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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Jul 02. 2023

무리하지 않기 #26

Ep26.│무리하지 않고 내 몸을 아끼며 잘 돌보는 연습


아침부터 무릎 상태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잘 버텨주었던 무릎이기에 지금 느껴지는 이 통증이 너무나도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처음 간간히 찌릿한 느낌이 들던 무릎에는 어느새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통증이 몰려왔다.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과 풍경을 보는 하루가 더없이 행복했지만

반대로 몸에는 그만큼 피로가 누적된 것이다.


무릎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야 하기에

오랜만에 가방 옆에 놓여있던 등산 스틱을 꺼내 들었다. 

발을 내딛기 전 스틱이 몸을 충분히 지탱해 주었고

덕분에 무릎 통증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여유를 가진 채 까미노를 걸어갔다.



아침의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고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귀는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릴 때쯤

순례자를 위한 도네이션 바가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놓인 신선한 과일들과 음료수에는

주인장의 따듯한 마음씨와 수고로움이 담겨져 있었다.



5유로 동전을 하나를 바구니에 집어넣고 옆에 있던 바나나 하나를 집어 들었다. 

달콤한 바나나를 먹으며 도네이션 바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마당과 벽에는 세계 각 언어로 적힌 글귀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반가운 한국어도 볼 수 있었다.


바나나로 요깃거리를 마친 뒤 다시 길을 떠나려고 돌아선 순간

도네이션 바를 운영하시던 아주머니를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 "올라가서 따듯한 물 좀 가져다줄까?"

쌀쌀한 아침 날씨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아주머니는 

다시 길을 나서려는 우리에게 정중하고 다정하게 여쭤보셨다.


아주머니의 온정 넘치는 그 말 한마디는 

쌀쌀한 아침의 냉기를 온기로 바꿔주는데 충분했고 벅찬 감동으로 밀려왔다.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모두 다른 우리였지만 

그렇게 우리는 길 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가고 있었고, 

기약 없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남긴 채 까미노를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 도시의 초입을 지나갈 무렵

파라솔에 걸려있는 조개껍데기의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오늘의 도착지인 사리아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체크인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자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어느새 잠이 들어버린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40여 분을 기절한 듯 자다가 

동원이가 깨우는 소리에 그제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카페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한가했기에 

남아있던 미지근한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알베르게로 가 체크인을 마친 뒤 샤워를 하고 나와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동안 몸에 누적된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뭉치고 경직된 근육을 천천히 늘려주고 풀어주자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저녁 7시, 10분 남짓 떨어져 있던 성당에 올라가 미사를 보았다. 

사실 오늘은 동원이의 생일이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맛잘알로 알려진 동원이는 

까미노에서조차 맛집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어젯밤 동원이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사리아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사가 끝난 뒤 동원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미사 끝나고 출발해서 가는 중! 5분 뒤에 나오면 될 것 같아.'

- '오케이, 너 보인다!'



이제 막 저녁 오픈을 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우리에게 

셰프가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는데 메뉴판에 익숙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왔는지 한국어 메뉴판이었다. 

까미노를 걷는 동안 처음 본 한국어 메뉴판이었다.

왠지 모를 기분 좋음과 동시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와인을 주문했다.



동원이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야외 테이블에는 하나둘씩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주문한 음식과 함께 와인이 나왔고, 잔을 들어 짠을 하며 외쳤다.


- "생일 축하해!"


그렇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우리의 하루가 천천히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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