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의 수형자인가, 완벽한 구원자인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

by 소리글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정신없던 일상이 좀 정리되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왜 나는 요즘 통 글을 쓰지 않는지. 책을 읽지도 않고 청소도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청소기가 마침 고장이 났다는 건 핑계고 그냥 일상이 무료했다. 하루하루가 헛헛했다. 샤워를 하다 마음먹고 화장실의 묵은 때를 박박 벗겨냈다. 그리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틀었다. 마침 낯선 청소부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마음이 동했다. 그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받아 적어 보았다. 무성영화처럼 대사도 거의 없는 그의 일상은 모난 돌이 되어 무료한 나의 일상에 물수제비를 띄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 그동안 꼭꼭 눌러두었던 내 감정을 열고 펑펑 울고 말았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어스름한 새벽, 골목의 싸리 빗질 소리에 남자가 혼자 눈을 뜬다. 깔끔히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가위로 콧수염을 정리한 후 면도를 하고 깨끗이 씻는다. 작은 화분들에 물을 준다. 등에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이라 쓰인 파란색 점프수트를 입는 남자. 열쇠 꾸러미를 차근차근 챙긴다. 목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문을 열고 나오다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습관처럼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챙겨들고 차에 올라타서 카세트테이프를 꽂는다. 경쾌하게 골목을 빼져나가는 작은 차 위로 ‘더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 흐른다. 달리는 차 앞으로 스카이트리(Skytree)가 보이고 도쿄의 풍경이 펼쳐진다. 하늘도 푸르고 공기도 푸르다.


남자의 이름은 히라야마. 도쿄의 공중화장실들을 깨끗이 청소한다. 누가 보든 말든 열심히 보이지 않는 세면대 아래 구석구석까지 거울을 비추어가며 닦는다. 점심은 늘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먹는다. 가지고 온 올림푸스 사진기로 하늘에 맞닿은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는다. 일이 끝나면 공중목욕탕에 가서 깨끗이 몸을 씻어낸다. 비가 내리면 우비를 입고 단골집에 들러 레몬소주와 밥을 먹는다. 밤이 되면 작은 등 아래 누워 책을 읽다 잠이 든다. 가끔 일상을 깨는 작은 변화라면, 나무 아래 작은 새싹을 발견해 흙과 함께 퍼와 집에 돌아와 다시 심거나, 엄마한테 혼나고 화장실에 숨은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다든지, 함께 일하는 철없는 젊은이인 다카시와 여자친구를 차에 태워주는 정도다. 남자는 말이 없다. 살짝 미소 짓는 정도가 표정의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딸인 니코가 집을 나왔다며 찾아온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에서 언뜻 보이는 그의 과거는 그저 짐작만 갈 뿐인데...

1. 아날로그적 가치

“히라야마 씨, 다 팔아버려요! 더 있으면 다 살게요.

카세트가 요새 유행이거든요.

특히 70년대랑 80년대 거 있으시면요.”


카세트테이프가 돈이 될 거라며 팔라는 다카시.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돈이 없다며, 하나만이라도 팔자고 한다. “젠장!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문제인데. 돈 없으면 사랑도 못 한다니 뭔 놈의 세상이 이래요? 세상이 대체 어떻게 되려고!” 다카시의 꼬임에도 차라리 그냥 돈을 쥐어주는 남자. 다시 차를 몬다. 밤이슬을 가득 머금은 도쿄. 롤링스톤즈의 “Walking through the sleepy city.”가 흐른다. 남자는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운다. 지갑에는 낡은 영수증들뿐. 흰 수건을 목에 두른 화장실청소부와 번쩍이는 도쿄의 밤거리가 꽤 잘 어울리는 건 왜일까.

사춘기 시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오빠가 모아둔 LP와 카세트테이프를 몰래 들으며 컸다. 베란다 한쪽에 쌓아둔 음악 잡지도 나의 정신적 성장에 한 몫을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엿보기 위해 나는 달칵 소리와 함께 테이프를 꺼내고 볼펜을 집어넣어 돌돌 말아 두 버튼을 함께 눌러 녹음을 해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모인 테이프를 만들곤 했다. 그 테이프들은 늘어지도록 듣다보면 결국 망가졌지만, 카세트테이프, LP, 잡지가 상징하는 그 아날로그적이고 물리적인 형체는 여전히 지금도 내 정신세계의 근간이다.


