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찬사의 시대

유튜브 <요정재형> 이소라편

by 소리글

빨래를 개다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유튜브 <요정재형>에 나온 가수 이소라였다.

짧은 탈색머리에 화사한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정재형과 마주 앉은 이소라는 친구 집에 처음 놀러 온 소녀처럼 들떠 보였다. 쉴 새 없이 웃는 모습은 서정적이면서도 어둡고 깊숙한 인간 내면의 슬픔을 노래하던 이소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밝았다. 그런 그녀가 뜻밖의 고백을 했다. 1년에 한 번 공연 때만 집 밖을 나설 정도로 한동안 두문불출했었단다.


성대를 다친 것이다. 그녀는 집에서만 머무르다 보니 몸무게도 100kg이 나가고 혈압은 190까지 오르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울했던 그녀에게 정재형은 갑자기 술 취해 전화를 걸어, "넌 노래를 해야 돼"라고 툭 말을 던지곤 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OST 녹음을 제안하며 그녀를 집밖으로 끌어낸 것도 정재형이었다.


이소라는 스스로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늘 칭찬만 하는 친구 정재형이 너무 신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재형이 꺼낸 말 한 마디가 소파에서 빨래를 개며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내 마음을 느닷없이 흔들어 놨다.

"우리는 이제 그럴 시대라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칭찬과 찬사를 직접 해 줘야 될 나이가 됐어. 안 그래도 불안하고 안 그래도 힘들잖아."

평소 유튜브나 예능에서 웃기다가도 종종 가슴 찡한 위로의 말을 건네던 정재형이다. 종종 드라마나 영화 OST에서 음악으로 나를 울리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내 마음을 아리게 만든 건 처음이었다. 나는 개고 있던 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가 한 말은 '안 그래도 불안하고 안 그래도 힘든' 나에게도 건네는 인사였다. 하필 좀 전에 남편과 전화로 싸운 뒤라 더 마음이 왈랑거렸는지도 몰랐다.



가족에게 듣고 싶은 말

평소 글을 쓰는 과정은 생각보다 거칠다. 책상 앞인데도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생각은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여기저기 펼쳐져 있고 나는 그걸 매끄럽게 다듬어 읽기 좋게 전시해야 한다. 내 떨어진 당을 올려준 간식 봉지들과 마무리 되지 못한 집안일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함께 널브러져 있다. 완성된 글은 그런 막노동에 가까운 나의 일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걸 직관하는 이는 오로지 가족들이다.

며칠 머리를 쥐어뜯다가 겨우 원고를 넘긴 내가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은 "잘 하고 있다" 한 마디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냉철한 평가나, 더 나은 방향에 대한 조언을 남편에게까지 듣고 싶지 않다. 그저 공감 한 마디면 된다. 그런데 남편은 그 쉬운 걸 간과한다. 글 얘기만 나오면 남편은 지금 현재 내 위치에 대해 말한다.


"당신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신춘문예로 가야지."

나도 안다. 어디에 투고를 하고, 공모전을 준비하는지 나도 다 주워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신춘문예를 안 하느냐고? 못하니까 안 하는 거다. 그런데도 남편은 내게 소설로 등단하라고 성화다. 나는 얼떨결에 뭔가 길을 잘못 들어버린 비련의 여주인공이 됐다.

남편과 전화를 끊고 외출 준비 중인 큰딸에게 가서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딸은 재수 끝에 작년 봄, 대학에 입학했다. 수리 논술로 대학에 합격한 딸은 아르바이트를 너무 하고 싶었으나 구직사이트는 온통 '경력직 우대'라는 글자만 가득했다. 신참이 갈 곳은 많지 않았지만 체력이 탈탈 털리는 최저시급의 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어느 학원에 채용이 됐다. 조교도 아니고, 무려 고등부 전담 수학강사가 됐다. 학생은 둘 뿐이었지만.

시급이 문제였다. 보통 과외를 하면 평균 시급 3만 원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경험 없는 대학교 1학년이라 시급으로 만 오천 원을 준다고 했단다. 딸은 충분히 만족해했다. 돈보다는 충분한 경력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 장기판에서는 훈수 두는 사람들이 더 시끄러운 법이다. 아르바이트판도 다르지 않았다.

"야, 말이 돼? 만 오천 원? 지금 너 힘없는 대학생이라고 이용당하는 거야! 과외 알아봐."

그렇지만 딸은 학생 둘 다 정말 착하고 열심히 한다며 1년째 잘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 성적이 오른 덕인지, 원장으로부터 꼭 올해도 잘 부탁한다고 전화가 온다. 시급은 매번 잔소리 하는 아빠, 엄마, 그리고 주변 이모들 등쌀에 최근에 5천 원 더 올려서 이만 원을 받고 있다.

"나도 그때 내 자부심을 갖고 일을 시작한 거야."

내가 남편과 다를 게 뭔가. 똑같았다. '빨리 신춘문예로 가라'던 남편도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돈도 못 벌고 고생하는 것보다 뭔가 크게 되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화 제목도 아니고, 그때 내가 딸에게 하는 충고는 맞는 말이고, 지금 남편이 내게 하는 충고는 틀린 말인가. 나는 차마 말로는 못하고, 카톡으로 딸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중요한 건 네 능력으로 돈을 번다는 거였는데. 엄마가 다시는 네가 버는 돈의 가치를 내 맘대로 판단하지 않으마. 넌 충분히 잘 하고 있다."



당신 참 잘 하고 있다는 한 마디

딸에게는 시급을 많이 받는 것보다 내가 인정 받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중요했다. 내가 유명 공모전에 입상을 하고 출간을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인정받고 싶었던 것처럼. 남편은 퇴근 후, 아까는 미안했다며 사실은 지금 당신 참 잘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반성한 밤이었다.

우리는 평가에는 익숙하지만, 진심 어린 찬사에는 서툰 시대에 살고 있다. 정재형이 이소라에게 한 말은 나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안 그래도 불안하고 안 그래도 힘든'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서로를 고쳐주느라 바쁘지, 감탄해줄 여유가 점점 사라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답보다, 찬사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비판으로 성장할 수는 있어도, 살아갈 힘은 찬사로 얻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가 대놓고 낯간지럽도록 건네는 친절과 찬사는, 숨이 턱까지 찼을 때 등을 한 번 쓸어주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늘 더 나은 길을 알려주려 애쓴다. 조금 더 잘 되라고, 조금 덜 힘들라고. 그런데 가끔은 그보다 먼저 "너,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는 말을 건네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불안하고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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