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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May 04. 2024

#10 <연인>

상투가 이렇게 섹시할 일이었던가


 #10 <연인>

  상투가 이렇게 섹시할 일이었던가



청나라 모자 안에 숨겨있다 드러난 조선의 상투가 이렇게 섹시할 일이었던가..? 혹시나 오해할까봐 확실히 해두자면, 난 그 상투 씬에 다다라서야 남궁민 배우의 연기와 그가 연기한 장현 캐릭터에 처음으로 반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물론 청나라 복장을 하고 있다가 길채 낭자 무리를 지키기 위해 모자를 벗어던지는 씬은 길이 남을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었다만, 그 씬이 나오기 훨씬 이전, 위험천만한 간자 신분으로 청나라 군대에 잠입하겠다고 결심하던 간 큰 성격을 보고 이미 반해있는 상태였다. 어어! 하지만 여기서 또 오해는 금물이다. 그때가 시작점이었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더 더 이전부터, 사실 첫등장부터 조금씩 스며들었다. 남궁민 배우가 분한 이장현은 남다르게 머리가 비상하고, 왠지 모르게 듬직하며, 능글능글 설레는 말도 툭툭 잘 던지는데 심지어 남들 모르게 속 깊은 면모까지 지녔으니. 멋있는 어른 남자가 가지고 있는 건 다 갖고 있는 조선 남자다.


https://naver.me/FhNEYlN3

- 01:55부터 상투 씬이 나온다 �




이 조선 남자 캐릭터는 사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역대 드라마 남자 주인공들이 갖고있던 요소들이 넘치게 담겨있다. 그중 가장 큰 특징을 감히 말해보자면, 이 캐릭터가 겉으로는 툴툴대고 능글능글 속없어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속 깊고 슬픈 사연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오직 우리 시청자들만 안다는 점이다. 알아주지 못하는 그 사람의 진가에 괜히 더 애틋함이 짙어지는 것이다. <나인>의 선우, <로스트>의 소이어, <뱀파이어 다이어리>의 데이먼을 떠올려보라. 그들의 공통점이다.


물론, 원래 드라마/시리즈물 자체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이 (내 생각으로는) 캐릭터에 대해 알아가며 그와 정들어가는 것이긴 하다. 우리는 캐릭터의 첫인상에 흥미를 갖고, 반전의 면모에 마음이 더 흔들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그들에 대해 알아가면서 더욱더 깊은 정이 들어버리고 만다. 이때 이 과정을 가끔씩 더 울컥하게 만드는 게, 바로 내가 애정하는 캐릭터의 좋은 면모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서 온다. 특정 인물을 좋아하게 되면, 그가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더라도 그의 세상 안에서 행복하길 진심으로 원하는데,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어느땐, 알아주지 않는 캐릭터들에게 지쳐서, '아 그래. 몰라 다 필요없어.. 다들 너무해. 우리 00는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그 안에선 비극을 맞이하자.. 작품으로 남자..', 하고 외치며 비뚤어져버리는 시청자가 되기도 한다. 장현이 길채 일행을 구하고도 홀로 긴 시간을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장면에서 고개를 저으며 두눈을 질끈 감았던 게 떠오른다.




이장현 캐릭터에 못지 않은 매력을 갖고 있는 게 바로 길채인데, 길채는 남궁민 배우처럼 캐릭터에 촥 감기는, 안은진 배우의 연기력에 힘입어 다채롭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길채에 대한 첫인상은 잔머리를 굴리는 게 다 보여서 오히려 미움보단 깜찍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자기가 순진한지 모르는 밝은 시골 처녀 길채가 계속해서 좌절되는 상황들은 나까지 같이 속상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길채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발현되는데, 크고 작은 역경 속에서 누구보다 결연하고 강한 눈빛으로 일을 처리해나가며 곤경에서 벗어나는 게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가져온다. 잘 헤쳐나갈 것을 믿으며 응원하게 되는 인물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 드라마가 전쟁 속 연인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독특한 캐릭터들이 살아숨쉬는 이 드라마 <연인>에는 깊은 여운, 강렬한 애틋함을 한껏 담은 멜로적 요소들이 점점 휘몰아친다. 그건 OST '다만 마음으로만'과 만나 시너지가 폭발한다. (사극 OST를 엄청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국악을 배워보기도 했을 정도. 물론 재능이 없어 쉽게 좌절된 도전이긴 했다.ㅎ 참, 드라마 <역적> 수록곡들도 엄청 좋아했는데, <연인>을 쓰신 황진영 작가님의 전작이 <역적>이다!!) 안은진 배우가 라디오스타에서 부른 '사랑한다 말해도'의 딕션과 목소리에 꽂혀서 그 영상을 한동안 엄청 본 적이 있었는데, 역시는 역시. 이 OST도 찢었다. 호소력 짙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배우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가 극중 장면에 입혀지다니. 몰입감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구슬프고 애달픈 사극을 만나 행복에 겨운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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