스포티파이와 클라우드에 저장된 디지털 음악을 듣고 돈이면 문제가 해결되는 현대 사회에서 낡은 영수증과 카세트테이프로 대표되는 히라야마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흔치 않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영화속에는 탈색머리에 무선 이어폰을 이용하는 세대들이 카세트테이프의 음악을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이나 흰머리가 희끗한 히라야마에게 기습뽀뽀를 하고 도망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들에게 아날로그는 매력이다. 디지털에 지친 세대들이 아날로그라는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요즘 세대들이 1990년대 아이템을 비싼 돈을 주고 사 모으고 그 시절 감성을 따라하자 앞 다투어 그 감성을 돈을 주고 사는 가게들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히라야마는 희귀하다고 이 아날로그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모든 걸 뒤로하고 집에 돌아와 오래된 컵라면의 냄새를 맡아보고 물을 올리는 남자가 더더욱 궁금해진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 변함없는 아날로그적인 가치의 수호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조카 니코가 집을 나와 삼촌을 찾아왔다. 이 상황이 좀 낯설지만 둘은 함께 화장실 청소를 하고, 즐겁게 밥도 먹으며 서로에게 따뜻한 시간을 가진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니코가 묻는다.


- 엄마 말이 삼촌은 우리랑 다른 세상에 산대.

- 그럴 지도 모르지.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뤄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내가 사는 세상과 니코 엄마가 사는 세상은 많이 달라.

- 나는? 난 어느 쪽 세상에 사는데?

- ...

- 이강 따라가면 바다야? - 응, 바다지.

- 갈까? - 다음에.

- 다음이 언젠데. - 다음은 다음이지.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을 반복하며 둘은 웃는다. 니코가 사는 세상이 어디인지 규정하지 않는 히라야마다. 세상은 너무나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어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기도 하지만, 어쩌면 말로 규정하는 순간 세상은 그 본질을 잃을 수도 있다. 본인이 사는 세상을 굳이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지만, 사실 그에게는 다음(미래)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돈도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그저 수형자처럼 살아낼 뿐이다. 푸른 옷을 입은 수형자. 히라야마를 보면 과거를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늙고 성실한 수형자의 이미지가 자꾸 떠오른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슬퍼 보이지 않는다. 늘 미소를 머금은 채다.


조카딸 니코를 찾으러 엄마인 그의 여동생이 찾아왔을 때 그는 딱 한 번 무너진다. 여동생이 꽤 고급 자동차와 기사를 대동하고 온 걸로 미루어보아 이 남자의 과거는 몹시 부유했을 것 같다.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보자고 하는 여동생의 말에 고개를 젓지만 막상 헤어지려하니 꽉 껴안아보는 남자. 여동생은 떠나고. 남자는 운다. 서럽게 운다. 그는 어떤 이유로건 떠나온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 과거에 미안해하며 그 어떤 가치를 잊지 않고 붙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과거를 떠나온 아픈 죗값을 치르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그 아날로그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2. 꿈의 의미


“왜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걸까요?”


히라야마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단골 술집 여사장이 있다. 기타와 함께 흐르는 그녀의 노래. “내가 도착한 곳은 뉴올리언스에 있는 아침 햇살의 집이란 이름의 유곽이었지. 사랑했던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네. 그때였지 내가 고향을 떠난 건. 기차를 타고 또 갈아타고...” 노랫말 속에 히라야마의 과거가 언뜻 보이는 것만 같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온 남자는 오늘도 세면대를 닦고 비데의 물줄기를 점검하고 거울을 윤이 나도록 닦는다. 휴지 끝을 삼각형으로 접고. 구석에 끼인 휴지를 빼서 봉지에 담는다. 늘 그렇듯 공원에 앉아 카메라로 나무를 찍고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주변에도 혼자 앉아 식사를 하거나 고양이를 쓰다듬는 사람들. 하지만 히라야마 씨를 쳐다보는 눈은 모두 경계의 눈빛이다.

같은 단골집에서 같은 음식과 같은 얼음물을 먹고, 책을 읽고 잠드는 하루. 사실 지루하도록 같은 그의 하루는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나의 하루보다 정갈해 보인다. 청소부 옷을 입은 그는 그 누구보다 더 확실한 사람인데 사람들은 왜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걸까. 그에게서 더러움이라곤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꿈도 늘 정갈한 흑백으로 꾼다.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누워 잠시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를 읽다가 잠이 들면 낮에 잠시 엄마한테 혼나고 화장실 안에서 울던 아이 손을 잡고 나오던 손이 꿈에 나온다. 마침 나타난 엄마가 더러운 손을 잡았다는 듯이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닦았었지. 꿈은 그에게 그날 하루의 어느 귀퉁이 조각이면서도 그 하루의 상흔이다.

그가 가장 많이 꾸는 꿈은 늘 점심을 함께 하는 커다랗게 자라난 나무다. 코모레비라는 일본말을 처음 알았는데, 이렇게 무성한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그림자를 뜻하는 말이다. 히라야마는 매일 코모레비를 사진으로 남긴다. 휴일이면 사진관에 들러 현상한 후 사진들을 틴케이스에 넣어 날짜별로 테이프를 붙여 옷장 안에 보관한다.

