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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Dec 18. 2020

고양이, 호랑이굴에 들어가다

무겁지만 찍을 만해

원래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유려하게 글 쓰지는 못하고, 묘사도 세밀하진 않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왜'라는 질문을 항상 했다. '왜 이걸 해야 해', '왜 그런 거야'. 항상 호기심이 많았고 알고 싶었다. (그 때문에 어그로 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 대답을 듣지 못하면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과 추측이 떠올랐다.  잡념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쓰면 이 잡념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1년 동안 여러 언론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실력이 부족했다. 입사시험인 논작(논술, 작문)을 준비하면서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어쩌다가 서류를 붙어도 필기에서 떨어지고, 필기에 붙으면 면접에서 탈락, 면접에 붙어도 최종에서 떨어졌다. 탈락의 고배를 연거푸 마시면서도 계속 입사지원서를 썼다. 100개도 넘게 지원서를 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내 노력은 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였다.


보도국 영상취재기자 모집


그러던 중, 관심 있었던 회사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계열사에서 몇 년 전 인턴을 했었기 때문에 좀 더 눈길이 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본사 소속은 아니었다. 고민했다. '그래도 지상파 방송국들과 같은 포지션에 있는 업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지상파 영상기자들은 본사 소속이다.)  그 시기에 달리 쓸 데가 없기도 했고. 1-2주 전에 또 다른 언론사에서 최종 탈락해서 마음도 지쳐 있었다. 나이는 먹고, 돈은 떨어져 가고.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 20대 후반.

미래가 불안했다. 

나를 둘러싼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썼다.


물론 내 미래가 불안해서 영상기자 지원서를 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졸업을 앞둔 나는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학교에서 제작 인턴으로 있었는데, 학교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매우 설레며 일하고 있었다. 시작은 용돈벌이였는데, 나중에는 정신 차리고 보니 휴일에도 혼자 나와 일하고 있었다. 기획, 촬영 그리고 편집까지 혼자 다 하며 창작욕구를 불태웠다. 만들면 내 것이 되니까. 그리고 그 제작물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 나만의 것을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기쁨은 내게 묘한 짜릿함을 주었다.


이 일도 재밌을 거란 기대감에 지원서를 썼는데, 같이 스터디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다들 취재기자, 아나운서, PD 지원서를 쓰는데 그 친구는 홀로 영상기자를 지망했었다. 그리고 우리 중 초시에 유일하게 지상파 면접까지 갔다. "취재기자보다 더 적게 뽑는 곳인데, 대단해.", "저 직무도 여자를 뽑긴 하나 봐." 다들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국은 탈락했다.


'재밌겠지'라는 알량한 호기심으로 지원서를 썼지만, 나는 어떤 무모한 도전을 한 건지 면접장에 가서야 알았다. 심층면접에서도, 최종면접에서도 여자는 나뿐이었다.


여자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가?


내가 들어서자 안에 있던 지원자들이 일제히 의아하게 나를 응시했다. 당황했다. 다른 회사, 다른 직무로 면접을 보러 갔을 때도 남자들이 많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남자밖에 없는 곳은 처음이었다. 최종까지 갔을 때도 똑같았다.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오면 안 될 곳을 온 건가?'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면접 때도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 여자로서 남자들과 다른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는지 말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뭐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뉘앙스였던 것 같다.


그래도 당시 회사에 감사했던 건,  회사들과 달리 내 능력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 줬다는 것이다. 직접 다 만든 포트폴리오인 건지, 이런 위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업무를 진행할 것인지  등.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다른 언론사 기자 면접에서는 선을 넘는 질문들도 더러 받았다. 지금이면 하지 않을 질문들까지도 들었었으니까. 이 업계는 다 그런 건가, 한국 사회는 다 그런 건가 싶으면서도, '불안하니 일단 붙고 보자'였던 것 같다.


회사의 전반적인 느낌은 나쁘지 않았고, 면접 분위기도 좋았다. 대충 몇 번의 면접 경험이 생기면 불합을 높은 확률로 점칠 수 있게 되는데, 꽤 좋은 느낌이었다. 비 오는 날 면접 보고 나서 버스를 타면서, 친구와 엄마 아빠한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느낌이 괜찮아."


그리고 합격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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