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래블러 Aug 06. 2023

최고의 하루 #30

Ep30.│그래, 내가 바라던 여행은 이런 거야!


북적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새벽의 거리에는 조용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어김없이 가방을 둘러메고 어제저녁 스테판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벤치를 지나 오늘의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다.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따라 걷자 어느새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새벽의 적막함 만큼이나 아침의 태양은 조용히 제 위치를 찾아가고 있었다.



내일이면  길이 끝나는  아쉬워서일까. 여유를 갖지 않아도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져 있었다. 평소라면 뜨거운 오후의 햇살을 피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여유를 가지고 마을을 둘러보지만, 당장 내일이면 끝나는 까미노였기에 뜨거운 햇살도 아쉬움 가득한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지는 못했다.


그저 쉬고 싶으면 바에 들어가 상큼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기도 했고 지나가는 여행자들과 평소보다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갔다.



확실히 까미노에 온 사람이 많아진 길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배낭에 자신의 나라 국기를 꽂은 채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악기를 둘러메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모습이 까미노의 풍경과 어우러져 이전보다 훨씬 다채로운 색감을 뽐내고 있었다.


아무리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어김없이 오늘의 목적지 위에 서 있었다.


체크인 시간까지는 아직 30분가량 남아있었다.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알베르게 데스크 앞 의자에 앉아 슬리퍼로 갈아 신자 신발에 묶여있던 발 끝의 피로가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순식간에 몰려드는 피로와 오늘도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벽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귀는 더욱 활짝 열렸고 문 밖의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가 그 틈으로 들려왔다.


한참을 그렇게 눈을 감고 있던 도중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레 눈을 떠 밖을 바라보자 팜플로나 친구들이 서 있었다.

- "너희도 오늘 여기서 하루를 보내?"

- "어! 우리 모두 여기서 잘 거야. 잘됐다!"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다. 첫 만남부터 이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기에 지금의 이 우연이 너무나 기쁘고 설렜다.



한참을 떠들다 체크인을 마치고 말끔하게 샤워를 한 뒤 우리는 다시 알베르게 복도 의자에 앉았다. 그때 라우라가 우리에게 다가와 함께 카드게임을 하자고 물었다. 우리는 "너무 좋지!"라는 대답과 함께 널찍한 주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스페인의 카드게임인 La baraja espanola는 한국의 원카드 같은 게임이었다. 친구들은 처음 접한 우리를 배려해 복잡한 과정을 빼고 조금 더 쉬운 룰을 정해 게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역시 모든 것에 진심인 나는 게임에도 예외가 없었고, 카드게임 두 판 만에 1등을 했다.


한참을 같이 모여 놀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이따 함께 사진 찍자는 말을 남긴 채 동원이와 나는 거리로 나와 식당을 찾아다녔다. 마침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켰고 오늘도 배가 터지게 저녁을 먹고 다시 알베르게도 돌아왔다.


팜플로나 친구들은 직접 만든 요리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알베르게 옆 땅바닥에 앉아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으면 같이 먹자는 친구들의 말에 우리는 먹었으니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간단한 산책을 마치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식사가 다 끝났는지 팜플로나 친구들과 함께 온 신부님은 어느새 기타를 들고 계셨고 아이들은 그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다. 산책이 끝나고 돌아오는 우리를 본 루엔은 이리 와서 같이 놀자고 말했고 자연스럽게 루엔의 옆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신부님의 기타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손을 흔들기도 하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춤을 추기도 하던 친구들. 멋지고 화려한 장소가 아닌 그저 땅바닥에 편안하게 앉아 즐기는 지금의 자유로운 모습이 마치 하이틴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어느새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래, 내가 바라던 여행은 이런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