번에 많은 팬들이 생겨버렸다. 그중 한 명으로서 이제 다시 또 n번째 정주행을 시작해볼까 한다. 아직은 못보낸다 못보내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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