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대에 들이닥친 천식...엄마가 남겨준 유산이 하나 더 늘었네요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3월엔 '내 안의 알레르기'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
"자 여러분, 우리의 성수기 봄이 다가왔습니다. 2026년, 이번 시즌 목표는 1만 리터입니다. 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준비됐습니다! 올해는 미세먼지가 일찍 온다고 하니 더 많은 생산량이 기대됩니다!"
매년 봄이면 나는 콧물 공장 사장이 된다. 사장이 압력을 넣은 것도 아닌데, 공장 직원들은 스스로 '24시간 풀가동' 현수막을 걸고 출입문에는 '휴무 없음' 푯말까지 붙여 놓는다. 생산량은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하루 콧물 1리터도 가능하다.
바로 어젯밤에도 티슈 한 통이 콧물에 젖어 순삭됐다. 사람 몸의 60~70%는 수분이라고 하는데, 내 몸의 70%는 '콧물'일지도 모른다. 이게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금값 시대에.
하지만 나는 황금 알이 아닌 황금 콧물을 찍어내는 공장 사장이 되었다.
풀어도 풀어도 계속 생산되는 이 콧물의 생산력을 사업으로 활용한다면 어떨까. 이 정도 팀워크를 자랑하는 직원들과 함께라면 말이다. 어쩌면 나는 깐부치킨 4자 회동 주역의 한 명이 되어 주식시장의 라이징 스타가 될지도 모르겠다.
비염도 억울한데 천식까지
"감기 걸리셨나봐요?"
춘삼월이 되면 꼭 듣는 말이다. 심지어 같은 집에서 자고 일어난 남편도 오늘 아침에 그랬다. 감기 걸렸냐고. 매년 정보 업데이트가 안 되니 이래서 권태기가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소리로 한 마디 한다. 당신 와이프는 알레르기 비염이거든요.
서른 즈음인 걸로 기억한다. 어떤 이는 이별을 노래하고, 어떤 이는 잔치가 끝났다고 말하던 그 서른 즈음, 나는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되었다. 봄이 오는 소리를 '코'로 느끼게 되었다. 꽃가루가 날리는 봄날에 한강으로 소풍을 나갔다가 난리가 났다. 눈은 빨간 토끼 눈이 되었고, 코와 눈이 하나로 연결된 상태로 병원을 찾은 끝에 '알레르기 비염'이라는 불치병 선고를 받았다.
알레르기 비염 이십 년 차.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시작부터 달랐다. 재채기가 연속 열 번 이상 릴레이를 했고, 기침 역시 한번 시작하면 눈이 튀어나올 때까지 끝장을 봤다. 누우면 터지는 기침 때문에 앉아서 잠을 잤다. 이건 분명 독감이다. 요즘 독감 A형, B형이 돌아가며 유행이라던데 이 정도면 나는 AB형 독감일 것 같았다. 보통 3월 중순에 시작되던 병원행이 올해는 2월 말로 앞당겨졌다.
"올해는 빨리 오셨네요?"
"알레르기 비염인지 감기인지 모르겠어요. 증상이 복합적으로 심해요."
나와 알레르기 비염과 삼총사인 의사는 내시경으로 코와 입을 들여다보더니 기관지 기능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처음 해보는 검사였다. 입에 호스를 물고 숨을 참았다가 길게 뱉는, 제법 난도 있는 검사였다. 한참 후 의사의 호출에 들어간 진료실에는 겅중 뛰는 주식 그래프처럼 선이 들쭉날쭉한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아. 결국... 알레르기 천식이네요."
알레르기 천식? 그 천식? 머릿속에서 필름이 되감기듯 촤르르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이 소환되었다. 병원 냄새, 기침 소리, 그리고 엄마.
칠순 잔치를 할 때까지 YMCA 주부 수영선수팀에서 반장까지 하셨던 엄마는 칠십 대 중반부터 수영장 대신 병원으로 주거래처를 옮겼다. 낙상으로 인한 척추 골절, 두 번의 수술 등으로 입원과 퇴원이 반복되었다.
