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래블러 Aug 20. 2023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31

Ep31.│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하다



 길이 끝나는  너무나도 아쉬워서일까. 어젯밤 팜플로나 친구들과 함께 놀고  이후 쉽게 잠들지 못해 뒤척이기  여러 , 겨우 잠에 들어도 깼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캄캄한 밤에도  마음속 아쉬움의 파도는 쉽게 잠잠 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출발 시간이 되어 새벽의 거리로 나온 나는 피곤함 보다 그저 오늘 하루가 평소보다 천천히 흘러갔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알베르게 앞에서 신발끈을 조여매고 조금은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오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새까만 하늘은 남색으로 바뀌어갔고 이내 나무들 사이로 붉게 불든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배낭을 메고 걸으며 스페인의 일출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잠시 잠잠했던 나의 마음은 다시금 파도를 그리며 크게 요동쳤고 코 끝이 아려왔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이면 산티아고 여정이 끝나지만 이전의 날들과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중간중간 쉬고 싶으면 바에 들어가 모닝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고 이 길을 오랫동안 추억하고자 발걸음을 멈춰 사진을 하염없이 찍기도 했다.


산티아고 공항을 지나 어느새 몬테 도 고소(Monte do Gozo)의 언덕에 도착했다. 이 언덕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들어가게 된다. 이토록 목적지에 도착하기가 싫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까미노를 이대로 보내긴 아쉬운 마음에 동원이와 나는 잠시 산티아고에 들어서는 것을 멈추고 언덕 위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햇빛은 뜨겁지만 습하지 않은 날씨 덕에 시원한 여름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풀이 가득한 언덕 위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들어 수다를 떠는 사람들도 있었고 푸릇푸릇한 잔디 위에 누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으니 며칠 전 만났던 홍콩인 누나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 "같이 사진 찍자!"

- "너무 좋지! 저기 가서 찍자!"


끝난다는 아쉬움에 살짝 우울해있던 나는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다시금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언덕 위에 선 우리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눈이 부신지도 모른 채 웃으며 사진을 찍어댔다.


- "이따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도 같이 찍자! 나는 먼저 가있을게!"

- "알겠어! 우리는 조금 더 쉬다가 천천히 갈게."

누나와 인사를 나눈 우리는 조금 더 언덕 위 그늘로 돌아와 시간을 보냈다.


- "이제 슬슬 출발하자!"

비장하게 다짐한 듯한 나의 입에서 드디어 출발하자는 소리가 나왔다. 아쉬움에 붙잡혀 늘어지기 전에 다시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눈길 한 번을 가득 남긴 채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내리막을 내려오니 드디어 산티아고 시내의 초입에 들어왔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설레는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주변에 걸어가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거리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고 우리도 그 무리에 녹아들어 즐거움을 만끽하며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는 것은 주변의 환호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마주하자 그 웅장함과 더불어 그동안 까미노 여정이 머릿속에서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듯 지나갔다. 나 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었다.


- "그동안 고생했어. 생장에서 언제 도착하냐며 칭얼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 진짜 도착했네!"

- "고생 많았어."

다시금 코 끝이 찡해지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눈물을 가로막으며 애써 참으려고나 부끄러워 숨기지 않았다. 그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내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다 보니 아까 전 함께 사진을 찍은 홍콩인 누나가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리는 다시 사진을 찍어댔다.


- "고생했어! 우리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또 만나자!"

- "너희도 고생 많았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렇게 누나를 먼저 보내고 우리는 그늘진 곳 땅바닥에 앉아 그저 멍하니 대성당 앞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옆에서 한국 말이 들려왔다.


- "한국인이세요?"

- "네! 안녕하세요!"


카메라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던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왔다. 오랜만에 듣는 한국어라 그런지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렇게 아저씨와 간단한 대화를 나눈 우리는 팜플로나 친구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아저씨에게 인사를 남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팜플로나 친구들은 도착했다는 환호와 함께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즐거워 춤을 추기도 했다. 부러웠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 '나도 앞으로는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고 나를 좀 더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팜플로나 친구들과도 함께 즐거움을 나눴다. 가장 정이 많이 들었던 루엔과 라우라, 그리고 다른 팜플로나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야 오늘 묵을 알베르게로 걸어갔다.


알베르게의 체크인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난 뒤 우리는 우체국으로 향했다. 팜플로나에서 보낸 우리의 짐을 찾기 위해서였다. 가만 보니 팜플로나와 관련된 추억이 많은 걸 보니 팜플로나 친구들과 우리는 만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짐을 찾은 우리는 알베르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했다.



이후 꼬르륵 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 저녁으로 타파스와 맥주를 먹고 나오자 어느새 하늘에는 서서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산책도 할 겸 다시 대성당 앞으로 걸어갔다. 성당 앞에는 낮에 본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저씨는 건축을 전공하셨다고 했다.

- "와! 그러면 산티아고 대성당처럼 저렇게 멋진 건축물을 보시면 어떻게 지어지셨는지 아시겠네요?"

아저씨의 건축에 관한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아저씨가 말씀해 주시는 인생 선배로서의 다양한 조언들을 들으며 '정말 참된 어른이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배낭을 메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통해 얻었던 깨달음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살았는지를 깨닫게 했다. 이 길을 걸으며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내가 원하던 여행은 어떤 것인지,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등 나를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던 시간인 것 같다.


내일모레면 이곳을 떠나 포르투갈로 넘어가지만 조금은 덤덤히 잘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까미노 여정은 끝이 났지만, 나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최고의 하루 #3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