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이고 파격적일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 이 방송판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고 수직적인 아주 보수적인 집단인데 이러한 현상에 의문을 품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맞아, 맞는데, 여긴 원래 그래. 너가 요즘 애들은 요즘애들이구나~" 이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도 꿈꿔왔던 이 바닥에 들어와서 계속해서 전직과 버팀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된다.
프로듀서를 꿈꾸며 작은 제작사에 실습생으로 들어가 약 2개월정도의 시간동안 무급으로 일을 했다. 물을 나르고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줍고. 커피 심부름도 하고 별 말도 안되는 대접을 받고. 그러면서도 이 현장의 한 구성원이 되는 게 좋았고 피디님들이 작가님과 함께 대본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아, 나도 곧 저렇게 되겠지? 를 꿈꿨다. 그리고 실습이 끝난 후 시작과 동시에 꿈과 희망을 모두 잃었다.
출근하면서 문을 열자마자 "공룡아, 오늘은 뭐 먹어?" 소리를 n년째 들으면서 원래 이런 일을 하는 직업인지 매일 아침마다 현타를 느낀다. 나는 밀가루는 안 먹네, 단 거는 싫녜, 뭐는 별로고 사이드를 시켜달라 어째라. 과자는 이런걸 사주고 커피는 이런걸 사주고, 이번 과자쇼핑은 별로다. 나랑 취향이 안 맞는다. 밥이 맛있으면 성공! 맛없으면 오늘은 실패! 따위의 말을 들으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이건 그냥 나를 밥으로 보는 게 아닐까? 왜 내가 저들의 밥 고민까지 대신해줘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막내일때는 다들 너가 막내니 어쩔 수 없다~ 막내는 원래 그래~ 요즘애들은 그런 게 싫긴 싫겠다~
내 밑에 막내가 생긴 후에는 너도 위로 올라갔으니 그냥 막내한테 시켜~ 이 바닥이 원래 꼰대들이 많아~ 정도의 반응이니 내가 버텨야지 하고 지나가는 수 밖에.
찾아보니 법조계에도 '밥 총무'라는 이름으로 평검사들의 고충이 많다고 하니 이건 뭐 어디나 그런 꼰대 집단엔 으레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다행인건 다들 저 집단이 잘못된 것이라 하니 내가 불만이 있는 게 비정상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첫사수가 너도 요즘애들이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때 나는 그 요즘 애들이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불만이 생겨도 이건 내가 요즘애들이라 그런 것인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해야했고 요즘애들이란 말을 들으면 마치 내가 큰 죄를 저지른 것 마냥 불편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요즘애들에 익숙해지지 않은 현장은 도태되는 것이라는 걸 매순간마다 깨닫는다. 많은 기업이 변화를 꾀하고 진보적인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 버티는 자만이 성공하는 현장이라며 보수적인 모습들을 마치 훈장인 것 마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바닥은 여전히 발전이 없다.
이 불합리함에 이의를 제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이 이 바닥을 떠났다. 나 역시 몇 번이고 도망쳤다가 다시 붙잡혀왔다. 그런 사람들에게 붙는 꼬리표는 방송바닥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버틸 수 없는 사람. 라떼는 더 했는데 요즘 애들이라 적응하지 못 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