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굳은살
나는 인생에서 성취보다 좌절을 먼저 경험했다.
어린 시절, 우리 오빠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았다. 그에 비해 나는 머리도 나쁘고 질투심도 많았을뿐더러 성격도 더러웠다. 갓난아기였던 오빠가 생글생글 잘 웃고 머리만 누이면 잠에 드는 착한 아이였다면, 나는 젖병을 물려줘도 팽개치고 바닥에 눕히면 자지러져라 울던 아이였다. 예전 사진을 봐도 오빠는 항상 방긋방긋 예쁘게 웃고 있는데 비해 내 사진은 온통 울상이었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엄마의 따뜻한 눈빛은 항상 오빠를 향해 있었고 그럴 때면 나는 늘 좌절했다.
한 번은 오빠와 나의 방학 숙제로 장래희망 포스터 그리기가 있었다. 엄마는 집 앞 문구점에서 포스터물감과 사절지를 사 와 열심히 오빠의 포스터를 그렸다. 그때 오빠는 한창 유행하던 DDR PUMP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된 오빠의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엄마가 내 숙제를 도와주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숙제를 해가지 않았다. 개학을 하고 오빠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단상에 나가 상을 받았다. 오빠의 그림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가 그려준) 학교 중앙 복도에 걸렸고, 나는 숙제를 해가지 않아 회초리를 맞았다.
늘 그랬다. 오빠는 항상 성공했고, 무엇을 해도 일이 잘 풀렸다. 그럴 때면 나는 온통 실패하고 상처 받았다. 우리는 공평하지 않은 시소에 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시소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공중에 떠서 오빠를 쳐다봤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내가 수학시험에서 8점을 맞아도, 학원을 빠지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도 내 시소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몇 번의 좌절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또 다른 좌절이 두렵지 않게 된다. 100번 성공한 사람에게 한 번의 좌절은 인생을 바꿀만한 경험이겠지만 100번 좌절한 사람이 한 번 더 실패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나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혹시 실패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보다는‘그래,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마는 거지,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이제 나는 시소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안다. 그냥 내가 내려오고 싶을 때, 그 위에서 떨어지는 것. 혹시 넘어지더라도 무릎 한 번 훌훌 털어내고 내 갈 길 가면 되는 거다. 여전히 시소는 굳건히 오빠의 편일 것이고, 나는 몇 번이나 넘어지고 모래 먼지를 마시며 때로는 길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번의 좌절이 내 인생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좌절의 기억은 굳은살처럼 나에게 배겨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것이 아프지 않다.