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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Jun 26. 2019

#7 <블랙 미러 5x01 :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5x01 :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7 <블랙 미러 5x01 :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5x01 :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디스토피아에 끌린다거나, 첨단 기술 발전으로 인한 변화를 미리 상상해보는 작품을 좋아한다거나, 완성도 높은 작품이 갖고 있는 파격성, 충격, 비극, 기괴함, 여운을 느끼는데서 오는 묘한 쾌감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아마 <블랙 미러> 시리즈를 좋아할 것이다. 


시즌5의 1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기존 시리즈에 비해 충격적 모먼트들이 만족스럽지 않은 회차이긴 했다. 극중 인물들이 하는 VR 게임이 굉장히 리얼하고 심지어 게임 중에 실제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설정을 담고 있는데, 사실 이 설정과 에피소드 자체도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봤을 땐, 비슷한 소재를 풀어냈던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전반부와 비교했을 때 그래픽 효과, 파생 에피소드, 신선함의 정도에 있어서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드라마에서 가까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릴 넘친다는 건 사실이다. 이 회차가 좋았던 건 극중 인물들이 게임에 접속할 때의 연출이 <블랙 미러>가 선사해온 특유의 (기술 발전이 가져올 지 모르는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을 선사해줬다는 것이다. 


이 연출은 <아바타>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게임 속 캐릭터에 접속하는 유저들의 모습이 판도라 행성 나비족의 몸으로 접속하던 요원들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접속을 통해 본인의 모습과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경험을 하며, 새로운 세계를 실제처럼 느낄 수 있고, 다른 세계 속에 접속하게 되면 실제 세계에서의 본인은 영혼 없는 얼빠진 몸으로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 유사했다. 


이 회차에서 보여주는 미래에서는 게임에 대한 몰입감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지지만, 동시에 게임에 몰입했을 때 그 유저들이 (실제 세계의 물리적 관여가 없다면) 실제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체처럼 맥없이 늘어진 둘의 모습은 생소하게 다가오는데, 이로 인한 불안감, 경각심, 흥미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에게 달려있을 것이다. (TV, PMP, 스마트폰, 에어팟 등) 신문물을 접할 때마다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내는 반응이 다 달라왔던 것을 기억해보면 말이다. 





같이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던 대니와 칼은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다. 대니는 아내, 어린 아들과 함께 평화롭고 안정감 있는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던 반면, 칼은 미혼으로 가벼운 연애를 전전하고 있다. 둘의 관계는 칼이 대니에게 VR 게임을 선물하면서 급격히 달라지게 된다. 게임 기기를 신체에 부착시킨 이후에 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게임 캐릭터로 존재하는, 현실과는 다른 리얼한 게임 세계다. 이 안에서 그들은 30대 후반의 흑인 남성이 아니라 동양인 여성과 남성이 된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 이 두 사람은 (이 부분에서 조금 개연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사랑을 나누게 되며 실제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된다. 


대니와 칼은 현실 속 생활에 소홀해질 정도로 게임 세계 속 그들의 관계에 거의 중독이 되다시피 된다. 흥미로운 건 이때 두 사람은 외도를 한 것처럼 묘사되고, 대니는 이전의 장면들을 통해 보여준 쾌락의 불충족을 게임 안에서 해소시킨다는 것이다. 둘이 현실에서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감각을 느꼈고, 같은 세계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또 두 사람이 게이인 것은 아니었다. 현실에서 둘은 서로에게 끌림을 1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다른 세계, 다른 모습일 때만 끌림, 사랑을 느끼고 쾌락을 풀 수 있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다른 세상 속 다른 정체성의 가능성을 가정해놓고, 가상 세계를 현실과 떨어진 다른 것으로 인정하고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의 질문을 던진다. 즉 가상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생소한 일들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따라서 이 작품 속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을 시작한 이후의 남편의 변화에 대한 아내 테오의 반응일텐데, 이 지점이 매우 아쉬웠다.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 않는 대니와 이로 인해 상처받는 테오의 장면이 계속해서 등장했는데, 후반부에 갑자기 해결된 듯이 결론을 내어버려서 당황스러웠다. 쾌락과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대니의 모습은 계속 보여준 반면, 테오의 경우에는 쾌락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의미를 부여해본다면 바에서 한 남자가 접근했을 때 미세하게 흔들렸던 동공 딱 한 장면이 있었다) 부부가 내린 해결책이 과연 테오에게도 의미 있고 흡족한 결정이었을지도 의문이다. 가정의 분열을 막기 위해 남편의 다른 세계에서의 주기적인 외도를 눈감아주기로 한 건 아니었을까? 


(여담이지만, 결혼기념일에 식당에서 테오가 대니에게 그에 대한 의구심과 실망감을 뱉어내는 장면은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 해서 이 회차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질문에 대한 이 작품의 결론은 가상 세계 속의 관계를 실제 세계 속 관계처럼 동등하게 인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관계는 그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지만 말이다. 즉, 가상 세계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이며, 그 안의 인물은 현실의 인물과는 다르고 그곳에서 발생하는 일도 현실에서 이어지지 않는다. 다만, 미래에 새롭게 생겨날 수 있는 세상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매력이 있다. 


정해진 날마다 서로의 협의 아래, 대니는 게임에 접속해 칼과 사랑을 이어나가고, 테오는 솔로의 신분으로 바에 나가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갖기로 한다. 부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정을 유지하며 얻지 못하는 쾌락을 상호 간에 허락해준다는 이 방식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게 쿨한 규칙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대니가 게임 속 쾌락에 빠져 가정에 소홀해졌던 것처럼, 둘의 간헐적인 외도가 과연 행복한 가정을 유지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를 빼고 본다면, 게임 세상에서 대니가 칼을 만나는 것과 현실에서 테오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동등하게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게임 세상이 현실의 연장인 것은 아니지만, 게임에서의 활동을 현실의 활동과 비슷한 무게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봤다는 점이 흥미롭다. 






(*브런치 X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활동 중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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