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비염은 차라리 낫지, 50 앞두고 민감해지는 것들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3월엔 '내 안의 알레르기'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
이게 다 야속한 봄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벚꽃 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한 친구 한 명은 벌써 고민이 늘어졌다. 약을 먹어도 소용없다며, 코 밑이 헐지 않는 티슈를 아냐고 물었다. 다들 웃는데, 나만 웃지 못했다.
나는 입고 갈 옷이 없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화사한 트위드 재킷이라도 하나 사 입고 싶은데, 요즘 옷들은 왜 이리 작게 나오는지. 그게 아니라면, 봄이 되면서 벚꽃만 만개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내 몸뚱이도 봄기운에 슬그머니 부풀어 올랐다.
"얘, 어쩜 (살이) 더 쪘니. 집에서 실내 자전거라도 타보지."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동네 언니가 실실 웃으며 하는 한 마디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를 아껴서 해주는 충고는 언제든 고맙다. 하지만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면 웃지는 말지. 자가면역질환으로 약을 여러 개 먹고 있는 나로서는 몇 년 째 살이 야금야금 찌는 걸 막기가 힘들었다. 대놓고 부작용이 체중증가인 약도 있다. 실내 자전거는 발목 수술과 무릎 이슈로 탈 수가 없다.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웃는 게 괜히 분했다.
억울한 걸 못참겠는 중년의 시간
사실 핑계다. 누가 뭐라 해도 호미와 가래를 들고 다 막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살을 좀 빼야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여러 번 운동을 시작했다. 문제는 누가 "운동 좀 해"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다이어트를 하다가도 마음이 삐딱해진다. 피로가 올라오고, 무릎이 약해지고, 밖에 미세먼지가 심한 것 같다. 오늘은 몸을 쉬게 해야 한다는 의학적 확신 같은 게 생긴다.
중년이 되니 알레르기비염보다 더 민감해지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가 나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평가하는 게 유독 불편하다. 오해하거나, 폄하하면 발끈한다. 거기다 억울한 건 죽어도 못 참는다. 평소엔 순한 양인데, 그럴 땐 엄청 따지고 든다. 젊을 때는 코웃음치고 그냥 넘겼던 말들인데 이제는 면역체계가 과잉 반응을 일으킨다. 뭐 그렇게까지 화낼 일도 아닌데 세상을 향해 가드를 올린다. 나는 왜 이러는 걸까.
중년은 얼굴에서부터 자신이 살아온 삶이 드러나는 나이다. 그래서 평가에 예민해진다. 일반화 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그렇다. 젊을 때는 나를 크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 오해받아도 그냥 지나갔다. 환한 내 얼굴과 가벼운 발걸음, 열정 넘치는 목소리 그 자체로 나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 하지만 이젠 지난 세월 동안 늙고 변한 외모에 괜히 설명이 따라붙는다. "내가 원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중년은 할 말이 많다.
외모뿐이 아니다. 주변에 챙겨야 할 대소사, 가족, 회사 관련 일들로 중년은 바쁘다. 그래서 사정이 많다. "요즘 어머니 병원 때문에...", "애가 아파서 병원 다녀오느라...". 중년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무게 때문에 자꾸 어깨가 아픈지도 모른다. 정형외과에 가보라. 어깨가 아픈 사람들은 거의 중년이다. 남편도 나도 둘 다 쌍으로 어깨가 아프다. 하지만 하루하루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럴 때 "못할 거면 그만두라"는 소릴 들어보라.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https://youtu.be/LFRMarPM_BY?si=nw-oeVjIoyooRHaA
호르몬도 한몫 한다. 얼마 전 어느 웹드라마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딸에게 콩국수를 만들어주던 엄마를 봤다. 딸은 소금을 넣어먹겠다는데도 엄마는 기어이 설탕을 푹 떠서 딸 그릇에 넣었다. 딸이 취향이란 게 있다며 구시렁대자 엄마는 "먹지 마!" 소리 지르며 애써 만든 콩국수를 싱크대로 가져가버렸다.
"더운데 땀 뻘뻘 흘리면서 만들었더니, 한번 부르면 나오지도 않고. 먹어라, 먹어라, 내가 니 밥해대는 식모야?...어떻게 그렇게 지밖에 몰라. 내 입에 들어가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다들 들어봤을 법한 엄마의 잔소리다. 나도 음식에 싫어하는 거 꼭 넣어 주는 엄마 덕분에 예전에 볼멘소리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장사하고 집에 돌아온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음식을 만들어주는지. 물 마실 힘도 없는 팔로 국수를 삶고 그 위에 색색의 고명을 왜 얹어 내는지. 정말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내가 중년이 되고야 알았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기어이 자식을 챙기는 엄마 마음을.
안면 거상도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
중년은 늘어난 나이만큼 이제는 살아온 삶을 인정받고 싶은 나이다. 겉으로는 점잖게 행동하고 티내지 않아도, 적어도 잘못 살아왔다고 부정당하고 싶지는 않다. 가끔은 보상심리가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인정해줘야 하는 건 타인이 아니다. 내 늙음은 감추고 싶고, 내 속내는 알아봐달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냔 말이다. 이건 지나친 욕심이다.
나이가 들면서 남의 눈을 의식하며 나를 꼿꼿하게 내세우고 싶은 욕망은 올라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니 중년은 나에게 친절한 설명이 더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잘 해 왔다고, 잘 살아왔다고, 다독이면 되는 거다. 중년은 다름아닌 나를 응원할 시기인 것이다.
스스로만 알아주는 인생. 사실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고생했다고 인정해주면 굳이 남에게 말이 많아질 필요가 없다. 스스로의 모난 점을 잘 알고 있어서 그렇게 자꾸 구구절절 설명이 붙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본다. 얼마 전, 대학가의 응원단들이 데이식스 노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에 날아갈 듯 팔을 돌리는 모습에 가슴이 뛰던 기억이 난다. 운전하며 그 노래라도 틀어놓고 이 봄을 즐겨볼까.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속마음이 있다. 좋게 말하면 오지랖 넓고, 나쁘게 말하면 간섭하기 좋아하고, 훈수두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앞에서 나는 자주 브레이크가 걸린다. 제발 노땡큐다. 지나가면서 꼭 말 한 마디 얹어서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는 하지 말자. 중년은 인내심을 젊을 때 다 써서 남은 게 별로 없다. 게다가 봄이라는 변수를 만나 언제 어디서 내 화가 더 활짝 미친 개나리처럼 피어날지도 모른다.
요즘 거상에 관심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끌어올렸다. 괜히 내 얼굴도 쭉쭉 당겨본다. 저들처럼 예뻐지고 싶다. 하지만 거상이 내 자존감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할 것 같다. 중년의 내 얼굴은 내가 살아온 삶의 무게이다. 내 얼굴값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데 그게 쉽게 올라가겠는가.
그렇게 보면 아파서 찐 살도 마냥 사랑스럽다. 열심히 고민하며 살아온 훈장쯤으로 여겨보련다. 가볍게 입고 운동이나 좀 더 해 볼까. 누가 뭐래든, 밖에 미세먼지가 심하든 말이다. 살은 빼야하는 게 맞다. 억울해하지 말자.
이번 달에는 '중년의 알레르기'라는 소재로
내 안에 나를 민감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써보았어요~ 오늘 오마이뉴스에 기사 올라갔어요.
추천과 댓글 많이 부탁드립니당~
주말, 날씨도 따수운데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