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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er Oct 25. 2019

본체는 훌륭하나 모니터가 조금 부족한 친구

타인의 평가 속에서 흔들리고 있을 당신에게


세상살이 쉬운 일 하나 없다지만, 나에 대한 혹독한 평가를 마주하는 건 늘 아프고 쓰라리다. 우린 군자가 아니지 않는가. 하물며 「논어」 첫머리에 나온 널리 알려진 문구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열 받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인불지이불, 불역군자호’, 바로 이것은 배움의 단계 중에서도 가장 끝 단계에 해당한다. 즉, 자신에 대한 평가에 불만없이 연연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배움의 마지막 단계인 것이다. 그것이 군자의 모습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인데, 문제는 어렵다. 흔히 게임에서도 최종보스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캐시를 붓고, 엄청난 경험치를 쌓고 고레벨에 도달해야 가능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최종 보스인 ‘평정’이야말로 평생 인생의 과제로 삼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평가를 직면하기까지 이렇듯 논어를 꺼내고 군자를 언급하며 빙글빙글 돌며 적고 있다. 미루어 짐작건데 난 아직 평정에 도달하기까지는 거리가 멀다. 위 본문 제목처럼 난 마치 ‘컴퓨터’로 빗대져 쓰라린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선명한 추억이다.





때는 고등학교 1학년, 홍보포스터 한 장에 매료되어 교외 독서캠프를 신청했다. 평소 제대로 읽지 못하는 책을 좀 읽고 학교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도 한번 만나보자는 취지였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 독서캠프의 장소가 모 대학교였기 때문에 과연 캠퍼스 라이프는 무엇일까 내심 고대하며 달려간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삼일짜리 낭만을 즐겨보기도 전에, 독서캠프는 빡셌다. 


푸르른 잔디밭과 통기타는 무슨, 빽빽한 강당에만 갇혀 <오래된 미래>란 심오한 책을 읽었다. (역설적인 책 제목만큼 내 심리는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 그리고 설상가상. 그 책을 읽고 제출했던 내 독후감이 뽑혀 마지막 날 토론대회의 참가자로 발탁되었다. 저..잠시만요. 토론대회 있는 건 모르고 왔는데요. 토론대회가 뭐죠. 도대체 어떤 주제로 설전을 벌여야 하죠. 처음 해봐요. 정말 처음이에요. 살려주세요.


마음속에서 또 한 번 소리 없는 아우성을 피 토하듯 내쏟으며 그렇게 강당 단상이란 심판대에 올랐다. 토론의 주제는 ‘전통문화는 고수되어야 하는가? 변해야 하는가?’ (늘 잊고 싶은 기억이 더 또렷이 남는 건 인생의 아이러니다.) 난생 첫 토론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고, 이런 내가 우습다는 듯 나를 제외한 패널들은 쟁쟁한 설전을 벌였다. 그들의 폭넓은 지식에 TV 앞 시청자마냥 넋이나 놓고 관람하고 싶었지만, 난 참가자였다. 결국 내 차례가 다가왔고, 뇌에 차마 닿지 못하고 배설된 언어들이 공중에 떠다녀 누구의 마음에도 닿지 못했다. 그 즉시 나와 심사위원들의 낯빛은 마치 똥으로 물들어갔다.


"본체는 훌륭하나 모니터가 조금 부족하네요"


그렇게 듣게 된 나의 아프고도 찬란한 첫 평가. 토론이 모두 끝난 후 한 심사위원이 내게 건넨 가히 은유적이고도 더없이 직설적인 표현이었다. 그는 자신의 표현에 흡족했는지 미소를 띠며 세상 좋은 사람으로 되돌아갔다. 그날 이후 난 심사위원의 말마따나 컴퓨터로 변했다. 그날의 평가는 내 꼬리표가 되어 하드웨어 깊은 곳에 내장되었다. 휴지통에 들어가지도 않는 저 꼬리표는 모니터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괴롭혀왔다. 면접이나 발표를 시원하게 망치고 나온 날이라면 난 또 저 꼬리표를 명함으로 삼았다. 그럴 때마다 집에 돌아오며 생각한다. 내 모니터는 저리도 두터운 80년대 매킨토시 버전일까.



( 매킨토시: 내가 뭔 죄야 )


그래도 다행인 건 난 이제 저 문구 한 줄을 인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더 좋은 나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부품으로 쪼개놓으신 그 심사위원 덕분에 나란 존재에 대해 분해해보고 어디가 낡았는지, 어디를 수리해야 하는지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다. 예전 내 글을 읽어보신 한 작가님은 나에게 글을 쓰기를 권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홀로 글쓰기보단, 공개적인 곳에 글을 쓰며 또 다른 걸 발견할 것이란 기대 하나로 용기 내 브런치에 도전해본다. 글을 통해서 내 생각을 다듬으며 4K 모니터가 되는 그날까지! 오늘도 수많은 평가 속에서 살아갈 테지만, 그럴 때마다 늘 마음속에 외쳐보자.



인불지이불, 불역군자호




ps. 요즘은 본체가 낡았다고 하지 않은 것이 어디냐며 안도감이 들기까지 한다. 본질은 모니터가 아닌, 본체다. 모니터보단 본체가 더 비싸지 아니한가! 본체를 더욱 갈고 닦아 모니터와 하나를 이룬, 최신형 아이맥을 탑재하는 그날까지 으라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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