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경 앞두고 호르몬 변화에 날뛰는 마음과 몸... 완경일기를 쓰다
"나, 큰일 났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두 달 만에 듣는 친구 목소리는 도서관 서가에 꽂힌 낡은 사전처럼 무거웠다. 평소라면 '밥 먹었어?'부터 묻던 가벼운 시집 같은 친구였다.
"왜, 무슨 일이야?"
"의사가 나 이제 끝났대."
"뭐가? 뭐가 끝나?"
0.1초 사이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설마? 아니겠지.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에게 너무 무심했음을 자책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호르몬 검사받았는데, 나 이제 완경이래."
일단 '끝났다'라는 말이 불치병은 아니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완경'이라는 말의 무게 역시 절대 가볍지 않았다. 여성으로서 짊어져 온 피비린내 나는 숙명을 성실히 완주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완경 시기는 50세 전후. 그러니 올해 쉰셋인 친구는 평균보다 조금 더 오래 숙명을 완주한 셈이다.
내 몸에 대한 가장 극진한 예우, 완경 일기
나 역시 요즘 두 명의 신과 밀당 중이다. 그리스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이름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두 여성 호르몬이 주인공이다. 내 육체와 정신의 꼭대기에 올라앉아 어찌나 요망한 짓을 하는지, 최근에는 내 입맛과 감정까지 제멋대로 들었다 놨다 한다. 어제는 달달한 케이크가 미치게 당기더니, 오늘은 기름진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속삭인다. 입맛이 널을 뛰는 꼴이, 마치 단팥죽 새알심이 끓어오르는 모양새다.
나 역시 몇 달 전, 갑자기 생리가 멈췄던 적이 있다. 예정일이 지났는데 열흘이 지나고 이십 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로 산 기모 흰 바지는 꺼내 입지도 못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칠 손님에 대한 공포와 예우가 뒤섞인 기다림이었다. 그러다가 SNS에서, 오래전 즐겨 부르던 노래 이범학의 '이별 아닌 이별' 영상이 문득 흘러나왔다.
이별이 아닌 이별을 맞으며 헤어지지만 / 내 사랑 굿바이 굿바이...
가사가 들리는 순간, 뜬금없이 설움이 복받쳤다.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생리와의 준비 없는 이별에 완전히 감정 이입이 된 것이다. 지난 40년간 지겹고도 애틋했던 '생리의 추억'들이 뭉글뭉글 떠올랐다.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마지막 피 한 방울에 '굿 굿바이'라는 인사는 하고 싶었다.
다행히 두 달쯤 지나자 생리 주기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일기장을 펼쳤다. 날짜를 적고, 그날의 몸 상태와 기분을 함께 기록하기로 했다. 일종의 완경 일기였다.
사실 나는 기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애 둘을 낳고 키우는 동안 태교 일기는커녕 육아일기도 써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의 성장 기록은 어린이집 담임교사가 써 준 원아 수첩 속에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러니 완경 일기를 쓰겠다는 결심은 생리에 대한 그리고 내 몸에 대한 가장 극진한 예우라고 할 수 있다.
완경 일기를 쓰기로 하자 자연스럽게 처음 생리를 시작했던 날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가을, 초경을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발견한 선홍빛 흔적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 시절 생리대는 신문지나 갱지에 싸여 장롱 깊숙이 숨겨져야 하는 물건이었다. 축하는커녕 부끄러운 신고식을 해야 했다.
그렇게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세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출산을 제외하면 내 몸은 쉼 없이 제 역할을 해주었다. 생리통은 있었지만, 결석할 정도는 아니었고 '너 오늘 그날이야? 라는 말을 들을 만큼 예민하지도 않았다. 가끔 여행을 떠날 때 캐리어에 짐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내 인생의 짐이 된 적은 없었다.
배란기가 부럽다는 중년들의 웃픈 대화
하지만 중년이 되자 몸과 마음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아프다가, 우울하다가, 예민해졌다가 몸과 마음이 너울너울 춤을 췄다. 사람들은 그것을 갱년기라 불렀다. 결국 사달이 났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자율학습을 마친 고3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그저 힘들다는 투정이었는데, 공감은커녕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는 냉소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고요했던 감정이 거칠게 요동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후회가 밀려왔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이유를 알았다.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몸속에서 요동치던 호르몬이 내 감정을 휘저어 놓았던 셈이다. 급히 사과했지만 "어이 없다"는 딸의 반응. 냉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몸도 예외는 아니다. 허리와 엉치가 욱신거리면 나는 안다. 또 그날이 가까워졌다는 걸. 그러면 운동도, 약속도 멈칫하게 만든다. 얼마 전 허리가 아픈 걸 보니 배란기인 것 같다고 했다가 동료에게 뜻밖의 답을 들었다.
"배란기라고 하니 젊어 보이네요. 부럽다. 진짜"
주식이 배로 뛴 것도 아닌데, 배란기가 부러울 일이라니 웃다가도 마음이 짠해졌다. 앞으로 완경 이후의 변화가 나를 얼마나 불편하게 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 친정 엄마에게 물으니 엄마는 쉰여섯에 완경을 맞았다고 했다. 그 무렵 사타구니가 빠질 듯이 아파서 진통제로 며칠 밤낮을 버텼다고 한다. 만일 엄마의 체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면, 나 역시 그 고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닥쳐오지 않은 통증에 무너지는 대신, 긍정적인 미래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호르몬의 농간이 멈춘다면 적어도 감정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엄마가 되지 않을까? 새로 산 흰 바지도 언제든 꺼내 입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초경이 피를 흘리며 살아갈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했다면 앞으로 맞이할 완경은 피를 멈춘 뒤에도 다시 뜨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비장함을 품게 한다. 나는 완경이라는 통과의례가 주는 고통에 굴복하여, 그저 일상을 근근이 버텨내는 삶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완경이 되는 날까지, 호르몬이라는 신이 내게 주는 변덕스러운 파도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 보려 한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개의 난자가 남아 있사옵니다."
가끔은 이렇게 비장하게 외치면서 말이다. 오늘 아침 왼쪽 자궁이 콕콕 쑤셨다. 생리 예정일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내 몸의 시계는 달력보다 정확하다. 요망한 신은 때를 가리지 않고 마지막 존재감을 과시한다.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일기장을 펼친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문장으로 옮긴다. 평생 나와 함께 살아온 내 몸에게 예우를 다하기 위해, 3월 16일의 완경 일기를 쓴다.
*오마이뉴스에서 댓글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5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