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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n 20. 2021

롤러코스터를 잘 타게 된 이유

뜻 밖의 발견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 녀석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나와 같이 다니던 무리는 아니었지만, 다들 뭐 그런 친구 있지 않은가. 취향이 꽤 비슷한 녀석. 1-2년 전, 그는 주말에도 일이 있었던지라 결혼식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었다. 그러고 나서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우리는 만났다.


내 것이 없어.


꽤나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그도 한켠에서는 소설을 끄적이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창작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직장인의 권태기는 3-6-9로 온다고 했던가. 대충 그 녀석도 나 정도 업의 경력이 쌓이면서,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 방향이 맞는 건가'하는. '속도'의 문제는 내가 조절하면 된다. 그런데 '방향'의 문제는 조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렵다.


둘 다 좋은 일로

사람들을 만나진 않는다.


그는 고소 때문에 사람들을 만난다. 나 역시도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거나 할 때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 둘 다 누군가의 불행을 씻어 밥을 짓는다. 그래서인지 낄낄거리며 대화하는 내내 우리의 눈동자 한 켠에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사회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그 친구도 나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거긴 하다. 그러려고 시작했다. 그렇지만 항상 정신 차려야 한다. 타성에 젖기 전에.



우리들은 과연

타성에 대한,

더 나아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을까.


어릴 적에는 롤러코스터가 무서웠다. 내가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롤러코스터를 타도 놀라지 않는다. 기구를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도 내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터득했다. 기구를 믿지 않을 때는 불안했지만, 믿게 되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무서울 게 없어졌다. 기구만 잘 잡으면 내가 죽을 일은 없으니까.


남을 믿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믿음의 중심이 외부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단순하고 즐거워진다. 책임은 타인이 지는 것이기에 나는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실패하더라도 그 핑계를 남에게 전가하면 된다. 반면, 스스로를 믿으면 삶은 고민의 연속이다. 불행한 결과도 결국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믿음'은 '책임'과 관련이 있다.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결과가 오든, 그게 성공이든 파국이든 책임을 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된다. 뭐, 남을 믿으면 편하다. 남이 책임을 져주면 편하니까. 신을 믿게 되는 것도 이런 기분이려나. 하지만 인생까지 남의 핑계를 대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힘들어도 스스로를 좀 믿어보고 싶다.


이번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싶다. 말 그대로 남이 내 인생 살아주지 않는다. 물론 가끔 나도 힘들면 누가 나 대신 이 인생 게임을 대신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하고 싶다. 하지만 이 게임에 2번 목숨은 없다. Clear이든, Failure든 이 게임의 엔딩엔 내 이름을 박아야 한다. 내가 아닌 남이 엔딩을 망치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거다. 나약한 나일지라도 그 책임을 놓고 싶지는 않다.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선 고장나도 결국 내가 고쳐야 된다.
내가 날 믿지 않으면, 누가 날 믿겠어?


소년만화에 나올 법한 대사를 내뱉는 그에게 나는 브런치 얘기를 했다. 소설가 등단이라는 큰 일을 먼저 하기보다 일단 소소하게라도 글을 올려보라고 말이다. 물론 브런치에 글 한 편 쓴다고 해서, 나나 그 녀석의 공허함이 사라지진 않을 거다. 그 녀석이 유명한 소설가가 바로 되지도 않을 것이고.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단 글 몇 자로 스스로에게 격려가 된다면, 이것 또한 즐거움이라는 이익이 될 테니. 어쨌든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것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을 믿지 않고 타인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 톨스토이,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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