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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Mar 08. 2021

'女'성 영상기자

무겁지만 찍을 만해

"안녕하십니까. ○○○입니다."


사무실에 발을 들인 첫날, 튀어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크게 인사했다. 이윽고 내게 낯선 시선들이 꽂혔다. 여자 선배는 단 1명. 다 남자였다. 낯선 동네. 낯선 사무실. 낯선 얼굴. 낯선 목소리.


몇 차례 면접을 보러 다닐 때는 '이 동네에서 꼭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취재기자는 카메라 앞에서 현장을 보여주지만, 영상기자는 카메라 뒤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 역사도 정사보다 야사가 더 재밌고, TV보다는 유튜브가 더 재밌지 않나. 사실의 파편들 속에서 진실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영상 취재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막연한 설렘이 끝나기도 전에 어색함의 시간은 시작됐다.

20년 정도를 사회에서 여자들과 지내왔다. 분반이었기에 여중 여고와 같은 분위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교는 여대를 졸업했다.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여자들이 훨씬 많은 집단 속에서 보냈다. 집도, 학교도 여자들이 더 많았다.(그렇다고 여자인 친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꽤나 발발거리고 돌아다녀서.)


내 집단 속에서 '여자'는

특이한 존재가 아니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여자다움'이 뭔지는 눈치껏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생활 속에서 '여자다움'이란 건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구성원들 각자 '나'로 존재했다. 나 역시도 '여자'가 아닌 '나'로 불렸다. 내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나는 '만화 잘 그리는 오타쿠', '역사 잘 아는 애', '웃긴 애', '청출어람' 정도로 불려졌다. 나를 부르는 단어 속에 '여자'는 없었다. 모두 다 '여자'였으니까.

그러나 회사와 사회에서는

무엇을 하든

나는 '여자'로 분류됐다.


학교 밖은 달랐다. 사람들은 내가 잘하면 ''라서 잘한다고 평가했고, 못하면 ''라서 못한다고 평가했다. 회사 밖에서도 나는 '女'기자였다. 혹여 취재진이 많이 있는 현장에서 실수라도 하면 다음날 '○○○(회사명) 자애가 실수했다'라고 소문이 났다. 자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싫어서 머리도 짧게 잘랐지만, 나는 '나'로 존재하기 어려웠다.


네가 잘해야 여자 후배가 더 들어올 수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하라'라고 어린 나를 독려하며 던진 선배의 한편으론 나를 옥죄여왔다. '내가 못하면, 여자 후배는 더 이상 없다는 말인가? 내가 그럼 미래의 여자 후배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는 건가? 내 능력과 태도에 따라 여자 후배들의 취업이 결정되는 건가? 내가 실수하면 더 이상 여자를 안 뽑겠다는 말인가?'


구조를 깨는 건 구조의 몫이다. 

개인이 혼자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짐을 내려놓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내가 '여성'으로서, '영상기자'로서 고용 가치가 있다는 것회사와 사회에 끊임없이 각인시켜야 했다. 자신과 타인을 계속 의심해야 했다. 그 안에서 때론 좌절할 때도 많았다. 그리고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여전히 찾고 있다.


불합리한 구조는  혼자서는 바꿀 수 없다. 물론 1인의 성공희생이 국면 전환의 촉매제나 도화선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희생양과 뜬소문만이 남아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명의 개인이 모이면 달라질 수 있다. 1명과 1명이 더해지면 2명이 되고, 여기에 1명이 더해지면 무리가 형성된다. 그렇게 형성된 무리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과제가 되고 지향점이 된다. 우리는 이미 역사 속에서 이런 과정을 수없이 봐 왔지 않은가.


현직에서 가장 오래 일하고 계신 MBC 이향진 선배의 신입 때 모습  (1987)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국내 방송국 여성 영상기자는 7명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20명 가까이는 된다. (그래도 더 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변한 만큼, 여성 영상기자의 수도 변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자주 보기는 어렵지만, '잘 지내고 있겠지'하는 텔레파시를 종종 보내곤 한다. 현장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잠시나마 눈으로라도 '내적 응원'을 보낸다. 

2020 여성 영상기자 신년회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카메라를 잡고 현장으로 나가서 일하여성 영상기자 선후배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또한, 자신과 타인을 위해 일터로 나가는 모든 여성들과 그들을 믿고 지지하며 함께 돌파해나가는 남성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고, '몸짓'이 아닌 '꽃'이 되길 바라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김춘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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