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은중과 상연>에 '사건이 없다'는 거짓말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비밀

by 나재원


우리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매료된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란, 인물과 상황이 갈등과 변화를 겪으며 예상치 못한 전환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관객의 감정을 강하게 흔들어 의미 있는 울림을 남기는 이야기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드라마틱하다는 건, 내가 영웅이 되어서 절체절명한 사건을 해결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내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드라마틱한 순간이다. (감동=감정‘감‘ +움직일‘동‘)


SNS에서 남성분들이 <폭삭 속았수다> 랑 <은중과 상연>이 사건이 없어서 따라가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글을 본 적 있다.

심지어 극 중 은중도 자기 이야기에 사건이 없다고 폄하했다.


히치콕 스타일처럼 테이블 밑에 폭탄이 설치되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떻게 터질 지 모르는 응축된 폭탄을 마음에 품고 있는 아주 무서운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와 <은중과 상연>에 어마어마한 사건은 없을지 몰라도 내 눈에는 모두가 마음을 울리는 드라마틱한 순간들이었다.

<폭삭 속았수다>에서 애순이가 밥상을 엎는 순간, 남자들끼리 밥을 먹던 관식이가 180도 몸을 돌려 애순이랑 밥을 먹는 순간. 등등등 극에 등장하는 모든 순간이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은중과 상연> 역시 야외 화장실을 이용했던 은중이가 화장실이 두 개 딸린 30평대 아파트를 본 순간, 하늘하늘 흩날리는 초록 커든에 매료되어, ‘넌 참 좋겠다’고 메모를 남긴 순간, 상연이에게 손바닥을 맞은 순간, 좋아한다고 고백도 못한 첫사랑이 자살한 사건, 친구를 의심하고, 친구를 잃은 사건 등등 소소하지만 매 순간이 시청자의 마음을 휘몰아치게 만든 순간이었다.



성취지향인과 관계지향인의 드라마 시청법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남자랑 여자가 느끼는 드라마틱한 순간이 약간 다른 것 같다.


여기엔 십 년 전에 동료 남자 작가에게 들은 우스갯 소리에 힌트가 있다고 본다.


그분 왈, 원시시대 때, 남자랑 여자가 새로운 마을(공동체)에 도착하면, 여자는 이 공동체 안에 누가 쌍년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남자는 탈출구가 어디인지를 파악한다는 거다.

즉, 남자들은 전쟁이나 홍수, 폭우,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어디로 도망쳐야(생존해야)하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여자들은 이 안의 관계(깊이)를 보는 거다.


참고로 백화점 데이트 중에 여자는 그 안에 있는 내용물에 집중하지만 남자들은 탈출구부터 확인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금은 남녀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 차이를 성별로 구분하지 말고, 성취지향인과 관계지향인이라고 생각해 보자.

성취지향인들은 드라마를 볼 때 절체절명의 강렬한 사건이 던져지고, 이걸 어떻게 잘 푸는지가 중요한 거고,

관계지향인들은 드라마를 볼 때 이러이러한 관계 안에서 감동과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성취지향인이든, 관계지향인이든 우리의 마음을 휘몰아치게 만들고, 송두리째 매료되게 만든다.

중요한 건 우리의 마음을 휘몰아치게 만드는 건 꼭 절체절명한 사건만이 아니라 절체절명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소한 사건도 포함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절체절명한 사건을 구성하거나, 절체절명의 감정을 구사하는 약간의 작법의 차이만 있다고 본다.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소소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틱한 순간'이다.


한 편의 드라마로 가득 찬 우리의 일상


우리 일상도 마음을 울리는 눈부시고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분명 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한 편의 에세이가 되기도 하고,

그런 순간이 멋진 장편 스토리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겪은 드라마틱한 순간을 잘 기억해두길 바란다.

그게 모여 언젠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드라마틱한 일상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된 작법 이야기도 꼭 적어보겠다.)





'좋아요'와 '댓글', '구독'은 글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전 02화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