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던 내가 23년째 하는 일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3월엔 '내 안의 알레르기'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
아직도 기억이 또렸하다. 몇 해 전,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던 아이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손잡이를 잡은 채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선생님,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나는 잠시 아이의 눈을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선생님은 늘 여기 있을게."
아이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나섰다. 몇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러다 복도 끝에서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힌 뒤에도 그 표정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질문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이 사람도 사라지지 않을까'에 대한 의심이 '이 사람은 사라지지 않겠지' 안심하는 변하는 순간으로 들렸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23년째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아동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 이곳에 문을 열던 날, 빨간 전망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며 역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잘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한 젊은 원장이었다. 이곳에선 여름이면 광장 분수대에 물줄기가 솟고, 겨울이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였다. 스물세 번의 여름과 겨울이 흐르는 동안 나는 흰머리가 늘었고, 이제는 다초점 안경이 없으면 작은 글씨가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상담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아동별 상담 파일이 빼곡하다. 빛바랜 봉투부터 새 파일까지,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의 지층이다.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 의자 끝에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던 아이, 어느 날 처음으로 마음을 꺼내 보이던 아이.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학교로 돌아가고, 친구들 사이로 돌아가고, 자기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수많은 아이들이 머물던 시간만큼은 이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낡아버린 인형의 귀, 책장 모서리의 작은 스티커, 바닥에 남은 미세한 긁힌 자국까지 모두 지나간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이 긴 시간을 나는 어떻게 버텨온 걸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참 신기하다.
젊은 시절의 나는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낯선 길로 나서는 것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선택 앞에서 잠깐씩 멈춰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설렘보다 여러 가능성을 먼저 따져 보게 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마음이 먼저 긴장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새로움이라는 공기가 내 마음에 닿을 때면, 나는 재채기를 하듯 움츠러든다. 이런 걸 심리적 알레르기라고 하나.
처음에는 이런 내 모습이 못내 답답했다. 왜 예전처럼 쉽게 움직이지 못할까, 혹시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을 오래 지켜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 아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 초기에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다음 주에도 여기 있어요?"
"선생님 안 바뀌죠?"
그 질문은 안전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여러 번 확인한 뒤에야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연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이다. 같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는 존재. 그 변하지 않음이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약속이 된다.
몇 년 전, 십 년 넘게 발달치료를 받던 한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상담을 종결했다. 긴 시간을 함께했던 아이는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예쁜 숙녀가 되었다. 그 아이에게서 지금도 가끔 톡이 온다. 문장은 늘 짧지만 그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숨어 있는지 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무 이유 없이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엄마가 계속 뭐라해요. 화나요."짧은 하소연을 남기기도 한다.
"선생님 생신 축하해요." 그 어떤 축하메시지보다도 고마운 톡이 오기도 한다.
치료는 끝났고 아이는 성인이 되었지만, 그 아이에게 나는 여전히 '여기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어딘가, 아무 일 없어도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사람. 아마 그 아이는 믿고 있겠지. 내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니면 확인하고 싶었거나.
세상은 더 빠르게, 더 새롭게 변하라고 말한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변화는 분명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모두가 앞으로만 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새로운 길을 만들 때, 누군가는 자리를 지킨다. 그래야 돌아갈 곳이 생긴다. 모두가 떠날 때, 누군가는 북극성처럼 제자리를 지킨다. 길을 잃은 누군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면 어제와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 반복 속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고, 나는 그 성장을 조용히 지켜본다.
가끔씩 그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선생님,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나는 그때와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응, 선생님 여기 있을게."
돌아올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오늘도 상담실 문을 열어 둔 채, 다음 아이를 기다린다.
group 요망진 중년https://omn.kr/group/2026_midlife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