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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Mar 16. 2021

이모티콘에서 그 사람이 보인다

뜻 밖의 발견

또 샀다. 카카오톡 이모티샀다. 세어보니 이제 30개 정도가 된다. 귀여워서, 웃겨서 샀는데, 막상 사고 보니 그 정도가 됐다. 이쯤 되면 이모티콘 부자다.

결국 샀음.
너 같다ㅋㅋㅋ


평소대로 카톡방에서 이모티콘을 플렉스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톡을 보고, '아, 그런가?' 싶어서 이모티콘들을 다시 봤다. 비슷하다. 화내고, 울고, 비웃고. 뭐가 그리 나를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한 느낌. 부정할 수 없었다.


이쯤되니 몇몇 친구들은 나를 불다람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웃을 때는 내 반려주식들이 상승할 때 뿐.

'아, 내가 매번 화만 냈나.' 싶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이 캐릭터들을 봐도 대부분 화가 나 있거나, 지구 멸망 계획을 꾸밀 것 같은 빌런들의 얼굴들이라. 롤러코스터와 같은 내 이모티콘들을 보자니, 내가 그간 친구들에게 너무 감정을 분출했나 싶기도 하고. 받아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나새끼는 왜 중간이 없나, 극과 극 밖에 없나 싶기도 하다. 반성한다.


그러다 문득 친구들 것을 봤다. 놀랐다. 다 달라서. 그리고 다들 자기 같은 이모티콘만 쓰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평화주의자  A는 유순한 동물 이모티콘을 쓴다. 실제로 A는 조직생활도 잘하는 편이고, 모나지 않은 성격이다. 화도 잘 안내고 맞장구도 잘 쳐준다. 다만, 가끔 멍 때리기를 잘한다.

순둥한 이모티콘을 주로 쓰는 A. 화내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몸에서 사리 나올 듯.

친구 B는 경제관념이 투철하'' 똘똘이다. 법과 경제 자문을 구할 때 이 친구의 조언에 많이 의존한다. B는 의식주 빼고 쓸데없는 소비는 거의 안 하는데, 이모티콘도 잘 안 산다. 혹여 이모티콘을 쓴다면, 그건 공짜로 받은 거다. '무료'인 관계이모티콘이 약간 촌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도 실제 B는 애교가 많은 편이라, 가끔 귀여운 강아지 이모티콘을 돈 주고  때가 있다. 실제로 좀 강아지 같은 순수함이 있다.

부자되세요.

이모티콘에서사람이 보인다. 말과 얼굴에서사람의 성격이 보이는 게 아니다. 실제로 순한 사람은 웃거나 무해해 보이는 이모티콘을 주로 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은 표정 중심의 이모티콘을 쓴다. 유머가 풍부한 사람들은  매운맛 이모티콘을 적재적소에 잘 써서, 보는 이로 하여금 웃게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실제로 만나지 않았어도 이모티콘을 보면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인간의 끊임없는 자기표현 욕구 때문 아닐까. 텍스트로는 짧은 순간에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텍스트로 관념적인 표현은 할 수 있지만, 직관적이진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지를 선택한 것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니까, 이미지는 시간과 전달력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21세기에는 이미지가 밈이나 이모티콘으로 진화했고, 휴대폰 속 대화에서는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된 것이다. 이모티콘은 그렇게 또 다른 우리의 자아가 되었다.


자아의 소중함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이모티콘은 톡톡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나 포함 이모티콘 과몰입 덕후들은 이모티콘을 사고 있을 거다. (카카오가 망할 일은 없겠군.) 손바닥만불빛 창 너머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오늘도 이모티콘을 구입하는 우리들.


애쓰는 모습들이 귀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랑 김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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