후에 니코가 물었듯 그 나무는 히라야마의 친구와 같은 존재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끝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햇살 같은 순간들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 버텨왔나 보다. 그래서 그 나무는 시리도록 푸르고 정직하게 살고 있는 히라야마 그 자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왜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걸까요?” 그의 꿈에 나타나는 나무는 술집 주인의 이 물음에 대한 무의식의 답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3. 그림자의 의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한 감정을 잘 묘사해요.

덕분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니깐.”


히라야마는 헌책방을 자주 들린다. 니코가 가지고 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을 집은 날, 책방 주인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한 감정을 잘 묘사해요. 덕분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니깐.” 하며 웃는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없어 검색을 통해 찾아본 이 책의 내용은 다소 끔찍했다. 집에만 갇혀 엄마에게 학대당하던 빅터는 어느 날 엄마가 사온 자라에게 정을 주고 보살피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거북이는 식용이었고, 솥에 넣고 끓이는 모습을 본 주인공은 어머니를 살해한다. 실질적으로 다가온 위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공포라면 불안은 막연하게 다가오는 감정일수도, 혹은 공포로 인해 촉발되는 결과물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불안하다. 니코도 자신이 빅터와 같은 삶을 살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다카시도 돈이 없어 불안하며, 히라야마도 꿈에서 늘 삶의 상처를 안고 산다.


“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


책방 건너편 술집 여사장이 가게를 오픈하는 모습이 보이고 한 남자가 찾아왔다. 히라야마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남녀를 따라 들어가려다 둘이 껴안고 있는 걸 발견한다. 황급히 나와 심란한 마음에 담배와 맥주를 산 그는 강가에서 오랜만에 담배를 피워보지만 기침만 난다. 좀 전에 본 그 남자가 다가와 담배를 빌린다. 능숙하게 필 것 같았는데 역시 기침을 하는 남자. 자신이 그 여사장의 전남편이라며 항암치료에도 전이가 되었다며 여자를 잘 부탁한다고 한다. 그런 사이가 아니라며 한사코 부정하는 히라야마에게 남자가 묻는다. “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 해답을 알지도 못한 채 인생이 끝날 것 같다는 남자에게 히라야마는, “해 볼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용기 내어 남자의 손을 잡고 이끈다. 풀밭으로 가서 둘은 그림자를 겹쳐보는데...



- 안 어두워지면 이상하죠.

- 좀 억지 같은데...

-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 말이 안 되죠.

- 그림자밟기 하실래요? 제가 술래 할게요. 준비됐어요? 갑니다. 도망가요!


야밤에 그림자밟기를 하며 웃는 두 남자. 움직이는 그림자는 삶의 증거이자 삶의 궤적이다. 죽음을 앞둔 남자는 그림자가 겹쳐져도 어두워지지 않을 거라고 믿지만 히라야마는 분명 변할 거라고 한다. 뛰어다니며 그림자를 밟자고 한다. 이대로 살 수는 없는 거냐며 변하지 않는 나무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하던 히라야마는 이제 사람이 겹쳐진 인생은 달라진다고 역설한다. 낯모르는 이의 삶을 구원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께 하는 삶은 농도가 짙어지고 희망도 생길지 모른다. 그날 밤 꿈에 물에 비친 그림자를 떠올리는 남자. 그 그림자는 나무와 겹쳐진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말이 없던 히라야마. 다카시의 조잘대는 말에도, 단골 밥집 주인의 말에도 잘 대답하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 하지 않던 그가 어느 순간, 화장실에 누군가 끼워놓은 빙고 게임 종이를 발견하고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와 빙고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현재와 혹은 미래와 스스로 단절을 해버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걸음 더 나에게 다가온 히라야마, 그는 푸른 옷을 입은 수형자인 걸까 아니면 어떤 이유로든 하루하루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그림자를 겹치며 다가온 구원자인 걸까. 나 또한 하루하루를 성실히 지겹도록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싶어졌다.

싸리 빗질소리와 함께 또 하루가 밝았다.

그는 오늘도 웃으며 운전을 시작한다. 점차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계속 운전한다. 이 남자가 가진 고독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그 슬픔이 차오르는 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신뿐 아니라 이 도시의 모든 아픔을 껴안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차에 실은 채 달린다.


그는 도쿄의 청소부이자 관찰자이며 치유자이고, 수도자이자 사색가이다. 스스로가 덮은 과거를 껴안은 일상 속 원칙주의자이며 낯선 이들의 구원자이다. 2분이 넘도록 카메라는 이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눈에서 눈물이 가득차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남자의 표정이 한계에 오면 저물어가는 석양이 가득한 도시가 보인다. 그 붉은 도로를 끝없이 오늘도 내일도 계속 달릴 히라야마의 눈물. 그리고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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