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 프로가 내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이유인즉슨
노이즈 캔슬링(Noise-Canceling)
애플이 해낸 이 대단한 기술 때문이었다. 노캔 기능을 탑재해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데 이견이 없다. 생활소음을 완벽하게 걸러내 자동차 오는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는다. 에어팟을 처음 끼고 아파트 단지를 나가는 순간 바로 옆에서 달려오던 자동차가 급정거했다. '어, 이거 큰일 나겠는데' 가슴을 연신 쓸어내렸다. 길거리 다닐 때에는 노캔 기능을 캔슬링 해야겠다고 다짐한 아찔한 순간. . 정말이지 그만큼 소음 잘 걸러낸다. (내 발소리도, 목소리도 잘 안 들린다)
우주 속에 나와 음악만이 존재한다
이 후기가 마냥 과장인 줄 알았는데, 지하철에서 이 노캔 기능을 켠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후기가 실로 정확해서였다. 지하철이 터널을 지나면서 쏟아내는 엄청난 굉음과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대화들이 노캔 기능을 켠 순간 순식간에 증발된다. 이 조그마한 에어팟이 스펀지라도 되는 듯 모든 소음을 흡수하고 걸러낸다.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소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직장인들은 아침에 이 기능을 켜고 출근하면 미약하게나마 지옥철을 버틸 생명수가 되겠단 희망찬 생각도 해봤다.
그래서 늘 되뇌는 것이지만, 애플은 대단하다. 기술의 혁신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게 한다. 정말 비싼데 소비자들로 하여금 사게 한단 말이다. 32만 9천 원이란 '헉' 소리 나는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고작) 이어폰에 이렇게 거금을 투자할지 몰랐다. 에어팟 1, 2 가 출시되었을 때도 줄 이어폰을 고수했는데 애플은 '네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란 말을 건네듯 혁신을 거듭하며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더 정확히는 심리적으로, 현상적으로 모두 불편하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나 맥북과 아이폰을 쓰는 나에겐 현상학적으로 에어팟이 필요했다. 위 사진처럼 나는 에어팟 프로를 구비하기 전까지 두 개의 이어폰을 들고 다녔다. 구형 이어폰과 8핀 이어폰. 맥북에는 구형 이어폰이 필요하고 아이폰은 8핀 이어폰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여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애플 매직 마우스도 아주 똑같은 불편함으로 구매했다) 밖에선 휴대폰 이어폰을 끼다 카페 같은 실내로 들어와 맥북을 켠 순간 다른 이어폰을 갈아껴야 한다. 그리고 이 둘을 함께 들고 다니다 보면 가방 안에서 서로 사이좋게 꼬여버리곤 만다. 이를 한 땀 한 땀 풀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사람들 귀에 꼽힌 에어팟을 발견하고 만다. 한 번은 백발 할아버지께서 에어팟 프로를 끼고 내 옆을 지나가는데 실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로 여기서 애플은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만들고, 필요하게 만든다. 모두가 갖고 있기 때문에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그 제품이 내 손에 들어오면 마치 나만 갖고 있을 것이란 아이러닉하고 요상한 뿌듯함을 선사한다. 그렇게 결국 애플은 사용자가 새로운 경험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러니 애플을 찬양할 수밖에 없고, 앱등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나)
속기 싫은데 속고 싶은 거짓말과도 같은 애플.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애플의 전략이 아닐까. 오늘도 애플이 구현해 낸 속임수과도 같은 고요한 우주 속에서 에어팟 프로와 함께 헤엄쳐본다.
p.s 다시 한번, 이 대단한 노캔 기능은 밖을 돌아다닐 때는 무조건 끄는 것을 추천한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소리가 안 들려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