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휘날리는 깊은 겨울밤에
벌거벗고 문 밖을 나가본 사람이 있을까?
갓 출산을 하고 링거줄을
주렁주렁 단 채 말이다.
그건 한 마디로 온 몸의 뼈마디가
칼바람을 쏙쏙 야무지게 흡수하는 느낌이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 주인공이니까 안다!
그날 나는 이 기막힌 막장 호러
투병인생의 2막을 열었다.
큰 딸의 예정일은 1월 25일이었다. 조산 기미가 와서 입원한 건 12월 24일, 온 세상이 홀리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가진통 한 번 없던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중계동에 사는 사촌언니네 놀러갔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길이 막혀 2시간을 앉아있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도 살살 아픈 게 긴가민가했다. 응 이게 진통일까? 생리통 같은데? 급히 병원에 가보니 벌써 10분 간격의 진통이라고 했다. 많이 아프지 않으세요? 네? 그렇다, 나는 좀 미련하다.
34주 5일. 예정일은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 아기가 2.5kg정도라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막상 낳았는데 그보다 작으면 바로 인큐베이터행이었다. 역아라서 어차피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의사는 바로 수술실을 잡을 기세였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다 진통억제제를 맞으며 며칠 더 견뎌보겠다고 했다. 아기를 좀 더 키워보고 싶었다. 100g이라도.
진통억제제가 들어가자 내 심장에는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사흘을 버텼는데 그 사이에 내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친정엄마가 급히 올라왔다. 그런데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가 나에게 인사를 꾸벅하는 게 아닌가. 엄마는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는 나를 한참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 정도로 나는 굴러가게 생겼던 것이다. 나는 그날이 내 인생 가장 못생긴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붓기를 20년이 넘도록 못 뺐다. 그날은 영원히 못생길 역사적인 첫날일 뿐이었다.
의사가 찾아와 이제 진통이 1분 간격인데 아직도 아프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배가 아닌 허리로 진통을 했기에 허리만 죽어라 아프고 배는 나름 괜찮았다. 의사는 이제 수술을 들어가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아기는 준비가 된 거라고.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내 옆에 누워있던 산모가 출산을 하고 돌아왔다. 그녀는 아기의 상태가 좋지 못해 울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만삭을 다 채우고 태어나도 아기가 아플 수 있는데, 행복이는 예정일이 한 달도 넘게 남았다. 수술실에 도착한 내 심장은 진통억제제와 불안감에 버무려진 채 제멋대로 뛰었다.
“어? 부정맥이 있는데요? 이 환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부정맥이 뭔지도 모르는 나에게 또 하나의 불안감이 플러스 됐다.
“그냥 부정맥 잡는 주사약 넣어. 잡힐 거야.”
내 꼬장꼬장함을 뭘로 보고. 내 심장은 약을 이겨내고 계속 제멋대로 뛰었다. 결국 나는 전신마취 약기운에 뻗었고, 수술은 진행됐다.
눈을 떴는데, 이상했다. 뭐라고 말을 하려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말을 하려면 일단 숨을 들이켜야 한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일단 들숨을 ‘스읍’ 들이켜야 날숨에 말이 나온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나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손을 뻗었다.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게 무서웠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그렇지만 꽤나 우스웠을 난리법석이었다. 제철 맞은 대방어처럼 퍼덕거리는 나의 몸짓을 보고 간호사들이 뛰어왔다.
“산...소... 흐읍..산...ㅅ”
내 손짓을 알아들은 간호사들이 호흡기를 갖다 댔다.
“자 크게 숨을 쉬세요. 크으게! 괜찮아요.”
점점 숨이 돌아왔다. 결국 나는 머쓱하게 살아났다. 하지만 이미 병원은 뒤집어진 상태였다. 부정맥이 수술 내내 없어지지 않았고, 수술이 깨어나도 그 지경이었으니 일단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이 결정됐다. 밑에 구급차가 왔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아기가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아기 한 번만 보고 갈래요.”
나의 비장한 요구에 속싸개에 똘똘 말린 아기가 금세 도착했다. 그러나 보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고 의사 선생님을 다시 호출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아기가...저 닮았어요...정말 너무 못생겼어요..,어떡해요?”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고 말았다. 나는 왜 웃는지도 모른 채 혼자 심각했다. 갓 태어난 새빨간 얼굴에 야무지게 꼭 다문 입술, 양쪽 보조개가 콕 파인 아기가 그 때는 너무 낯설었다.
“이 산모 죽진 않겠네. 멀쩡해”
그 순간 거짓말처럼 부정맥이 멈췄다. 기계는 평온해진 내 심장박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무사히 태어난 아기의 존재가 내게는 주사보다 더 강력했나보다. 35주에 태어났지만 3kg에 50cm, 만삭 평균의 아기. 못생겼지만 건강한 나의 아기가 내 심장을 제대로 뛰게 했다. 나는 눈물이 터졌다. 사람의 몸은 때때로 약보다는 마음의 지휘를 받는다. 그 사실을 인지한 건 나중 일이었다. 일단 그때는 원인모를 눈물이 호흡기 속으로 밀고 들어와 짠맛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가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들것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나체였다. 그 위에 얇은 수술보가 달랑 하나 덮여서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양손으로 꼭 수술보를 쥐고 달달 떨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가올 끔찍한 추위를 예상도 못한 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다음은 병원 정문이었다.
유리문이 열리며 도산대로의 거대한 찬바람이 나를 감쌌다.
나는 알 수 있었다.
했구나..했구나..망했구나...
나는 방금 제왕절개 수술을 한 산모였다.
내 온 몸은 바람 든 무처럼 뼈마디가
성글성글해질 것이었다.
구급대원도, 엄마도, 숙모님도, 남편도...심지어 병원 관계자들도 다들 내가 맨몸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숨을 쉬지 못했던 환자니까 빨리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데 정신들이 팔려 내 나체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망연자실한 채 덜컹거리며 구급차에 실려 출발했다.
안녕하세요. 새로운 브런치북으로 돌아온 소리글입니다.
이번 회차는 프롤로그인데 일단 좀 강력한 경험담으로 시작합니다.
어느 정도의 좌충우돌 이야기들인지 맛보기는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큰 애 낳을 때 얘기로 시작하지만 곧 제 인생 전체를 훑는 투병기들이 줄을 이을 거예요.
이번 브런치북 글들은 지난 번 문방구 글들보다는 짧아요.
짧지만 재미는 길게 가길 바랍니다.
제가 웃고 울며 극복해온 그 길들에 함께 해주세요.
생각해보니 참 힘들었는데 같이 읽어주실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 외롭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