그즈음부터 엄마는 진짜 할머니가 되었고, '천식'이라는 이름표는 입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꼬리표가 되었다. 이제는 허리보다 폐가 문제였고, 감기만 걸려도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의 병력에서 천식과 흡입기 사용은 항상 '보고 사항 1순위'였다.
"환자분 앓고 계신 지병 알려주세요."
"당뇨와 천식을 앓고 계세요."
"아. 천식이요? 흡입기 사용하시나요?"
"네. 사용하고 계세요."
응급실에서 입원 수속을 마치면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엄마 집에 들러 약과 흡입기를 챙겨 간호사실에 전달해야 했다. 정신이 들어 간신히 침대에 기대 앉은 엄마는 늘 흡입기로 거친 숨을 들이마셨다. 병원이든 집이든, 엄마의 거친 숨과 흡입기. 그 모습이 지금의 나와 오버랩되었다.
하필 최근 본 드라마 <판사 이한영>에서 주인공 지성의 엄마가 쓰러졌는데 눈앞에 있던 흡입기를 잡지 못하고 죽는 장면이 나왔다. 그 흡입기. 그 천식이라니.
솔직히 억울했다. 알레르기 비염도 거의 이십년 달고 살았다.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나는 콧물 공장 사장이라고 웃어 넘기지만, 그 불편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그런데 올해는 '천식'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붙었고, 거기에 공포의 흡입기까지 따라왔다.
봄이 되면 생각이 나겠지요
흡입기를 손에 쥐고 있으니 몸이 갑자기 작아진 느낌이 들었다. 나도 이제 병원에 가면 천식부터 말해야 하는 사람이 된 건가 싶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투가 따지는 쪽으로 흘렀다.
"오늘 병원갔는데 알레르기 천식이래. 나도 흡입기 처방 받았어. 엄마처럼!"
"그게 천식이 100% 유전이라고 하더니. 너의 외할아버지도 천식으로 돌아가셨잖아. 엄마도 천식이고 이모들도 천식이고. 너희들은 좀 괜찮으려나 했는데 우리 맏딸이 결국 엄마 병을 물려받았네."
마침 엄마 집에 김치 배달을 와 있던 찐 자매님이 전화를 뺏더니 한마디를 얹는다.
"언니는 노 유전이라고 놀렸는데 웬일이야. 천식이 많이 심하대?"
우리 아이들 얼굴이 지나간다. 건물을 못 물려줄지언정 콧물 공장을 물려주게 생겼다. 꽃구경 대신 천식 열차에 같이 탑승해야 할지도 모른다.
얼마전 올해 구순이 된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급하게 연습한 티가 나는 자음과 모음이었다.
"따 ㄹ 모 ㅁ 갠차ㄴ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문자를 번역하면 "딸 몸 괜찮아?"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에게 남겨준 것은 많다. 이목구비는 아빠를 닮았지만,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격, 정리를 잘하는 손버릇, 급할 때 돌아갈 줄 아는 느긋함, 그리고 이제는 천식.
봄이 오면 몸이 먼저 기억할 일이 생겼다.
재채기가 나오고, 기침이 이어지고, 숨이 가빠질 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엄마도 이렇게 숨을 쉬었겠구나. 엄마도 이렇게 봄을 맞이했겠구나.
언젠가 엄마가 떠난 뒤에도 봄이 오면 나는 기침을 하겠지.
몸이 먼저 기억하고 마음이 그 뒤를 따라올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 천식이 조금은 덜 억울하다.
엄마, 근데 이 다음은 뭐야?
group 요망진 중년https://omn.kr/group/2026_midlife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안녕하셨죠? 안녕하신거죠!
저는 늘.. 그렇듯 자알~~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3월에는 봄을 맞이하여, 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알레르기>에 대해서 연재를 했답니다.
여러분도 인생의 알레르기, 하나쯤은 보유하고 계시죠?
이제 막 시작된 26년 봄에는 그 알레르기가 사랑스러운 투정으로 존재감을 뽐내길 바랄께요.
저처럼 콧물공장 가동도 막상 생각해보니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거든요.
그래도 감기는 계속 유행이라니, 환절기 건강하세요.
나가야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드신다면~~~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5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