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샀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또 샀다. 세어보니 이제 30개 정도가 된다. 귀여워서, 웃겨서 샀는데, 막상 사고 보니 그 정도가 됐다. 이쯤 되면이모티콘 부자다.
결국 샀음.
너 같다ㅋㅋㅋ
평소대로 카톡방에서 이모티콘을 플렉스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톡을 보고, '아, 그런가?' 싶어서 이모티콘들을 다시 봤다. 비슷하다. 화내고, 울고, 비웃고. 뭐가 그리 나를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대부분 비슷비슷한 느낌. 부정할 수 없었다.
이쯤되니 몇몇 친구들은 나를 불다람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웃을 때는 내 반려주식들이 상승할 때 뿐.
'아, 내가 매번 화만 냈나.' 싶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이 캐릭터들을 봐도 대부분 화가 나 있거나, 지구 멸망 계획을 꾸밀 것 같은 빌런들의 얼굴들이라. 롤러코스터와 같은 내 이모티콘들을 보자니, 내가 그간 친구들에게 너무 감정을 분출했나 싶기도 하고. 받아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나새끼는 왜 중간이 없나, 극과 극 밖에 없나 싶기도 하다. 반성한다.
그러다 문득 친구들 것을 봤다. 놀랐다. 다 달라서. 그리고 다들 자기 같은 이모티콘만 쓰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평화주의자 A는 유순한동물 이모티콘을 쓴다. 실제로A는조직생활도 잘하는 편이고, 모나지 않은 성격이다. 화도 잘 안내고 맞장구도 잘 쳐준다. 다만, 가끔 멍 때리기를 잘한다.
순둥한 이모티콘을 주로 쓰는 A. 화내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몸에서 사리 나올 듯.
친구 B는 경제관념이 투철하'신'똘똘이다. 법과 경제 자문을 구할 때 이 친구의 조언에 많이 의존한다. B는 의식주 빼고 쓸데없는 소비는 거의 안 하는데, 이모티콘도 잘 안 산다. 혹여 이모티콘을 쓴다면, 그건 공짜로 받은 거다.'무료'인 관계로 이모티콘이 약간 촌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도 실제 B는 애교가 많은 편이라, 가끔 귀여운 강아지 이모티콘을 돈 주고 살 때가 있다.실제로 좀 강아지 같은 순수함이 있다.
부자되세요.
이모티콘에서도 사람이 보인다. 말과 얼굴에서만 사람의 성격이 보이는 게 아니다. 실제로 순한 사람은 웃거나무해해 보이는 이모티콘을 주로 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은 표정 중심의 이모티콘을 쓴다. 유머가 풍부한 사람들은 매운맛 이모티콘을 적재적소에 잘 써서, 보는 이로 하여금웃게 한다.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실제로 만나지 않았어도 이모티콘을 보면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인간의 끊임없는 자기표현 욕구때문아닐까.텍스트로는 짧은 순간에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텍스트로 관념적인 표현은 할 수 있지만, 직관적이진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지를 선택한 것이다.백문이불여일견이니까, 이미지는 시간과 전달력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21세기에는이미지가 밈이나 이모티콘으로 진화했고, 휴대폰 속 대화에서는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된 것이다. 이모티콘은 그렇게 또 다른 우리의 자아가 되었다.
자아의 소중함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이모티콘은 톡톡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나 포함 이모티콘 과몰입 덕후들은 이모티콘을 사고 있을 거다. (카카오가 망할 일은 없겠군.) 손바닥만한 불빛 창 너머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오늘도 이모티콘을 구입하는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