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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er Oct 24. 2019

마스크 말고 머스크를 써야 할 때

그 겨울, 머스크가 분다

  



  개인적으로 겨울보단 여름이다. 춥고, 앙상하고, 쓸쓸한 겨울보다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고, 싱그러운 여름이 당연 최고지.



   그러나 겨울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한 가지 있다면, 바로 머스크(Musk) 때문일 것이다. 칼바람에 살이 에일 것 같이 추운 겨울날, 머스크 한 방울이면 내가 두른 거무죽죽한 코트가 하얀 호텔 침구가 되니까. 어느 순간 이 꼬릿 한 포근함에 중독되어 이제는 차가운 공기가 꽤나 반갑게 느껴질 정도다. 

  


   다음 주부터 20도 이하로 떨어진단다. 겨울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지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머스크를 사야만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가명 목표는 향수다, 에디터 부스러기의 머스크 향수 추천 리스트.










 








No.1 머스크, 키엘 오리지널 머스크

  검색 엔진에 '머스크 향수'를 치면 바로 나오는 향수, 키엘 오리지널 머스크. 키엘의 베스트이자 스테디셀러이기도 한 이 효자 향수를 모르고서는 어디 가서 머스크 좋아한다고 말하지 말자. 머스크 향 특유의 꿉꿉하고 고소한 냄새가 유독 돋보이는 향수로, 노트만 보면 꽤나 상큼할 것 같다만, 알코올 향이 탑노트부터 앞통수 치고 들어오는 녀석이다. 하지만 걱정은 금물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알코올 향은 금세 날아가고, 머스크에 뒤덮인 일랑일랑과 네롤리가 당신을 따뜻하게 품어줄 테니까. 앙상하게 여윈 나무에 마음까지 시려지는 겨울날, 키엘 오리지널 머스크에 폭닥하게 안겨보는 건 어떨지.









Another? NOPE. One of a kind, 르 라보 어나더 13

  르 라보와 어나더 메거진이 컬래버레이션해서 만든 향수, 어나더 13이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파리의 Colette(콜레뜨)에서 리미티드로 선보였던 향수였지만, 폭발적인 성원으로 이제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르 라보의 베스트셀러 샹탈 33과 비슷한 카테고리의 향수다. 왜냐, 바로 암브록스 때문이지. 흔히 담배향, 연필심향으로 표현되는 암브록스가 메인으로 들어가면 샹탈 33처럼 스모키 한 향이 깊숙하게 들어온다. 그러나 어나더 13은 머스크에 암브록스 실수로 두어 방울 흘린 느낌으로, 보다 가볍게 사용할 수 있다. 니치 향수 초보자들에게 적당히 도전적인 향수, 어나더 13 되시겠다.







머스크의 시각화, 메종 마르지엘라 레이지 선데이 모닝

  각 향수마다 감탄 없이 듣지 못할 이야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향수 스토리텔링의 대가 메종 마르지엘라다. "플로렌스의 구겨진 리넨 시트와 깨끗한 타월 냄새"에서 착안한 레이지 선데이 모닝은 디스크립션 그대로의 향을 자랑한다. 베이스는 머스크지만 로즈, 은방울꽃, 서양배와 같은 노트들 덕분에 플로럴 향이 지배적이다. 순하디 순한 은방울꽃의 청초함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따뜻한 머스크로 남는데, 덕분에 고소하고 다소 묵직한 머스크 향이 자유롭게 표현된달까. 햇볕 좋은 날, 하얀색 구스 침구 위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리는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다면, 레이지 선데이 모닝이다.







어머.. 어쩜 너는 이름부터.., 바이레도 블랑쉬

  어머 너는 어쩜 이름도 하얀, Blanche 일까.. 주접 한 번 떨어봤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별 것도 아닌 게 크게 다가오지 않나. 나에게 바이레도 블랑쉬가 그렇다. 좋게 말하면 고소한, 심하게 말하면 '쩐내' 나는 머스크의 단점을  최소화시킨 가장 보통의 머스크 바이레도 블랑쉬. 탑노트의 알데히드 때문에 처음 뿌린 그 순간에는 알코올 향이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머스크와 샌들우드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은은하게 마무리된다. 솔직히 말해서 블랑쉬는 겨울보다 초여름에 더 잘 어울리는 향수다. (사실 사계절 내내 잘 어울린다..) 기분 좋게 불어오는 여름 바람에 살랑이는 하얀색 커튼이 떠오르는 향이랄까. 겨울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뿌리고 싶은 향수를 찾는 자여, 바이레도 블랑쉬를 사자.







어떻게 가격까지 사랑하겠어.. 머스크를 사랑하는 거지, 톰포드 화이트 스웨이드

자자, 선수 입장. 드디어 등장했다. 이 리스트 내 가장 극악무도한 가격을 자랑하는 톰포드 화이트 스웨이드가 등장했다. 50ml에 298,000원이니 1ml 뿌릴 때마다 5,960원 되시겠다. 한 번 뿌릴 때마다 아인슈페너 한 잔 값을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톰포드 화이트 스웨이드를 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체불가니까. 이름대로 '화이트 스웨이드'에 걸맞은 향이다. '스웨이드'에 걸맞은 알싸한 레더 향이 '화이트'한 머스크와 어울려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을 선보인다. 아마 타임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듯하다. 그러나 잔향은 로즈와 샤프란 덕분에 잔잔하다. 마냥 부드럽지 않은 스웨이드의 질감을 촉감뿐만 아니라 향으로도 느낄 수 있는 향수, 톰포드 화이트 스웨이드를 강력 추천한다.

겨울을 당신의 Golden Era로 만들어 줄, 산타마리아 노벨라 무스치오 오로

  화이트 머스크보다 깊이 있는 향을 자랑하는 골든 머스크, 산타마리아 노벨라 무스치오 오로. 파우더리 한 머스크 향에 시트러스와 스파이시가 몰래 온 손님으로 스리슬쩍 참석해, 이국적인 향을 뿜어 낸다. 미미한 단향에 농후하게 깔리는 머스크 향을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으리오. 여기에 또 하나 반전 매력. 따뜻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차가운 느낌의 향수라는 것. 하루 종일 그윽하게 당신 곁에 머물며 당신의 겨울을 Golden Era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산타마리아 노벨라 무스치오 오로. 아, 참고로 화이트 머스크보다 묵직하게 깔리기 때문에 여름보다 겨울에 쓰는 걸 권장한다. 















내가 준비한 리스트는 여기까지다. 겨울 향수를 찾아 방랑하는 자들에게 이정표가 되길 바라며...

머스크와 함께 이번 겨울도 포근하게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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