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양자리의 운명이라 그런걸까? ‘어’다르고 ‘오’다르고 하던가. 새로운 ‘것’은 싫어하면서 새로운 ‘곳’은 좋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 미친듯이 끌린다. 정말. 리터럴리!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 나 혼자 뚝! 떨어지고 싶다. 사실 나는 내가 이런 종류의 인간이란 걸 여태 몰랐다. 스물 두 살, 프랑스로 떠나기 전까지 내가 이토록 방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정 말 몰 랐 다.
2015년 8월 5일. 28인치 캐리어 두 개 손에 쥐고 나 혼자 떠난 프랑스. 난 아직도 이 날의 날씨, 냄새,분위기 모두 온전히 기억난다. 부끄럽지만, 22년을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나에게 1년 간의 나홀로 프랑스 유학은 설렘 따위 없는 순도 100퍼센트 두려움 뿐이었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겠지’ 하며 비행기에서 애써 자위하던 나에게 빅엿을 날리는 낯선 서양 공기. 내가 이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뀐 순간이냐고?아니. 두려움이 제곱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에 도착한 그 첫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믿을까. 미묘한 이질감 속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심지어 나에게도 내 존재가 낯설었다. 어떻게든 한 번 살아보려고 안되는 불어로 블라블라 말하고 다니는 ‘나’는 지금 생각해도 참 낯설다. 한국에서의‘나’는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것도 힘들어하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은행 계좌도 열고, 집 계약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아마 이 때부터 내 방랑벽이 시작 된 것 같다. 처음 느껴 본 ‘혼자’의 짜릿함에 중독되어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엄청나게 쏘다녔다. 옆 나라 이웃나라는 물론이고 프랑스 곳곳 소도시까지 1년 동안 안 가본 곳이 없다. 이곳 저곳 다니면서 서러운 일도 참 많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 하나 틀린 거 없이 고생도 꽤나 했다. 그래도 망원 수영장 같던 몬주익 수영장, 리버풀 스트리트 맨 끝의 빈티지숍, “관강객 꺼져” 낙서가 있기 전의 벙커, 파리 5구 이름모를 펍의 딸기샷…고생 없이는 얻지 못했을 게 너무 많다.
Travel(여행)의 어원은 라틴어 Travail(고생, 고난)에서 왔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고생이 아니라 개고생이란다. 맞는 말이다. 등 따수운 집 떠나 돌아다니는 게 개고생이지 뭐. 그래도 적어도 나한테는 새로운 곳에 떨어졌을 때의 그 아득하고 낯선 감정을 그저 개고생으로 치부하기에는 조금 속상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방랑할까 한다. 물론 고생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여행하고 싶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